전남도, 최근 2년간 적발 1건도 없어 ‘유명무실’
강정희 도의원 “지도·감독 강화, 강력하게 처벌”
‘배출 조작 규탄’ 산단 인근 주민들 대규모 집회

▲ 여수국가산단 인근 주민 1600여 명이 7일 대기오염물질 배출 농도 조작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사진=주삼·묘도·삼일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여수국가산단과 광양 업체들의 대기오염 배출 농도 조작 사건에 대한 지역사회의 공분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전남도가 측정대행업체들을 점검하고도 위반사항을 단 한 차례도 적발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지도·단속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1만3096건의 측정 기록 허위 발급 조작 횟수가 드러난 것과 비교하면 이들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과 점검이 부실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오염물질 배출 조작 사건으로 여수 지역민들은  해당 기업과 여수시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여수산단과 광양제철, 화력발전소와 가까운 남해·하동군민들까지 피해를 주장하며 반발하는 등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8일 전남도의회 강정희(여수6) 의원에 따르면 전남도에 등록된 측정대행업체는 이번에 논란이 된 3곳의 대기 측정대행업체를 포함해 대기와 수질, 악취 등 모두 16곳이다.

전남도는 이들 업체에 대해 매년 현장 지도 점검을 벌였다. 그런데 지난 2년간 위반을 잡아낸 단속 실적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업체들이 산단 기업들과 짜고 배출 농도 수치를 조작한 기간에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난 2002년 사업장에 대한 환경 관리 감독 권한이 환경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됐는데 20년 가까이 제대로 된 점검이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 여수산단 주변의 신풍리 도성·구암·신흥·덕산마을 주민들이 지난달 24일 여수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강 의원이 입수한 여수산단 오염물질 배출 측정대행업체 지도점검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2018년 도내 측정대행업체에 대해 모두 52건의 지도·점검이 이뤄졌다.

2016년에는 20개 업체의 대기 수질 소음 진동 실내공기 질 악취 등에 대한 점검이 이뤄져 이 중 8개 업체의 위반 사실을 적발했다. 1개 업체는 수질 분야였고 나머지 7개 업체는 모두 대기 분야 측정업체로, 시험기록부 미작성·시험기준 미준수·유효기간 경과 표준용액 사용 등이 드러났다. 적발된 업체에 대해서는 과태료 50만 원 부과(2곳)와 경고 조치(6곳)가 취해졌다.

이후 2017·2018년에도 각각 18개·16개 업체에 대한 점검이 이뤄졌으나 대기 수질 소음진동 실내공기질 등 모든 분야에서 단 1차례도 적발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환경부 조사결과 (유)지구환경공사, 정우엔텍연구소, ㈜동부그린환경, ㈜에어릭스등 4곳의 측정대행업체가 여수산단 내 235곳 배출사업장으로부터 대기오염물질 배출농도 측정을 의뢰받아 측정기록을 허위로 발급하거나 조작해 발급한 횟수는 2015~2019년 총 1만3096건으로 드러났다. 8843건은 실제 측정하지도 않았고 4253건은 실제 측정값을 축소했다.

▲ 여수국가산단 인근 주민 1600여 명이 7일 대기오염물질 배출 농도 조작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사진은 흥국사 주지 명선스님. (사진=주삼·묘도·삼일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이는 전남도의 측정대행업체 관리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환경분야 시험·검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환경시험법)’ 등에 따르면 측정대행업자는 측정분석 결과를 사실대로 기록하고 그 결과를 최종 기록한 날부터 3년 동안 이를 보존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시험 항목, 일자, 시험방법, 계산식 등 기초 시험자료 등 분석 과정과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험기록부 및 시약 소모 대장 등을 3년 동안 보관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또, 환경시험법에 의해 시·도지사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측정 결과를 거짓으로 산출한 경우나 같은 법 제18조의 규정에 따른 준수사항을 위반한 경우에는 영업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정지처분을 명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오염물질 배출업체와 측정대행업체는 강화된 배출허용기준 적용을 회피하고 오염물질 부과금을 낮추기 위해 배출농도를 고의로 조작하거나 측정기록부를 거짓으로 작성하는 등의 위반행위를 지속해온 것이다.

강정희 의원은 “전남도가 규정대로 지도·관리·감독을 했다면 불법행위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며 검사 기관의 공공성 확보 등 지도·감독 관리 강화 방안과 강력한 행정처분을 요구했다.

전남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수산단에 1단장 3팀 15명으로 구성된 환경지도 감시단을 설치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여수시의회 문갑태 의원은 최근 임시회 10분 자유발언을 통해 “여수산단 내에 민간이 주도하는 환경감시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여수국가산단 인근 주민 1600여 명이 7일 대기오염물질 배출 농도 조작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사진=주삼·묘도·삼일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배출 조작 업체 규탄’ 주민들 대규모 집회

평소 미세먼지와 악취에 고통을 겪어 온 주민들은 배출 농도 조작 사태에 분노했다. 여수국가산단 인근의 삼일·주삼·묘도동 주민 1600여 명(경찰 추산)은 7일 대형버스 40대에 나눠 타고 LG화학과 한화케미칼, GS칼텍스, 여수시청을 돌며 집회를 벌였다. 이날 집회에는 흥국사 주지인 명선스님과 신자들도 동참했다.

주민들은 시민을 속인 기업을 엄벌하고, 관리 감독에 실패한 자치단체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조작이 4년 동안만 이뤄졌다는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건강 영향평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청원인은 “지자체의 관리부실과 중앙정부의 무관심 속에 행해진 여수국가산단의 유해물질 배출 조작사건은 시민의 생명을 빼앗고 국민을 속인 중요한 범죄다”고 주장했다.

또, “황산화물, 미세먼지, 오염물질을 무단배출하고 대기오염 측정기록부까지 조작 날조한 기업에 과태료 200만 원, 기업과 결탁해 기록을 조작한 측정대행업체는 영업정지 6개월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처분을 내린 현 환경법에 여수시민과 산단 근로자는 배신감과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여수국가산단 인근 해산 전망대를 비롯한 산단과 주거지역의 경계 지역에 유해화학물질 측정소를 설치해 줄 것과 상시 관리감독할 수 있는 환경관리권 1·2종을 전남도에서 여수시로 이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5일 제기된 이 국민청원은 8일 오후 4시 현재 857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한편, 측정대행업체와 짜고 배출 농도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기업 4곳이 추가로 검찰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을 포함해 영산강유역환경청이 송치한 기업 12곳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환경청은 사업장 200여 곳의 수사가 마무리되면 최종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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