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 영화 ‘명량’ 후속작 2편에 18억 지원 추진
시의회, 향후 유지관리 부실·재정 부담 우려 등 반대

▲ 영화 ‘명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여수시가 시의회의 반대로 무산됐던 돌산 진모지구 영화세트장 기반시설 건립을 다시 추진하고 나섰다. 시는 지난 1일 시의회를 찾아 영화사 관계자가 직접 사업 설명에 나서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시의회는 영화세트장은 임시·한시적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가설건축물로, 유지관리와 향후 철거 등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 등을 들어 지난 4월 한 차례 예산안을 반려한 바 있어 이번 추경예산 심의과정에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여수시는 올해 초 영화사 빅스톤픽쳐스가 ‘명량’ 후속 영화로 ‘한산’과 ‘노량’ 등 2편을 여수에서 제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시는 영화세트장 기반 시설을 마련하기로 하고 제2회 추가경정예산에 18억 원을 편성해 의회 심의를 요청했다. 여수시는 3억 원을 들여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고 15억 원은 진입 도로 개설 등 부지 정리에 투입할 계획이다.

영화사 측은 3년간 무상사용하면서 세트장 건립비 55억 원을 부담하고 촬영이 끝나면 세트장을 여수시에 기부 채납할 계획이다. 세트장은 6만6000㎡(2만평) 규모로 컴퓨터 그래픽 촬영장과 야외 사극 세트장, 판옥선, 포구마을, 미니어처 세트장 등이 들어선다.

1761만여 명의 관람객을 모으며 국내 최대 흥행 영화로 꼽히는 ‘명량’을 제작했던 김한민 감독이 제작에 나서면서 또 다른 기대작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명량’의 해전 장면은 모두 광양항 일대에서 촬영되는 등 광양시가 지원했다.

▲ 영화 ‘명랑’ 세트장 (사진=CJ엔터테인먼트)

앞서 여수시는 지난 4월 제1회 추경예산에서 18억 원을 반영했으나 시의회는 전체의원 간담회와 예결위원회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부결했다. 시의회는 영화세트장은 대부분 가설건축물로, 영화 제작 후 유지보수 관리비 및 향후 철거시 소요되는 비용 등 막대한 예산 낭비가 우려되고 진모지구 전체 부지에 대한 종합개발계획수립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서완석 의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은 합판 등으로 만들어지는 가설건축물로, 대부분 부실하거나 조잡해 태풍이나 폭우, 화재 등에 취약해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설건축물 세트시설은 유지보수 관리에도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있어 설치 후 해를 거듭할수록 애물단지로 취급되거나 철거되는 실정이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의 인기에 혹해 촬영 세트장을 지었다가 소송이나 관리 부실로 흉물이 돼 애물단지로 전락한 사례가 적지 않다.

부안군 ‘불멸의 이순신’, 횡성군 ‘토지’ 철거
여수시 ‘혈의 누’ 세트장도 관리 안 돼 철거

부안군의 경우 지난 2004년 약 3만2000평 부지에 조성된 KBSTV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을 지난 5월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불멸의 이순신’은 대부분을 부안서 촬영해 평균 22%의 시청률, 최고 시청률 33%를 기록하며 그해 가장 성공한 사극으로 꼽혔다. 그 결과 부안은 전국 유일의 오픈 영상문화특구로 지정돼 사극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이 잇따르고 있는 등 지역 영상산업과 관광산업 활성화에 적잖은 도움이 됐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은 가설건축물이다보니 안전을 담보하지 못할 정도로 부실해졌고 관리유지의 어려움, 세트장을 찾는 관광객 감소, 토지 소유자의 계속된 철거 요청 등으로 결국 철거에 들어갔다.

충남 금산군의 MBC 드라마 ‘상도’ 세트장은 설치 2년 뒤 홍수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춘천의 영화 ‘청풍명월’ 세트장도 애물단지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에 들어선 대하드라마 ‘토지’ 세트장은 횡성군과 운영업체 간 소유권을 놓고 4년간 법정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별다른 수익을 내지 못하다 결국 철거됐지만 10년간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다. 횡성군의회는 “세트장에 투입된 예산은 토지매입비를 포함해 43억 원에 달한다. 마치 세트장만 유치하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뛰어들었다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전체 분량의 약 70%가 광양에서 촬영된 영화 ‘명량’의 경우에도 1761만여 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아 흥행에 성공했지만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광양항 해양공원에는 ‘명량’ 촬영지 포토존이 마련됐지만 이를 찾는 관광객은 많지 않다.

▲ 여수시 화양면에서 촬영한 영화 ‘혈의 누’ 세트장.

여수시도 실패한 사례가 있다.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에 설치됐던 영화 ‘혈의 누’(2005년 개봉) 세트장은 유지관리가 안 돼 철거됐다. 세트장 설치에 여수시는 1억3000만 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촬영을 마친 세트장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흉물이 되자 여수시는 영화사 측에 철거를 요구했다. 영화사 측은 철거를 미루다 뒤늦게 철거한 뒤 여수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여수시가 승소했다. 여수시가 제작비 12억 원을 지원한 SBS 아침드라마 ‘선택’(2004년 방영)은 제작사가 2억 원을 들여 건립한 야외세트장이 돌산공원에 세워졌으나 현재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

이처럼 영화·드라마 세트장은 초기에 해당 지자체를 홍보하고 관광객 유치 등의 효과를 거두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람객 감소, 유지보수 등 관리운영비 증가, 철거시 비용 부담 등으로 예산낭비를 초래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사례가 적지 않다.

서완석 의장은 “막대한 시 예산이 투입되는 영화세트장을 기부 채납한다고 해서 환영만 할 것이 아니라 사전에 여러 조건을 꼼꼼히 따져 보고 효과와 예산의 낭비 우려 등을 냉정하게 분석해 봐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춘천시 남이섬 ‘겨울연가’, 문경시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효과 ‘톡톡’
수익내는 세트장 많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 여전…준비 없이는 안돼

하지만 지자체들이 지역 홍보 및 관광객 방문 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영화·드라마 세트장 유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영화와 TV가 가진 막대한 전파력과 홍보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 지자체도 있다.

‘겨울연가’의 춘천 ‘남이섬’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한류열풍’의 불을 지핀 드라마로 평가받는 ‘겨울연가’는 배용준과 최지우가 나눴던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남이섬은 드라마 방영 이후 한국인은 물론 일본과 대만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사진=문경시)
   
▲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사진=문경시)

2000년 문경새재 용사골에서 조령산을 배경으로 세워진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은 고려시대 세트장을 거쳐 지금의 조선시대 세트장으로 다시 지어진 사극 전용 촬영장이다. 7만㎡ 부지에 광화문, 경복궁, 동궁, 서운관, 양반집 등 103동과 기존 초가집 22동, 기와집 5동을 합해 130동의 세트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는 ‘태조 왕건’, ‘육룡이 나르샤’, ‘연개소문’, ‘무인시대’, ‘대조영’, ‘왕이 된 남자’, ‘녹두꽃’, 영화 ‘광해’, ‘관상’, ‘천문’ 등 인기 사극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됐다. 문경새재오픈세트장을 짓는데 시비 57억 원, 도비 10억 원, KBS 5억 원 등 총 72억 원이 들어갔다.

문경시에 따르면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은 해마다 5∼20여 편의 드라마·영화 촬영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하루 세트장 이용료는 드라마 100만원, 영화 200만원으로 2000년 이후 매년 1억 원 이상의 세트장 이용료를 받아왔다. 2016년 2억 1500만 원, 2017년 2억 3300만 원, 2018년 1억 3700만 원의 이용료를 받았다. 지난해 문경새재오픈세트장을 찾은 관광객은 20만 4100여명에 이른다.

문경시는 영화·사극 촬영하기 좋은 도시를 위해 문경시영상산업진흥조례를 제정하는 한편 드라마·영화에 대한 체계적 지원과 촬영지 마케팅을 위해 지난달 미디어전략팀도 신설했다. 세트장의 직접적인 수익과 함께 촬영 제작진과 배우들이 문경에 머물면서 지출하는 음식, 숙박비 등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게 문경시의 설명이다.

인구 400만 명에 불과한 뉴질랜드는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 부각되면서 엄청난 경제효과를 누렸다. 관광객 수가 연평균 5.6%씩 증가해 관광산업 파급효과는 38억 달러에 달했고 직접 고용 효과 3억6000만 달러, 국가 브랜드 상승 4800만 달러의 효과도 거뒀다. 영화의 주인공인 프로도의 이름을 따서 ‘프로도 경제효과(Frodo Economy Effect)’라는 경제용어를 만들어낼 만큼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컸다.

하지만 일각에선 전국적으로 수익을 내는 세트장이 많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중장기적인 전략적 분석도 없이 지자체장 치적 쌓기와 어설픈 기대 효과만 노리고 유치에 나서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수시의회는 15일부터 제194회 여수시의회 임시회를 열어 영화세트장 기반 시설 지원 사업에 대해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25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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