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회 하태훈 위원장

▲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회 하태훈 위원장. (사진=마재일 기자)

“마을에 1년 내내 가축 똥 냄새가 진동한다. 불볕더위에도 집의 문이라는 문은 모두 닫고 산다. 집 안에 자동분사식 방향제를 24시간 켜놓고 생활한다. 어느 날은 구역질이 날 정도다. 만성 두통이 생겨 약을 먹거나 수면제가 있어야 잠을 자는 주민도 있다. 이런 생활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 년이다. 그동안 그 누구도 우리 마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를 ‘사람으로, 시민으로’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이런 마을이 도심에 있었다면 이렇게 내버려 뒀겠나. 주민들이 다 죽어 마을이 없어지길 기다리는 것인가?”

19일과 21일 두 차례 만난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회 하태훈(46) 위원장은 중간중간 마을의 처참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어렸을 때 겪었던 차별과 소외의 감정이 교차하는 듯 감정을 애써 누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동시에 이제는 주민들과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게 됐다며 마을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 도성마을 모습. 회색 지붕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드론=심선오 사진기자)

“국가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철책으로 둘러싸고 가뒀다”

“1928년 한센인들은 강제로 집과 고향을 떠나 광주로 그리고 여수 애양원으로 이주했다. 원하지 않는 삶, 살기 위해 몸부림친 그들에게 국가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철책으로 둘러싸고 가두었다. 한센인들은 100년의 세월을 사회와 격리돼 온갖 차별과 편견 속에서 냉대를 받으며 살면서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으며, 병이 치유돼도 고향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한 많은 삶을 살아야 했다.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애양원에 있는 우리 마을은 지난 1965년부터 1978년 2월까지 국내 첫 한센병 치료병원인 여수 애양원 원장으로 재직한 도성래 선교사(미국명 Stanly C. Topple)가 자신의 한국 이름을 따서 만든 한센인 정착촌이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205명의 한센인 회복자들의 자립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집단 농장 형태의 농원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우리 마을은 한센인들에게는 제2의 고향이 됐다. 현재 한센인 60여 명과 아이들을 포함한 일반 주민 등 260여 명이 살고 있다.”
 

   
▲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회 하태훈 위원장이 마을 양로원 앞 무너진 폐축사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 마을 양로원 앞 무너진 폐축사. (사진=마재일 기자)

석면 슬레이트 축사·분뇨 바다로 배출
발암물질·악취 진동…수십 년째 고통

“한센인들이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축산업이었다. 집과 축사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열악했지만, 한센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그때는 이웃 간 친형제처럼 지내면서 정도 많았고 서로 희망을 품고 살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3년 매미, 2012년 볼라벤 등의 태풍에 축산업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줄줄이 도산했다. 외부인에게 마을의 토지와 축사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밤사이에 마을을 떠난 이웃도 생겨났고 마을 공동체는 해체되다시피 했다. 대신 한센인들과는 상관없는 외지인들이 운영하는 기업형 축사가 들어섰고 태풍으로 인해 폐허가 된 상당수의 축사는 현재까지 방치되고 있다. 최근에는 양로원 앞의 낡은 축사가 무너졌다.

어렸을 때는 냄새가 이렇게 지독하지 않았다. 분뇨를 모두 말려 처리했다. 바다도 깨끗했다. 발에 밟힐 정도 물고기와 바지락이 많았다. 그러나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외지인 축사들로 인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악취가 심해졌다. 개방형인 분뇨처리장이 노후화돼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분뇨는 고스란히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최근에도 비 올 때 분뇨처리장 수문을 열어 분뇨를 바다로 대거 방출했다. 막힌 관로에는 분뇨가 쌓여 있다. 사실상 무법지대로,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 현재 마을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축사는 소규모로, 5가구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하루라도 악취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라 한다.

마을 환경은 처참할 정도로 열악하다. 가축분뇨 악취는 물론 방치된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주변 석유화학 산단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등으로 수십 년째 피해와 고통을 받고 있다. 집과 축사의 경계가 없어 비가 많이 오면 분뇨 오염물과 섞인 물이 집 안으로 들어와 냄새가 나도 참고 살아가는 실정이다. 불볕더위에도 문이라는 문은 하나도 열지 못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곰팡내에 각종 벌레가 돌아다닌다. 빨래도 밖에서 말릴 수가 없다.

   
▲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회 하태훈 위원장이 마을 앞 여수산단을 가리키고 있다. 우천으로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 도성마을 앞 여수국가산단. (사진=동부매일신문 DB 마재일 기자)

마을 앞 여수국가산단에서 뿜어내는 각종 대기오염물질과 기름 냄새, 가스 냄새, 타이어 타는 냄새와 밤낮없이 울리는 소음으로 말 못 할 고통을 겪고 있다. 공장에서 폭발음이 날 때면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산단에서 날아오는 매캐한 냄새와 분뇨 악취, 축사 환풍기 소리에 두통약과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정도다. 

지난 4월 여수산단 일부 기업과 측정대행업체가 대기오염물질 측정치를 조작해 불법 배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마을 주민들이 업체와 시청 앞에서 규탄 집회를 했다.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이었다.

마을 변화와 환경오염원 제거를 위해서는 석면 슬레이트 주택과 축사의 철거는 불가피하다. 마을에 악취가 진동하는데, 1급 발암물질이 풀풀 날리는데 누가 살려고 하겠나. 그리고 악취 때문에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 방문객들이 눈살을 찌푸리기 일쑨데 누가 기념관에 오려고 하겠나. 더 이상의 축산분뇨 불법 배출은 있어서는 안 된다.”
 

▲ 마을 앞에 조성 중인 율촌산단에서 날리는 흙먼지. (사진=하태훈 위원장)

“냄새 매일 맡아선 괜찮다”는 아이들…“가슴 아프다”
차별과 편견 대물림할 순 없다…우리 대에서 끝내야

“마을의 한센인 2세들은 어린 시절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우리 마을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놀림거리가 되는지, 옷에서 나는 냄새가 얼마나 우리를 위축시키고 그 시선들이 우리를 초라하고 처참하게 만드는지 몸소 겪으며 살았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우리 아이들에게서 보게 됐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뒤에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존재한다. 언젠가 마을의 한 엄마가 아이에게 “마을에 냄새가 나는데 괜찮아”라고 물었더니 “매일 맡아서 괜찮아요”라고 말했다더라.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이 아이도 학교에 들어가면 부모가, 언니·오빠들이 겪은 것처럼 옷에서 나는 냄새에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지 않겠나.

아이들은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다. 마땅한 놀이 공간이 없어 악취와 1급 발암물질 슬레이트 옆에서 논다.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지내야 하고 학교에서 놀림을 받아야 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들의 심정은 어떻겠나.

이곳은 부모님과 내가 살고 있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터전이다. 이런 환경을 아이들에게 대물려 줄 수 없지 않나. 아이들에게 부모가 겪었던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마냥 견뎌내라고 할 수 없다.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한센인 자녀라는 이유로 사회의 부당한 시선에 당당하지 못하고 숨죽여 온 삶을 우리 대에서 끝내야 하지 않겠나. 이번 기회가 아니면 우리는 다시 축사와 집 경계가 없는 곳에서 처참한 삶을 살아야 한다.”
 

   
▲ 도성마을의 폐축사. (사진=마재일 기자)
   
▲ 도성마을의 폐축사. (사진=마재일 기자)

다시 돌아오는, 살고 싶은 마을 ‘우리 손으로’
변화 위해서는 마을·기업·행정·정치 협력 절실

“그동안 그 누구도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정부와 지자체, 정치인, 지역사회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건강권과 환경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을 주민들은 제 목소리를 한 번도 내지 못했다. 한센인 정착촌이라는 이유 하나로 수십 년간 겪어온 차별과 소외, 사회적 편견에 익숙해져 있었다고나 할까.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한센인 2세들이 주축이 돼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재생추진위는 희망이 없어 이곳을 떠나 살 수밖에 없었던 우리 이웃과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한다. 고향에 돌아와 살고 싶어도 먹고 살 ‘꺼리’가 없는 이곳을, 사라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되살아나도록, 예전처럼 북적거리는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려는 것이다.
 

▲ 여수산단 주변 신풍리 도성·구암·신흥·덕산마을 주민들이 지난 4월 24일 여수시청 앞에서 대기오염물질 측정치를 조작해 불법 배출한 기업에 대한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축산업 아니면 아무런 생산성 없는 마을에 4차 산업인 스마트팜과 대형세탁소 등을 유치해 주민들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고 한다. 마을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일자리가 생기면 떠났던 주민들도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모두가 외면할 때 우리의 손을 잡아준 곳이 GS건설이었다.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마을 앞 수로에 수상 태양광을 설치하고 마을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기업과 마을의 상생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수시와 전남도도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다. 최무경 전남도의원과 주재현 여수시의원의 역할이 컸다. 주승용 국회의원, 민덕희·정현주 시의원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수십 년간 사실상 폐쇄된 마을에서 살다 보니 변화를 두려워하는 주민들도 일부 있다. 겪어보지 못한 일이어서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주민들에게 얘기한다. 개인의 사심은 버리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힘을 모으자고. 우리 후손들에게 이런 환경을 물려주지 말자고. 주민들이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 누구도 마을을 변화시켜주지 않는다고. 지금은 새로 선출한 이장님을 중심으로 중지를 모아가고 있다.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끝까지 설득하고 마을의 변화가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 안내 표지판. (사진=마재일 기자)

손양원 목사 기념관 일대 활성화 기대

“마을이 변화하면 지역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먼저, 악취가 사라지면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 방문객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과 애양원 교회, 등록문화재인 애양원 역사박물관(구 애양병원), 그리고 한센인기념관 일대를 사랑과 믿음, 봉사와 나눔, 복음의 상징으로서 기독교 정신을 전파하는 성지 순례지로 적극적으로 활성화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자원을 내버려 두는 것 같아 안타깝다. 순교기념관 주변에 개인‧단체 숙박시설과 세미나실, 1인 기도실 등을 만들면 어떨까. 이를 위해서는 애양원 교회와 애양병원, 도성마을의 상생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관심과 응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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