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을 사회적 냉대와 차별을 받아온 한센인 정착촌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변화를 위한 의지와 희망이 꺾일 위기에 처했다.

▲ 주택과 축사가 뒤얽힌 도성마을 모습. 회색 지붕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사진=마재일 기자)

주민들, “여수시, 열악한 환경 개선 수수방관적 태도” 분노
“권오봉 시장에 실망…28일부터 시청 앞서 규탄 집회 예고

수십 년을 분뇨 악취와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된 석면 슬레이트, 산단에서 날아드는 매연과 분진 등 열악한 생활환경에 노출되면서 고통받으며 살아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 주민들이 여수시의 수수방관적 태도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25일 도성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수십 년째 사는 실태를 알면서도 그동안 이를 외면해온 여수시가 대책 마련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분노했다. 주민들은 더는 참을 수 없다며 28일부터 여수시청 앞에서 시의 소극적인 행정을 규탄하고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는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한센인 정착촌인 도성마을 주민들은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 국가로부터 강제적으로 격리돼 사회적 차별과 냉대를 받으며 행정·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해 주민들의 열악한 실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제해양관광도시를 지향하는 여수시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곳이 과연 사람이 사는 마을인지, 가축이 사는 축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생활환경은 열악한 실정이다.

▲ 도성마을 모습. 회색 지붕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드론=심선오 사진기자)

주민들은 특히 지난 2월 18일 권오봉 여수시장이 마을을 찾아 분뇨 악취 해소 등 열악한 정주 환경 개선을 약속했지만 나아진 것이 없다며 크게 실망하고 있다. 권 시장은 당시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주민들이 소외감이 들지 않도록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수시는 10월 4일에서야 ‘도성마을 정주 여건 개선’ TF팀 1차 회의를 여는 등 늑장 행정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남도가 최무경 도의원이 지난 4월 5일 도성마을 정주 여건 개선을 촉구하는 도정질의 이후 대응팀을 구성한 것과는 비교된다. 최일선에서 주민 복지를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여수시보다 전남도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시는 이날 TF팀 회의에서 가축분뇨 공동처리장 시설개선, 축사시설 현대화, 빈집정비, 마을 하수도 설치지원, 슬레이트 철거 처리, 산단 악취 및 대기오염 모니터링 등 마을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10가지의 대응 과제를 마련해 추진키로 했다. 시는 향후 주민들과도 대책을 공유하고 정주 여건을 개선해 나갈 방침이다. 하지만 여수시는 주민이 축사 못지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데도 이를 수십 년간 내버려 뒀다는 것은 사실상 행정 직무유기를 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마을 양로원 앞 무너져 방치된 폐축사. (사진=마재일 기자)

GS건설, 마을 수로에 100MW급 수상태양광 설치
5만 톤 이산화탄소 저감·소나무 800만 그루 효과

더욱이 주민들이 어렵게 유치한 대기업의 투자 사업마저도 여수시의 이해할 수 없는 행정 처리로 무산될 위기에 놓이면서 주민들이 원망을 쏟아내고 있다.

GS건설(주)이 시에 제출한 개발행위허가 신청서에 따르면 2000억 원을 투자해 율촌면 신풍리 도성·구암마을 주변 공유수면에 1단계로 34MW, 2단계로 60MW 약 100ha 규모의 수상태양광을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1단계 사업은 지난해 9월, 2단계 사업은 올해 5월,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환경영향평가, 공유수면 점사용허가 등의 관련 인허가를 마쳤다. 완공되면 세계 최초의 100MW급 수상태양광 발전소가 될 전망이다. 현재는 여수시의 개발행위허가 승인만 남은 상황이다.

태양광발전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가 시대적인 화두로 등장한 이때 가장 좋은 대안 에너지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 일대 공유수면에 수상태양광 발전이 시작되면 약 5만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가 예상되는데 이는 소나무 800만 그루를 심는 효과와 맞먹는다.
 

   
▲ 여수산단 주변 신풍리 도성·구암·신흥·덕산마을 주민들이 지난 4월 24일 여수시청 앞에서 대기오염물질 측정치를 조작해 불법 배출한 기업에 대한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 도성마을은 여수국가산단과 광양산단, 율촌산단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도성 주민들 2000억 대 투자 직접 유치
주민-기업 손잡고 마을 변화 마중물 기대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수천억대의 투자 사업을 누구의 도움 없이 오로지 도성마을 주민들이 직접 유치했다는 것이다. 단 하루라도 악취가 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주민들의 간절한 염원으로 이뤄낸 결과로, 매우 드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회에 따르면 GS건설은 주민 자립과 정주 여건 개선 등 마을재생을 위한 마중물로 발전기금과 세탁공장, 스마트팜, 사회적기업 유치 등 250억 원 상당의 지원을 약속했다. 공장 확장을 계획하고 있는 지역의 한 사회적기업도 도성마을 입주 계획을 확정하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 향후 세탁공장, 스마트팜 등의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해 주민 공유의 경제사업으로 추진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또한, 태양광 부유체 조립제조공장을 도성마을에 건립해 주민 채용 등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수상태양광 사업을 통해 도성·구암마을 주민의 일자리와 소득창출은 물론 정주 여건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되는 상생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을은 주민 복지와 마을재생을 위해 조합과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마을 총회를 열어 주민들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 도성마을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시, 공유수면 선박 피해 대책 요구 ‘반려 처분’
GS건설·주민들, “반려 처분 이해할 수 없어”
선박들 어업권 없고 어로행위 금지된 항만구역
기업 “이의 신청 안 받아들여지면 사업 포기”

그러나 수상태양광 사업에 대한 여수시의 개발행위허가가 지연되면서 주민들의 의지와 희망이 꺾이고 있다. 여수시는 지난 9월 2일 육상부 토지 11필지 중 2필지(1㎡)에 대한 국유재산사용허가서 미제출, 예산내역서 등 구비서류 미비, 구암마을 해변 선박 조사 및 피해방지 대책 미반영 등을 이유로 수상태양광 1단계 사업 개발행위허가 신청서를 반려 처분했다. 시는 이의 신청서가 제출되면 관련 기관과 협의 후 도시계획개발분과위원회 심의 등 행정절차를 다시 진행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GS건설과 도성·구암마을 주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반려 처분할 결정적인 사유가 안 된다는 것이다. GS건설 측은 국유재산사용허가서 미제출에 대해 8월 14일까지 제출기한이었으나 여수지방해양수산청 승인이 지연돼 여수시에 관련 접수증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GS건설은 8월 26일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구비서류 미비에 대해서도 2018년 10월 19일 최초 접수 시 전체사업이 반영된 예산내역서를 제출했는데 이후 보완서류 요구에 따라 별도 제출해 문제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 구암마을 해안에 정박한 소형어선들. (사진=도성·구암마을 주민 제공)
   
▲ 구암마을 해안에 버려진 폐어구와 쓰레기 때문에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주민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 (사진=도성·구암마을 주민 제공)
   
▲ 구암마을 해안에 버려진 폐어구와 쓰레기 때문에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주민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 (사진=도성·구암마을 주민 제공)

도성·구암마을 주민들과 GS건설 측은 특히 해당 해역을 이용하고 있는 선박들은 모두 불법인 만큼 피해방지 대책을 세울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GS건설 측은 다만 시에 제출한 이의 신청서를 통해 이들 선박에 대해 구암·도성마을 어촌계와 이장 등과 협의해 착공 전 협의 완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구암마을 공유수면에는 17척 정도의 소형선박이 정박하거나 해역을 오가면서 광양항에서 어로 행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선박들은 어업권이 없는 불법이다. 특히 이 해역은 어로 행위를 할 수 없는 곳이다. 또한, 해안 곳곳에는 어선들이 무단 투기한 쓰레기와 적재물, 컨테이너 등이 널려 있어 미관을 해치고 있다. 구암마을 주민들은 이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여수시 수산경영과는 마을 회신을 통해 해당 지역은 어선이 입·출항하는 선적항으로 지정할 수 없는 항만구역 ‘광양항’으로 등록된 어선이 없다고 밝혔다. 어업생산과도 해당 해역에는 여수시가 내어준 어업면허(어업권)가 없다고 했다. 율촌면사무소는 “구암·애양·도성마을 일대 맨손어업권 구)구산어촌계는 2002~2003년 율촌 제2산단 조성 시 어업권 보상(맨손어업권)이 완료돼 현재는 관할 구역으로 관리되지 않는 어촌계로, 이후 맨손어업권은 추가 발급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여수해수청은 해역이용협의 및 공유수면점사용허가를 승인했다. 더욱이 이들 선박 중에는 도성·구암마을 주민소유 선박은 한 척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양수산부 여수지방해양수산청 여천해양수산사무소는 마을에 회신을 통해 항만 내 어로행위에 대한 불법 조업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공유수면 내 해양폐기물 수거 작업과 함께 불법 시설물 설치 등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겠다고 덧붙였다.

GS건설 측은 시에 제출한 이의 신청서에서 “약 2년간 마을 주민들과 산자부, 해수청, 여수시 등과 협조하며 사업을 진행해 왔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사유로 반려 처분됐다”며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막대한 경제적·시간적 손실을 감수해야 해 이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태양광발전 사업이 무산되면 축사나 다름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도성마을 주민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어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 도성마을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시는 누굴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분통
“발 벗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 뿌리면 되겠나”
이런 환경 아이들에게 대물려 줄 수 없다 ‘한탄’

도성·구암마을 주민들은 국가기관, 지역 정치권, 민간 기업은 마을을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쓰는데 여수시는 되레 소극적인 행정을 펼치고 있다며 이를 비판했다.

방원빈 도성마을 이장은 “불법으로 어업 행위를 하는 것은 이를 묵인한 관련 기관의 직무유기인데, 기업과 주민들한테 이들의 피해 대책을 세우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방 이장은 이어 “시민이면 당연히 누릴 행복권과 건강권, 좀 더 나은 곳에서 살 수 있는 주거권을 가졌는데 여수시는 우릴 외면했지 않나. 우리가 순천 시민이냐, 광양 시민이냐. 여수시는 주민들을 개·돼지 취급하는 것이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하물며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마을을 도와주려고 애쓰는데 여수시는 도대체 누굴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방 이장은 특히 “주민들은 마을의 분뇨 악취를 없애기 위해 축산을 더는 하지 않겠다고 폐업을 하는 상황인데 여수시는 되레 가축분뇨 공동처리장 시설개선 지원사업으로 3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려는 거꾸로 행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주택과 축사가 뒤얽힌 도성마을 모습. 회색 지붕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석면 슬레이트는 1급 발암물질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이나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하태훈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장은 “여수시도 못한 대기업의 투자를 주민들이 유치했고, 무엇보다 마을 정주 여건 개선과 주민 자립을 위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데 행정이 되레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 위원장은 이어 “주민들이 피눈물 흘리며 고통스러워할 때 여수시와 정치권, 지역사회가 해 준 것이 뭐 있나. 그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때 우리의 손을 먼저 잡아 준 것은 GS건설이었다. 주민들이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는데 행정이 발 벗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재를 뿌리면 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더는 참고만 있을 수 없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무경 전남도의원은 “국립보건환경연구원 직원도 사람이 살 수 없는 마을이라고 했다. 평생을 가슴 아픈 삶을 살아온 마을 주민들을 위해 전남도, 여수시, 정치권 등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특히 “단지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숨죽이며 살아왔는데, 1세대가 받았던 천대와 차별이 2세, 3세까지 대물림돼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주재현 여수시의원은 “도성마을은 우리 도시의 민낯을 보여 주는 곳이다.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여수시와 지역 정치권·종교계는 더는 주민들의 절박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주 의원은 이어 “주민들이 민간 기업을 유치해 마을을 변화시키려고 발버둥 치면 여수시가 먼저 나서서 정부와 전남도, 기업의 지원을 끌어내야 할 판국인데 되레 행정이 막아서는 꼴이 되면 우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도성마을 아이들. (사진= 박성태 사진작가)

도성마을 주민 문미경 씨는 “우리 아이들은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다. 마땅한 놀이 공간이 없어 악취와 1급 발암물질 슬레이트 옆에서 논다.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지내야 하고 학교에서 놀림을 받아야 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들의 심정은 어떻겠나.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문 씨는 이어 “이 마을은 부모님과 내가 살고 있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터전이다. 이런 환경을 아이들에게 대물려 줄 수 없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우리는 지금처럼 축사와 집 경계가 없는 곳에서 처참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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