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박정윤 씨 <십이월의 아카시아> 발간

“얼굴에 그 사람이 살아온 풍경이 담기듯이 손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업과 성격, 체형까지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어릴 때 보았던 동네 인쇄소 아저씨 손은 검정 잉크로 물들여져서 씻어도 마저 씻기지 않는 잉크 자국이 얼룩덜룩한 무늬가 되어 원래의 그것처럼 보였다. 생선가게 아주머니 손은 생선 칼에 베인 작은 상처들의 갈라진 틈으로 생선 비늘과 물 자국이 길처럼 지나다니고, 그사이에 짙게 밴 비릿한 생선 냄새가 가시는 날이 없었다.

학교 선생님 손은 엄지, 검지. 중지에 하얀 분필 가루가 집중적으로 묻어 있는 것이 일상이었고, 동네 빵집 아저씨가 반죽하다 말고 담배를 피우던 손은 처음엔 희었으나 이내 누리끼리해진 밀가루 반죽이 말라서 들러붙어 있었다. 키가 작고 흰 피부가 예뻤던 음악 선생님의 피아노 치던 고운 손은 아기 손처럼 작고, 희고 가늘어 선생님 얼굴만큼이나 예뻤다. 학교 앞 분식집 아주머니 손은 달짝지근한 떡볶이 국물이 연한 주홍빛이 되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통통한 튀김집 아저씨 손은 온종일 튀김을 튀겨내던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동네 떡 방앗간 아주머니 손은 콩고물의 고소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본문 중에서-

순천의 한 평범한 주부가 암 판정 이후 자신의 일상을 담은 <십이월의 아카시아>를 출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박정윤(48·여)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여수에서 다니고 결혼 후 25년간 가족들과 순천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녀는 대학에서 관광학을 전공했지만, 자신의 문학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취미로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일을 SNS 등을 통해 꾸준하게 하면서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해 유방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던 중 출판사의 출간 제의를 받은 그녀는 순천 조례동에 있는 오버랩 카페에서 두 달 동안 쉬지 않고 매일 글을 써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박 작가는 지난 7일 순천 오버랩에서 신간 출판기념회를 하고 현재 본격적인 작가 행보에 나선 상태다.

도서출판 ‘책과 강연’ 측은 “박 작가의 글은 평범한 전업주부의 일상과 애환을 너무나 솔직하고 진솔하게 표현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라며 출간 배경을 밝혔다.

▲ <십이월의 아카시아> 표지.

자전적 에세이 <십이월의 아카시아>는 갑작스러운 암 판정 이후 삶을 대하는 저자의 감정을 따뜻하게 풀어낸 책이다.

한겨울 아버지의 죽음,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 할머니와 함께했던 부엌의 추억 등을 통해 그녀는 암 판정 이후 삶에 대한 희망을 강렬하게 희구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당연한 것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게 됐을 때 슬픈 것을 슬프게, 아픈 것을 아프게 느껴야만 그 뒤에 찾아오는 작은 기쁨과 웃음이 더욱 소중하다고 전했다.

1972년 12월생인 박 작가는 하늘, 바람, 별, 나무 그리고 그 나무에 열리는 열매의 신기함을 좋아한다. 누구나 흔히 좋아할 만한 평범한 이 모든 것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독서를 좋아한다.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온갖 상상과 경험을 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한다.

총 42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십이월의 아카시아>는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사랑하고 사랑했던 모든 이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삶을 감사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애틋한 감정이 잘 드러난다. 또, 중간중간 삽입된 짧은 구절은 저자의 SNS에 기록된 글로 저자의 남다른 문학적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가족밖에 모르고 살아온 저를 믿고 제 글을 사랑해주셔서 기꺼이 출간을 해주신 출판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라며 “암 판정을 받은 후 정말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돼 글을 쓰는 내내 가장 행복했다”라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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