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수산물특화시장의 분쟁은 행정과 정치의 역할과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 여수시청 옆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수산물특화시장 상인들. 모기를 피하려고 양파망을 둘러쓰고 잠을 자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상인들은 평온했던 일상으로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까

관리비와 공과금 납부 문제 등으로 수년간 고소·고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수산물특화시장 주식회사와 상인회의 분쟁이 법도, 행정도, 정치도 매듭을 풀지 못하고 있다. 지난 6년간 깊어질 대로 깊어진 주식회사와 상인회 간, 그리고 상인들 간의 갈등은 지역사회가 해결하고 치유해야 할 묵직한 과제가 되고 있다.

상인들은 여수시청 별관 옆 시멘트 바닥에서 임시시장 등 생계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오늘로써 193일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민선 7기 들어 여수수산물특화시장 분쟁조정 시민위원회가 조정안을 제시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가 싶더니 공과금 산정 등을 두고 상인들과 여수시의 이견이 팽팽해 또다시 답보 상태에 빠진 상황이다. 우선 ‘장사만 하게 해달라’는 상인들의 간절한 호소는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고령의 상인들은 젊은 사람도 숨이 콱콱 막히는 불볕더위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태풍을 맨몸으로 견뎌냈다. 극성인 모기 때에 양파망을 둘러쓰고 잠을 자야 했고, 모기에 물린 얼굴은 발갛게 부어올랐다. 상인들은 이렇게 겨울을 맞았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잔뜩 움츠린 몸으로 잠을 청하고, 세상에서 이들을 막아주는 단 하나의 보호막인 비닐과 이불에 의지한 채 혹독한 겨울을 나야 할지도 모른다.
 

▲ 여수시청 별관 옆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수산물특화시장 상인들의 모기에 물린 얼굴 모습. (사진=페이스북)

전임 여수시장들은 물론이고 지역 국회의원과 시·도의원, 그 누구도 이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여수시장이 분쟁과 고통을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상인들의 눈물겨운 노숙농성은 200일을 향해 가고 있다. 권오봉 시장이 분쟁을 해결하고 상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듯했지만, 상인들의 절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수산물특화시장 분쟁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하게 얽힌 답답한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가 아무도 풀 수 없도록 묶어놓은 매듭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단칼에 끊어버렸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고대 국가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는 자신의 마차를 제우스 신전에 봉안한 뒤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두며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라는 말을 남긴다. 수많은 영웅이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수백 년 뒤 알렉산더 대왕이 칼로 매듭을 잘라 버렸다. 알렉산더는 고르디우스의 예언대로 유럽과 아프리카 및 아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쾌도난마(快刀亂麻) 또한 헝클어진 삼(麻)을 잘 드는 칼로 자른다는 뜻으로,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솜씨 있게 처리함을 비유한 말이다. 중국 남북조 시대 북제 창시자 고환이 여러 아들의 재주를 시험하려고 얽힌 삼실 한 뭉치씩을 나눠주며 추리게 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다른 아들들은 한 올 한 올 뽑을 때, 둘째 양(羊)은 “어지러운 것은 베어버려야 합니다(亂者須斬)”라며 삼실을 잘라버렸다.

물론 모든 문제의 해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 쾌도난마 방식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 해법을 달리해야 한다. 더욱이 요즘 시대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한 개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끊어야 할 매듭과 풀어야 할 매듭을 구분할 혜안이 필요하다. 끊을 때는 말끔하게 끊어야 하고 풀 때는 사려 깊게 풀어야 한다. 풀지 못하겠다고 포기하지 않고, 풀리지 않는다고 덥석 잘라버리지 않는 리더의 지혜가 요구된다.
 

▲ 여수시청 옆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수산물특화시장 상인이 비가 들치자 바닥에 깐 골판지를 걷어내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분쟁·갈등 해결 역량이 지역의 미래 좌우

‘분쟁’과 ‘갈등’은 다양한 욕구 분출의 결과로, 건강한 사회에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분쟁·갈등 해결·조정 능력이 떨어져 양상이 심화·장기화하면 지역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경쟁력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분쟁과 갈등을 다루고 처리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제대로 된 소통의 관건’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여러 분쟁과 갈등의 흘러가는 세태를 보면 감정이 격해지고 골이 깊어지면서 대부분 법적 다툼으로 귀결되고 만다. 특히 공간을 같이 쓰며 매일 만나는 주민들끼리 분쟁·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치유하기란 쉽지 않다. 패가 갈라지면 더더욱 그렇다. 완충지대 하나 없이 중재와 조정, 조율이란 기능 없이 분쟁·갈등이 깊어지면 그곳은 바로 지옥이 된다.

자체 해결 노력과 행정에 대한 신뢰보다는 경찰·검찰에 의한 기소, 법원의 판단을 최우선시하는 사안이 많아진다면 지역 공동체 정신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법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도 있고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갈등과 분쟁을 사법기관의 법적 판단에만 맡기고 나 몰라라 기다리기만 한다면 행정이, 정치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 그래서 이를 효과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공론의 장이나 분쟁·갈등 조정위원회 등이 필요한 것이다. 전문가도 배석하고 지역 사회단체나 주민·공무원들도 참여해 시민 배심원제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중재하는 장, 그러나 여수에는 그런 장이 턱없이 부족하다.

행정과 정치가 그리고 주민이 분쟁과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는지에 따라 그 지역의 미래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쟁·갈등 해법에 미리 마련된 정답은 없지만, 분쟁·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는 행정과 지역 정치의 역량을 판단하는 중요한 시금석이다. 가뜩이나 여수는 관광 활성화에 따른 각종 개발로, 자본의 탐욕이 득세하고 있다. 그러면 분쟁의 소지는 늘 도사리게 된다.
 

▲ 공식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지난해 6월 12일 당시 권오봉 후보가 돌산 해양조선에서 선거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사진=선거 당시 권오봉 후보 SNS)

권위주의적 대응과 시선은 권력자의 오만과 독선에서 비롯

정치인들은 늘 ‘소통’을 이야기하고 강조한다. 그리고 주민의 눈높이에서, 주민과 함께 호흡하면서 주민 모두가 행복한 도시를 만들겠다고 목이 쉬도록 강조한다. 선거 때마다 분쟁과 갈등을 줄여 지역사회 통합에 앞장서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려면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그 실천은 고통받는 주민들의 손을 진정성 있게 잡아주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됐어요”, “관여하지 않겠다”라며 그 손을 뿌리쳐선 안 된다. 진정한 소통을, 행정·정치의 변화를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주민은 바로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행정·정치에 고통받는 이들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특히 권위주의적 대응과 시선은 권력자의 오만과 독선에서 비롯된다. 주민의 눈높이가 아니다.

때로는 아주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상인들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먼 산 보듯 행정’은 방임행정이다. 공정성·공공성을 확보하려면 시 행정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그 바탕을 마련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양측의 주장에 이리저리 휘둘려서도 안 되고 사법기관의 판단만 맹신해서도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수산물특화시장 분쟁의 경우 법적 다툼으로 넘어가기 전에 정확한 행정 조사와 함께 행정적으로, 정치적으로 조율, 조정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너무나도 크게 남는다.

물론 무슨 일이 발생할 때마다 행정과 정치인을 탓하는 것이 억울할 수 있겠다. 팔짱 끼고 뒷짐만 지고 있지 않았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여수시는 시의원이 수산물특화시장 분쟁에 손 놓고 있다고 지적하자 곧바로 “손 놓은 적 없다”라고 반박했다. 시는 “분쟁조정시민위원회를 구성해 4개월 동안 9차례 회의를 거친 끝에 6월 권고안을 도출하는 등 분쟁조정에 최선을 다했다”라고 항변했다. 일부 지역정치인들도 나름대로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을 푸는 데 있어서 누가 더 나서려고 하는지, 온 마음을 다해 해결하려는 진정성을 보이는지 해당 주민과 시민은 알고 있다. 괜한 공명심에 생색만 내려고 하는 것인지 꾸준히 만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는지. 그런 사람은 감춰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 수산물특화시장 분쟁 해결 촉구를 위한 시국 기도회 모습. (사진=독자 제공)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지혜가 필요하다

수산물특화시장 분쟁 해결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는 알렉산더 대왕 같은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지혜를 가진 쾌도난마 같은 알렉산더는 진정 우리 도시에 없는 것일까.

수천억 원의 국비를 서로 자신들이 확보했다고 성과 홍보에 열을 올리는 여수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은 그 에너지를 수산물특화시장 분쟁 해결에 쏟아보라. 자화자찬만 하지 말고 서로 머리를 맞대보라. 국비 확보 노력은 도시의 수장으로서,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말로만 소통, 말로만 주민을 위한다고 허풍 떨지 말고 진정으로 위민(爲民)해보라.

공공의 일을 하는 사람은 지역사회에서 주민을 대변하고 분쟁과 갈등을 조정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 모아놓고 답변하기 편한 질문만 받는 소통은 진정한 소통이 아니다. 온라인 소통 잘했다고 상 받은 것은 잘한 일이나 오프라인 소통도 이처럼 해보라.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 하라고 국회로 보냈지 공무원이 처리하면 될 소소한 민원 처리하라고 뽑아준 것이 아니란 말이다. 자칭 ‘행정의 달인’, 타칭 ‘정치의 달인’에 부합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어보라.

장사를 못 하는데 여수-고흥 다리가 놓인들, 경도 해양관광 단지 진입도로가 개설된들, 이들 상인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당장 이들에게는 이마에 가득한 주름살 먼저 펴주는 행정, 정치가 필요하다. 수년째 이어지며 지역 공동체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수산물특화시장 분쟁 사태에 대해 시시비비 잘잘못을 가릴 판단 능력이 상실된 것인지, 아니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행정과 정치권에 묻는다.

분쟁 사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그동안 그들만의 싸움으로 치부하고 법에만 맡겨둔 채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데 있다고 본다. 특히 여수시장을 비롯한 지역정치인들은 정치 유불리 계산에 빠져 해법에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분쟁 당사자들의 희생적인 결자해지 노력도 최우선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양측이 화해하고 다시 예전처럼 장사하는 것은 사실상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렇다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이들을 마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해법의 작동을 가로막고 있는 ‘불신’을 걷어내는 데 지역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풀어버린 알렉산더처럼 쾌도난마와 같은 통쾌한 행정력과 정치력을 발휘해 달라고 거듭 당부한다.

<덧붙이는 말> 권오봉 시장은 내년 여수시 사자성어를 ‘휴수동행(携手同行)’으로 정했다. 서로가 갈등을 풀고 동반자로서 함께 손잡고 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내년까지 갈 필요가 있나. 지금 당장 행동으로 실천하기를 바란다. 지난 지방선거 때 그토록 자랑했던 ‘35년 행정통’의 능력을 보여달라.
 

▲ 마재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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