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



-유림식당의 허용, 최경희씨 부부-





♣ 밤11시 퇴근, 새벽 5시 출근



이들 부부는 밤 11시에 식당일을 마치고, 다음날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식당문을 연다. 하루 18시간을 일하면서도 이들 부부의 입가에 밝은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요즘 여수지역 어디를 가나 불경기로 인한 한숨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식당은 더하다.“손님이 반으로 줄었다. 요즘 너무 힘들다”하는 얘기가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들 입에서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불경기 속에서도 부부가 힘을 모아 씩씩하게 불경기를 헤쳐 나가는 부부가 있다. 오늘 용기를 잃은 시민들에게 힘과 의욕을 북돋워 줄 사람은 결혼생활 21째인 허 용, 최경희 부부다.



허용씨는 인터뷰를 하면서 “지금도 집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아내를 바라본다. 그 말에 아내인 최경희씨는 이렇게 화답한다.

“어쩌다 남편과 손만 잡아도 가슴이 찡해져 온다”



결혼생활 21년이면 이력이 날만도 한데 이들 부부에게는 아직도 달콤한 신혼의 감정이 넘쳐난다.

“집사람이 식당에서 하루 18시간을 일한다. 허리한번 펴지 못하고, 식당일을 하는 아내를 바라보고 있으면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이 앞선다”고 허용씨는 말한다.

지금까지 이들 부부를 지켜보면서 세상 모든 부부들이 이들 부부처럼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 행복은 가까이 있는 것

오늘도 이들 부부는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식당문을 닫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 이들 부부는 나란히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다.

이렇게 둘이 걷는 이 시간이 이들 부부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남편 허용씨는 늦은 밤길을 걸으며 매일같이 하는 말이 있다.



“오늘도 고생 많이 했네”이 말에 아내는 하루 18시간의 피로가 봄눈 녹듯이 녹는다. “자기도 고생했어요. 우리 정말 열심히 삽시다”부부는 이렇게 서로를 향해 닮아가고 있다.



♣ 누나가 아내로 변신

이들 부부가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30년 전이다. 아내는 허용씨의 친구 누나였다. 허용씨가 여수고 1학년 재학 중에 반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친구 누나인 최경희씨를 처음 만났다. 1살 위의 누나였다.

그 당시 허용씨는 부모님을 일찍 여위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터에 그를 붙잡아 준 이가 바로 최경희씨다.



이들 부부가 보관하고 있는 100여통의 연애편지 속에 이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다.“들판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났어요. 그런데 그 싹이 제 마음에도 돋아나고 있네요. 경희씨를 향한 사랑의 싹이에요”

아내는 조심스럽게 편지 하나를 보여주며 이렇게 얘기한다.“지금 다시 읽어보면 조금 유치하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물건이다”



♣ 집으로 가면 아이가 된다

이들 부부는 21년 전 단칸 월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없는 집에 시집와 그녀는 부모없는 어린 시동생 둘을 10년이 넘도록 자식같이 뒷바라지를 했다.

이들이 지금은 장가를 가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어도 형보다 형수를 더 따른다고 허용씨는 흐뭇한 표정으로 얘기한다.



어린 시동생들을 엄마대신 끌어안고 살아 준 아내에게 그가 한없는 존경심을 보내는 마음의 표시이기도 하다.

지금 이들 부부에게는 대학 다니는 아들과 고3인 딸이 있다. 이들 부부가 자정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가면, 그 때부터 이들 부부는 자식들의 철저한 보호를 받는다.



힘든 하루를 보낸 엄마 아빠를 위해 자녀들이 온갖 잔심부름을 다 해준다. 부모의 이부자리를 살펴주는 것도 자녀들 몫이다. 물 심부름에서 새벽에 일어날 알람시계까지 부모대신 자녀들이 모든 것을 챙긴다.



가끔은 고3인 딸이 엄마 엉덩이를 두드리며 “우리 엄마 고생 많았지?” 하곤 한다.

이렇게 이들 부부는 집에 가면 부모가 아닌 아이가 된다. 힘들 때 부부가 마주보고 웃을 수 있는 이유도 이러한 가족간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을 도울수있어 행복한 삶

아내인 최경희씨는“나는 내일 죽어도 행복하게 죽을 수 있다.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이다”고 얘기한다.

아침시장에 가면 2천원, 3천원어치 물건을 팔기위해 오전 내내 쪼그리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을 도울 수 있는 자신이 행복하고, 나로 인해 월급을 받는 식당 언니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것도 행복하다는 최경희씨다.



♣ 둔덕동 유림식당

이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은 둔덕동의 유림식당이다. 이 식당에는 아침 6시가 되면 수십명의 아침식사 손님들이 몰려온다.

손님 대부분이 이른 아침을 먹고, 일터로 향하는 근로자들이고, 인근 여관에서 생활하는 외지인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침을 준비하는 부부의 손길에는 정성이 더해진다. 남편인 허용씨는 광양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기도 하다.



허용씨는 새벽 5시부터 출근시간 전까지 아내를 도와 생선을 굽고, 서빙을 돕는다. 그리고 정작 본인은 주방에 선채로 바쁜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한다.

그러한 남편을 보고, 아내는 남편에게 미안해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미안해 한다. 부부가 21년동안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경희씨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터로 향하는 근로자들에게 한보따리 웃음으로 인사를 건넨다.“안녕히 다녀오세요”그 장면이 마치 한 가족 같은 느낌이다.



♣ 5천원짜리 진수성찬

식탁위에는 국하나와 찌개하나. 그리고 반찬 7~8가지가 올라온다. 물가가 너무 올라 이렇게 내 놓고 이익이 날까 우려스럽기까지 한다.

백반이라는 것은 지지고 볶는 반찬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가스값이나 식재료 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는데 괜찮냐고 물었다.

“50만원을 들고 시장에 가면 옛날의 반도 사오질 못한다. 그러나 손님 대부분이 근로자들이라 반찬의 양이나 가짓수를 줄이기가 미안하다. 그들이 가족을 떠나 객지에 와서 밥이라도 든든하게 먹어야 되지 않겠느냐”며 지금처럼 계속하겠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뚜렷이 내세울 것은 없다. 그러나 주어진 삶 속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어 하는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는우리시대 작은 영웅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나는 행복한 사람

“내가 하루 18시간을 일하면서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있을 때, 나름대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다른 아내들과 비교하면 나는 분명 불행한 여자일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나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고 밝게 웃는다.



이 부부는 정이 많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가만 있지를 못한다. 하루 18시간을 일하고, 하루 4시간밖에 자지 못하면서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부부를 보면서 힘들다고 하기 이전에 이들처럼 열심히 한번 살아봐야겠다는 용기가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 댄다.

이 부부를 만나려면 둔덕동 유림식당으로 찾아오면 된다.



박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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