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빈 전 검찰총장/고려대 교수


프랑스의 석학 ‘아타리’는 「20세기 승자와 패자」라는 저서에서 “역사를 통하여 영원한 도시도 지역도 없으며 흥망성쇠를 거듭하여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도시나 지역에 주어진 기회를 정확히 포착하고 도시와 주민들이 어떻게 힘을 모아 현실로 만드느냐에 한 도시나 지역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수발전을 10년, 20년 앞당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2012여수세계박람회’가 이제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개최 당시 보여주었던 시민들의 열망이 사라지고 없다. 시민들의 감동도 사라지고 없다. 오직 ‘박람회가 제대로 치러질 것인가’에 대한 걱정만이 남아있다. 이 걱정은 여수시민의 걱정일 뿐 아니라 전국에 있는 출향인들의 걱정이기도 하다.

박람회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할 정부는 깊은 애정을 보이지 않고 있고, 시기적으로 이미 확정되었어야 할 민간기업의 박람회 참여의지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채칵채칵 들려오는 시계초침소리 만큼이나 불안한 시선으로 박람회 준비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던가. 임진왜란 때, ‘여수가 없었으면 조선도 없었다’는 말을 들었던 우리 고장이 아니었던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모진 역경 속에서도 우리 선조들이 이 땅을 지켜왔듯이 이제는 우리 세대가 이 땅을 일으켜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돌아오고, 나가고, 만나고, 떠나가고, 다시 돌아오는 곳, 생존을 향해 힘줄이 불끈거리고 꿈과 희망에 심장이 고동치는 곳, 상상과 낭만의 땅, 회한과 설움의 땅, 그곳이 바로 우리 여수가 아니었던가.

푸른 비단을 깔아 놓은 듯한 잔잔한 수면 위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의 풍광이 프랑스 남쪽의 지중해 연안보다도 아름답다는 곳, 그래서 ‘동양의 에개해’라고 불리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 여수가 아니었던가.

박람회 개최가 확정된 이후, 2년 반이라는 절대적 시간을 허비했다는 말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이제 준비할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는 말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고, 우리 후세들이 앞으로 살아갈 곳이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세월의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야 할 이유는 여수의 명운이 세계박람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세계박람회를 통해 우리 여수가 ‘세계 속의 여수’로 우뚝 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아있는 2년여 기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가장 먼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시가 해야 할 일과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우리가 해야 할 일에 30만 시민의 모든 역량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앞으로 남은 2년이라는 기간만이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중단하고 오직 박람회의 성공을 위해 시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정부의 지원이 적다고 한 숨 쉴 일이 아니다. ‘스스로 협력하여 도모하라. 그러면 국가도 도울 것이다’ 지금 현실에서 이 말처럼 가슴 울리는 말은 없다.

지금까지 우리 여수는 스스로 해보겠다는 노력보다 오직 중앙 정부만 바라보는 모습이 더 강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람회를 개최할 당시 시민 모두가 하나 되어 세계만방에 떨쳤던 그 열정과 감동어린 눈물이 이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 열정과 감동과 간절함을 이제는 되찾아야 할 때가 됐다. 길거리에서 손에 손에 환영의 깃발을 흔들며 눈물 흘렸던 그 간절함을 이제 되살려야 할 때가 됐다.

우리가 당시 흘렸던 그 눈물의 의미는 우리가 잘 살겠다는 의미보다 우리의 자식들이 잘사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의미였고, 우리 자식의 자식이 잘사는 도시를 후세에 물려주겠다는 의미였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금부터 여수시민 스스로 일어서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5천만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 의지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정부를 설득하고, 기업들을 설득해야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면 하늘도 능히 감동하는 법이다.

시민들이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리면 가장 먼저 전국에 있는 여수의 출향인들이 함께할 것이다. 그래서 여수의 인구는 30만명이 아니라 고향을 걱정하는 출향인까지 60만명이 될 수도 있고 100만명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여수의 힘이다.

지금 여수가 준비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박람회의 성공을 여수의 성공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박람회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뿐만 아니라 여수시민의 삶에 보탬이 되는 박람회여야 하기 때문이다.

박람회를 통해 우리 여수가 부산과 목포를 연결하는 남해안의 중심권역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중국~한국~일본을 연결하는 해상관광 중간지점의 위치성을 살려 세계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여수~광양, 여수~화양~고흥을 잇는 연륙·연도교를 통한 다리의 관광자원화를 준비해야 하고, 이를 통해 체류형 관광거점의 중심도시로 우뚝 설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앞을 내다보고 미리 해야 한다. 다음 세대를 먹여 살릴 산업을 위한 투자는 지금 이루어져야 한다. 더구나 여수는 풍광이 뛰어난 섬들과 연안육지의 관광자원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요트와 크루즈 운항에도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지금은 낙후지역의 대명사로 간주되고 있지만 박람회를 통해 여수의 수많은 섬들을 관광, 휴양, 건강식 어촌으로 탈바꿈시켜 도시민들이 지닌 해양 전원의 꿈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글을 모르는 사람을 문맹(文盲)이라고 한다. 그리고 색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을 색맹(色盲)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시대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시맹(時盲)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후세를 위해 그러한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박람회를 기점으로 어촌체험마을, 농촌체험마을, 사도와 낭도를 중심으로 한 공룡테마마을, 좌수영 본영이었던 여수의 장점을 살린 이순신특화산업, 여수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선사·고대유물을 활용한 역사체험산업, 남도음식을 활용한 음식문화산업, 여수의 앞바다에서 나오는 천연해양식물자원화 산업, 연안갯벌 자원화산업, 수많은 해수욕장을 활용한 여름관광산업, 해수찜과 같은 청정특화산업, 여수특산품 개발산업…. 우리가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늦었다고 손을 놓고 있을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모두가 함께 이러한 일들을 준비해야 한다. 꿈이 없이 사는 사람은 희망이 없다. 그것은 개인도, 도시도, 국가도 예외가 없다.

이제 우리는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통해 미국의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 그리고 유럽의 지중해 연안과 같은 남해안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나라가 여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수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여수시가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수시민이 이 도시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여수 박람회의 성공을 위해 서로간의 웬만한 분쟁은 멈춰야 한다. 어느 정도의 희생 또한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위대한 여수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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