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도 이제 하순이다. 요즘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멈췄다 오락가락하는 날이 반복되고 있다. 하수상한 날의 연속이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시내 곳곳에서 파업 중인 건설노동자들의 함성이 요란하다. 도시 전체가 혼란스런 모습이고, 어수선한 모습이다.

기업들은 근로자들이 파업을 철회하면 대화를 하겠다고 하고, 근로자들은 그렇다면 끝까지 한 번 해보자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그래서 시내버스파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설노동자 파업을 지켜봐야 하는 시민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만 간다.

박람회는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박람회 준비는 시원찮고, 전임 시장은 도피생활을 하다가 오늘에야 경찰에 자수하는 모습이 전국방송을 탔다. 이 모습을 지켜본 여수사람들은 부끄러움에 낯을 들 수가 없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 도시 곳곳에 희망의 망치소리가 들려도 시원찮을 판국에 연일 들려오는 암울한 소식에 도시이미지는 그야말로 급전직하다.

어제, 어느 원로분이 이러한 여수를 걱정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도 보았다. 노인이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지금 누가 더 뻔뻔스럽고 더 표독한지를 경쟁하고 있는 듯한 사람들, 전체의 입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입만 생각하는 사람들,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을 것도 없다. 이 땅에 사는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도시를 어떻게 하자는 얘긴가. 미리 대화하고, 미리 준비하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우리는 항상 임박해서 허둥대고, 임박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이 도시에는 분쟁은 있되 대화가 없고, 갈등은 있되 소통이 없다. 한쪽에서는 대화를 했다고 하지만 그 대화는 대개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쏟아 내거나 통고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을 그들은 대화라고 한다.

지역에 원로 그룹이라도 있어 이럴 때 양측을 불러놓고 등을 두드려가면서 “우리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질 않냐?”고 꾸짖고, 조정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그룹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 땅에는 그럴 수 있는 완충역할도 없다.

기업들은 언론으로 하여금 파업근로자들이 파업을 철회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의 파업 반대여론을 조성해 달라는 뜻일게다.

근로자들은 사용자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대변하지 말고 우리의 입장도 공평하게 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할 말이 많다는 뜻일게다.

파업지도부에게 당부 드리고 싶다. 지금 시민여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 달라는 당부다. 노동자만 뿔이 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는 시민들도 단단히 뿔이 나 있다는 뜻이다.

기업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손해가 얼마가 나더라도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겠다며 백기투항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현실대로 인정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 달라는 당부다.

지금 이 도시는 어디로 가는가? 지금의 갈등이 결국 지역을 분열시키고 피폐케 함으로써 사회 구성원 모두를 고통 속으로 몰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지금 추락하고 있는 것은 도시이미지만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제, 여수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모 교수가 이런 진단을 내렸다. “여수가 이대로 가면 앞으로 2년 후에는 지금의 1/2, 4년 후에는 지금의 1/4, 8년 후에는 1/16로 시세가 줄어들 것이다”

자신의 눈에는 도시의 추락이 훤히 보이는데, 시민들은 이에 대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염려했다. 염려가 있어도 대책이 없고, 대책이 있어도 실천이 없다.

우리가 지금 이러면 안 되질 않는가? 이번 기회에 상대의 콧대를 꺾어 놓겠다는 심산이 아니면, 그리고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산이 아니면 이제는 서로가 가슴을 열고 마주 앉아야 한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수년 동안 위정자들의 부정부패에 시달리고, 전임 시장의 실정에 시달리고, 시급한 박람회 걱정에 시달리고, 자녀들 교육문제에 시달리고, 이제는 연이어 발생하는 지역 내 갈등을 지켜보아야 하는 시민들이 불쌍하지도 않은가?

시민들은 하루하루 그저 울고 싶은 심정인데, 왜 우리는 참을 줄을 모르고, 양보할 줄을 모르는가? 왜 다들 우리의 자식들에게 기를 쓰고 부끄러움을 가르치려고 드는가?

이번 파업이 끝나면 이제는 뇌물을 받은 시의원들의 문제가 또다시 시민들의 가슴을 후벼 팔 것이다. 그것이 끝나면 이제 또 무엇이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왜 우리는 시민들의 가난한 가슴에 가난한 꿈 하나도 심어주지 못하는가? 이렇게 가면 서로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왜 느끼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자식들이 앞으로 살아갈 이 도시를 위해 내가 조금 더 양보하겠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는가?

이랬거나 저랬거나 도시는 굴러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은 그 와중에서도 불편 없이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서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새가슴이 되어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민들 피를 말려 죽일 생각이 아니면 이제 여기서 멈춰야 한다.

우리가 합심해서 박람회를 잘 준비하는 일, 처절하게 무너진 여수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는 일, 지금 우리 앞에 이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우리가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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