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는 꿈을 꾼다. 소나무, 소사나무, 동백나무 분재들이 꿈을 꾼다. 어느 바닷가 벼랑에서 30년 혹은 50년의 해풍을 맞으면서 살았던 그때의 꿈을 꾼다.

그 옛날, 바람서리 맞고 씨앗이 떨어진 운명의 자리에 뿌리를 내리면서 온갖 풍상을 이겨 내고 의연하게 30년, 50년을 살아왔던 꿈을 꾼다.
50년을 살아온 동백나무는 흰 눈 속에 꽃을 피워서 겨울을 나고, 붉은 꽃잎 바다에 띄워서 봄을 부르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밤 깊어 눈 내리고 하얀 몸으로 아침햇살을 맞이하는 꿈을 꾼다.

동백나무는, 소사나무는 어쩌다가 사람들 눈에 띄어서 몸을 지탱했던 목근이 잘려지고 가지가 쳐지면서 화분위에 얹혀서 살게 된 분재가 되었을까.

분재는 철사걸이로 옭아매어지고 바람 골목도 없는 하우스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자신이 왜 뽑혀져서 가위질을 당해야 하고 비틀어 매진 채로 오히려 지극한 돌봄을 받아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제 스스로 뿌리를 내리지도 못하고, 물길도 찾지 못한다. 분재는 주는 물만 받아야 하고. 주는 거름에 생명을 의지 하면서 바람 길도 없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100년을 살아도 키는 1M도 키우지 못한다. 때로는 피부가 벗겨져서 흰 뼈가 드러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흐뭇해 하지만 분재는 꿈도 없이 세월을 신음한다. 여기저기 구경거리로 옮겨 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팔려 다니기도 하면서.......

분재에게는 바다를 바라보는 평화가 사라진 지, 태풍을 맞서서 견디던 승리의 기쁨도 빼앗긴 지 오래다.
몸은 가위질 흔적이요, 톱질당한 뿌리는 발 뻗어 나갈 공간도 없다. 보통의 나무가 되어서 숲이 되고자 했던 소박한 꿈도 사라졌다.

낮에는 태양을 바라보고 눈비도 벗 삼아 맞이하고 바람도 가지에서 쉬어가게 하고, 눈서리마저도 어깨위에 함께하며 살았던 그 시절은 어디로 갔을까?

100년을 살아도 재목으로는 쓸모가 없고 사람들을 위한 관상용으로 한 생을 산다. 사람들은 사고팔고 감탄하지만, 분재는 기형을 벗어나지 못한다.

분재는 오늘도 꿈을 꾼다. 그 옛날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다 이야기를 듣던 언덕에서 별, 바람, 다람쥐, 꿩, 노루하고 동무하면서 살았던 큰 나무의 꿈을 꾼다.

본래의 모습으로, 제 자리로 돌아갈 꿈을 꾼다.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그 옛날 자생의 땅으로 돌아갈 꿈을 꾼다.

분재는 이미 거목이 되었을 자신을 생각한다. 스스로가 숲이요, 새들의 안식처가 되었을 자신을 생각한다.
분갈이를 해 주지 않아도, 누가 물을 주지 않았어도 스스로 물길을 찾아내서 뿌리를 내렸을, 가지를 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당당한 수형을 갖추어 갔을 자신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소사는, 동백나무는 제 모습을 잃어갔고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사람의 손길이 하루라도 닿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생력을 상실한 나무가 되었다. 병해충도 스스로 이기지를 못한다.

분재는 꿈을 꾼다. 언젠가는 땅에다 다시 뿌리를 내리고 살 날을 꿈꾼다. 소나무, 소사나무, 동백나무는 땅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
전깃불 보다는 별빛 달빛을 보아야 하고, 하우스보다는 벼랑에서 바다를 보고 숨 쉬어야 한다. 사람의 손길보다는 차라리 비바람을 맞는 것이 더 행복하고, 수돗물 보다는 빗물이 더 반가운 생명수가 된다.

수능이 끝났다. 우리 여수 학생들의 수능의 결과가 좋다. 그런데 아직도 여수의 아들딸들이 밖으로 실려 가듯이 나간다. 아직도 여수를 떠나서 외지로 나가야 성공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하우스 속 명품 분재가 아무리 좋아도 동백골의 아름드리 소나무만 하겠는가? 오늘도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너무 많은 가위질을 해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혹시 우리도 자녀들을 관상용 명품분재로 만들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백기창 여수한영고등학교 교장

저작권자 © 뉴스탑전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