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삶이란 게 대부분 다 그렇지만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또 성공한 삶은 어떤 모습이며 그리고 우리에겐 친숙한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등등 반복된 우문 속에 갇혀, 천천히 익숙하게 박제화 되어 가는 느낌이다.



화가 권하주의 삶 속에 일상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전업주부로 또 화가로의 치열함 속에 함몰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20대의 치기와 오만은 스물여섯의 나이에 홍대 미대 입학으로 이어지고 그 때 시험 보러 가는 버스 안에서 그는 '합격을 시켜주신다면 좋은 그림을 그려드릴게요' 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었단다.

그는 덜컥(?) 합격을 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그는 그림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그런 그가 이번 팔월에는 "스스로 빛나는 꽃"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갖는데 특별히 꽃이라는 주제를 붙들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화가 권하주의 작업방식은 "레드"와 "풍경"이라는 작품에서 보듯이 주제를 가지고 관자가 심각하게 논쟁하기를 바라기보다, 관자가 가지고 있는 제한적 소통의 한계를 풀어버려 자유로운 상상에 맡기며, 그들이 스스로 결론짓도록 하는 형식을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정작 그는 그러한 자유스러움을 통해 유희적이며 적극적인 소통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꽃이라는 주제의 작업방식도 탐미주의적 시선이 아니고 꽃이라는 일상의 소재를 통해 각자 인식의 수준이 바뀌기를 기원하는 점이다.



인식의 수준은 보편적 도덕을 강조하여 건조한 듯 보이나 삶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의 방법에 대한 메뉴얼인 셈이다.

그것은 일종의 설교적 메시지로 오해될 수도 있지만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순화시키고 욕심사나운 우리의 세상을 정화하고자 한다.



새로운 인식의 깨달음은 또 다른 인식으로의 단계에 이름으로써 모든 것이 자신으로 흡수되어 겸손과 겸양 그리고 높은 도덕성으로 무장되어 업그레이드될 때 그림은 역작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화가 권하주가 이번 전시회에서 관자들에게 주문하기를 사실 속에 추상이 더 많이 있고 그것들의 오묘한 결합으로 꽃 그림들은 더욱 더 다양한 모습들로 보여 질 것이기 때문에 그 점을 놓치지 마시라고 한다.

그리고 이번 작품전을 통해 다양한 표현방법이 동원된 점을 주목해주고 다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라는 주문도 빠뜨리지 않았다.



우리가 그의 인식의 변화론에 동의한다면 전시장에서 그림을 보고 오른손을 번쩍들면 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막 화실을 나오려고하는데 그가 말했다.

"하나님이 인간 다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꽃이 아닐까요?"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요즘 같아선 꽃이 첫번째 아닐까요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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