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느 가난한 학부모로부터 이러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에게 입힐 헌 교복 한 벌이 필요한데 어디서 얻을 수 있겠냐?”

그 전화를 받고 아이의 학교를 물어보고, 아이의 덩치를 물어보다가 무심결에 “어떻게 해서든지 새 교복 한 벌을 마련해 드리겠다”는 대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교복 공동구매를 하지 않은 학교라면 교복 한 벌에 20~25만 원 정도 하는 것 같습니다. 없는 집에서 그 돈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 학기가 되면 이렇게 부담되는 것이 어디 교복뿐이겠습니까. 새 가방에, 새 참고서에, 새 체육복에… 조손가정이나 극빈층의 아이에게 새 학기는 이렇게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울산시교육청이 울산 관내 어려운 가정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책으로 ‘울산시 저소득층 학생 복지증진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옵니다.

이 조례안이 시행되면 울산시는 관내에 거주하는 중·고 신입생 중에서 저소득층 자녀 모두에게 교복구입비와 수학여행비를 올해부터 무상으로 지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 멋있는 조례안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참 예쁘지 않습니까? 우리는 왜 이러한 생각을 못할까요?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부족해서일 것입니다.

각 교육청만 이렇게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지원 사업을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미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 다투어 극빈 가정의 자녀뿐만 아니라 차상위 가정의 자녀들에게까지 교복비 등을 지급하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에도 학창시절 돈이 없어 헌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던 기억을 마음 한 곳에 간직하고 계신 분들도 상당수 계실 것입니다.

또 누군가는 돈이 없어 친구들이 다 가는 수학여행조차도 가지 못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저 역시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몇몇 친구들과 텅 빈 학교 운동장에서 허망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하지만 소득수준 2만불 시대인 지금에 이르러서도 누군가 돈이 없어 헌 교복을 입어야 하고, 또 누군가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어른들의 생각이 조금 더 따뜻해야 하고, 조금 더 부지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흔히 “요즘 아이들, 문제 많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아이들에게 문제가 많은 것이 아니라 문제는 우리 어른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내 것, 내 아이만 생각하는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아이는 우리라는 개념보다 오직 내 것만 생각하며 자랄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 사는 사람 잘 살고, 못사는 사람 못사는 자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적어도 아이들만큼은 돈이 없어 서러움을 겪는 일이 적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전면적 무상급식보다 어려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무상교육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추운 날, 어느 가난한 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정말로 쓰디쓴 인생을 배우지 않도록 어른들이 조금 더 살펴보아야 할 때입니다.

어제 헌 교복 하나 구해달라는 그 전화를 받고 이러한 처지에 놓인 아이가 한두 아이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혼자 낑낑대다가 새벽에 ‘저소득층 자녀 교복 지원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목표 금액은 2월 말까지 1천만원이라고 제가 아는 상당수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메일을 보내고 아직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800만원이라는 거금이 인터넷으로 예약되었습니다. 반응이 이렇게 폭발적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러한 따뜻함이 이 시대의 희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헌 교복 한 벌로 시작된 고민이 많은 아이들에게 새 교복을 입혀주는 감격이 될 것 같습니다.

도움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을 위해 추가로 계속 받겠습니다. 여수시민 만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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