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라 일찍 학교에서 돌아온 큰 딸 정미와 함께 집을 나섰다. 이날은 결연 대상자들에게 밑반찬을 전달하기로 정한 날인데 집사람이 바빠서 딸과 둘이서 가기로 했다.



먼저 여서동 대치마을의 김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이제 연세가 95세가 된 할머니에게 우리는 '민드라미제에서 온 부부'로 통한다.



지난 5년간 할머니에게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중 할머니의 시력을 앗아간 손자의 죽음과 딸의 죽음이 가장 가슴 아팠는데 이제는 그 슬픔을 이기시고,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



할머니는 인근 교회에서 마련해준 안경 덕분에 보는 것도 더 편하다고 하신다. 때는 가을이라 마당의 호박잎은 갈수록 무성해지고, 하나 따가라고 조르시는 할머니의 마음을 위해 우리는 작고 예쁜 놈으로 하나 골랐다.



할머니께 반찬과 선물을 챙겨 드리고, 안방과 주방을 정리해 드리고, 냉장고를 살펴드리는 동안 할머니는 정미의 손을 잡고 이것저것 물으시고, 착한 정미는 일일이 대답을 해드리며 말벗이 되어드렸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할머니에게 곧 다시 오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우리는 둔덕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박씨 아저씨를 찾아갔다.

항상 혼자 집에 있는 것이 안쓰럽기는 하지만 집안이 언제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부지런한 분이라는 것을 느낀다. 호인 풍의 모습이나 정다운 응대로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시고, 늘 고맙다는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셔서 다녀온 뒤에 마음이 뿌듯해지는 곳이다. 오늘은 박씨 아저씨에게 가볍게 인사만 드리고 물품을 전달한 후에 두 동 떨어진 곳의 민경이네 집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과 결연된 세 가정 중에서 가장 마음이 쓰이는 집이다. 갈 때마다 느끼는 민경이의 무표정한 얼굴이 항상 가슴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동생 형주는 이제 만나면 웃기도 잘하고 말도 곧잘 하는데 한창 사춘기인 민경이는 만난 지 2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마음을 열지 않은 것 같다.



정미와 둘째 선미와 각각 위아래로 1년 차이라 정이 배기만 해도 쉽게 어울릴 것 같은데… 더 자주 만나야겠다. 집으로 오는 길에 씩씩한 모습으로 시종 웃음 짓는 정미를 보면서 ‘참 잘 자라고 있구나' 하는 대견한 생각을 하였다.



내가 이렇게 이웃을 보살피게 된 계기는 젊은 날, 외항선을 타고 갔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을 보면서 그 동안 불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환경이 얼마나 축복 받은 것인가를 깨닫고 난 이후부터였다. 그 생각이 여수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아내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역과 이웃을 위해 작은 봉사라도 하면서 살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우리가족이 자원봉사를 시작 한 것은 큰딸 정미가 태중에 있을 때인 1990년 4월이었다. 태어난 지 백일쯤 지나서 함께 어울린 구봉 어린이집의 아이들이 정미에게 매달려 손을 만져보고 양말을 벗겨서 발가락을 만져보며 신기해하던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린이날 제일 해보고 싶은 일이 통닭 실컷 먹는 일이라기에 통닭 사다가 운동장에서 둘러앉아 먹었던 일, 작은 녀석들이 추석 돼지 잡는다고 제법 어른처럼 폼 잡던 일, 씩씩하지만 한 없이 여린 마음을 가졌던 사내 녀석들은 지금 모두 성장해서 사회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다.



선미가 태어나고, 이어서 연년생으로 은광이가 태어나면서 봉사활동이 뜸해졌다가 1996년부터 다시 여수종합사회 복지관의 소개로 소경도에 살던 미정, 혜정이 자매와 결연하였다.



따뜻했던 그 해 봄날, 아이들 손을 잡고 미정이 집을 찾아갈 때의 아름다운 광경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소경도 작은 집의 마루와 작은방, 낡은 그 집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가 처음 찾아온 우리가족을 낯설지 않게 했었다.



미정이 혜정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하는 동안에 우리는 아이들을 따라 소경도로, 문수동으로, 여서동으로 찾아 다녔다.

그리고 주말과 방학 때면 우리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생활하기도 했고, 때로는 함께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생각을 그 아이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있을 그 아이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고향이 아닌 객지에서 둘이 서로 의지하고 힘이 돼 주면서 잘 살고 있을까?



서로 어지간히 정이 들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취업을 하여 떠난 지 몇 해가 되었지만 소식이 없는 걸 보니 대상자와 결연자의 관계에 머물렀구나 하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고 반성도 된다.



미정이네와 결연이 끝난 후에 우리 부부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결연자들과의 관계가 친척 같은 관계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왕 봉사를 하면서 단순하게 복지관의 심부름을 하거나, 의무적으로 찾아보는 수준이 아닌, 한 가족 같은 공동체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더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 말고, 다른 좋은 방안은 없을까 고민하면서 아내는 열심히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정말로 평생을 함께 할 결연자들을 만나서 서로의 정이 오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어가는 것이 우리 부부의 기도 제목 중에 하나이다.



오늘도 나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우리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고 살맛나는 세상이 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서로 사랑하며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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