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리(柳美里)의 최신작인 수기⟪생명⟫은 ‘하나의 스캔들을 넘어 성스러운 드라마에 도달해 버렸다’고 일본의 문예비평가 시미즈(淸水良典)는 극찬하고 있다.

유미리가 1984년 16세 때 뮤지컬 극단의 작·연출가인 히가시(東由多加)의 연구생으로 입단(入團)하여 2년간 재적하게 되었는데, 그 이듬해인 17세 때부터 히가시(東)와 약 15년간을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러던 중 히가시의 폐암 선고와 다케하루(丈陽-뱃속의 아들)의 임신을 거의 동시에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되는 생명에 대한 애착과 고뇌와 방황의 과정을 너무나도 절실하게 밝혀 놓은 글이다.

‘마치 연극 도중에 무엇엔가 떠밀려 무대에서 떨어져 다시 기어오르려고 하니 막은 내려 연극은 끝나버린 것 같은’ 심경이었다고 유미리는 그 당시의 충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비장한 결심으로 일어선다. “나는 태아와 암이라고 하는 두 개의 존재가 생명이라는 굴레로 맺혀 있는 것 같은 야릇한 감각을 가졌다. 그리하여 생명의 탄생과 재생에 할 수 있는 한, 힘을 다해 헌신하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히가시는 아들 다케하루가 세 살 될 때까지 만이라도 살 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어린 생명을 멀리 바라보며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

유미리는⟪생명⟫ 후기(後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히가시는 저세상으로 가버려, 나와 다케하루만이 이 세상에 떨어져 남았다. 히가시와는 이제 만날 수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죽은 뒤의 이야기를 해 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한들 소용이 없다. 이제 두 번 다시.”

유미리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작가이다. 그러나 ⟪이노치(命)⟫는 소설이 아닌, 그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에 다시 한 번 인간 생명의 절실함과 소중함을 깨우치게 한다.  

히가시의 폐암과 죽음으로 얻게 된 이 책이 발간된 지 5개 월 만에 9쇄가 넘었으니 인세가 대단했겠지만, 그토록 많은 돈도 인간의 생명에는 값할 수 없는 것이고 보면, 우리는 뭐 그렇게 부러워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이어 속편⟪혼(魂)⟫이 출판되어 다케하루의 양육 과정을 통한 새 생명에의 따뜻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사촌 누이동생이 식물인간이 된 채 병원에 누워 있은 지 올해 5년째이다. 사업에 열중하던 나머지 술과 인연이 되어 과음을 하던 남편이 간경화로 가버린 것에 대한 충격으로 1년 만에 쓰러진 채 병원으로 실려 간 의식불명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산소호흡기도 떼어버리고 계속적인 영양제 주사로 이제는 얼굴이 환한 정상인이 되어 종일 잠만 자고 있다.
한두 달도 아닌 몇 년을 이렇게 계속하다 보니 가산은 탕진되어 이젠 남은 가족들의 식생활도 어렵게 되었다.

혼기를 놓친 과년한 딸들은 그런 답답한 상황에서도 아무런 불평 없이 교대로 간호를 하며 그들 어머니의 소생을 기원하고 있다.
산소 호흡기도 달고 있지 않은 화색 좋은 식물인간의 경우, 안락사라는 말이 과연 적용될 수 없는 것인지.

식물인간이 된 지 10년 만에 깨어난 예도 있다지만 그것은 젊은 사람의 경우에 해당하는 희망 사항일 뿐, 생각함이 없는 혼수상태이고 보니 삶에 대한 고민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인지 흰머리 하나 없는 흑발 소녀 그대로다. 그는 지금 어떤 세상을 헤매고 있는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짐짝을 묶은 끈이 풀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칼로 잘라 버리지 않는가. 사람의 목숨은 말 그대로 고래심줄이다.

지난 3월초에 집안일로 한 달 가까이 서울에 있다가 왔다. 집을 오랫동안 비우는 경우, 누구나 걱정하는 것은 도둑이다.
그러나 내 집에는 나무젓가락 한두 개와 먼지 쌓인 책 몇 권밖에 없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 독서 좋아하는 도둑은 없을 테니 하는 말이다.
다만 아파트 베란다에 벌여 놓은 꽃나무 몇 그루가 마음에 걸려 불안할 뿐이다. 하루만 물주기를 걸러도 시들해지는 것이 화분 속의 화초들이기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일을 빨리 마치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벌떼처럼 날아오는 봄철의 결혼청첩장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상상 외의 눈앞 현실에 놀랐다. 베란다의 분홍 철쭉이 만발하여 거실의 유리창을 환히 밝혀 주고 있지 않은가. 보잘 것 없는 한 그루의 꽃나무가 보여 주는 무서운 생명력 앞에 나는 그만 위축되고 말았다.

얼마 전에 정신병 환자 아들 때문에 한 평생을 괴로워하고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모처럼의 친구 목소리에 반가웠지만, 독한 술 냄새가 수화기를 통해 물씬 풍겼다.

평소에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친구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말소리는 혀 놀림이 여의치 않을 정도였다. 뭐라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가운데 분명한 한마디를 남기고 전화는 끊어졌다.

“나 오늘 자살사이트에 등록했다.”
그 친구의 심정은 이해할 만했다. 온갖 치료와 방법을 강구해 봤지만 허사였다. 중학 시절에 발병한 것이 지금 나이가 마흔이 넘었으니 이런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비의 심정인들 오죽했겠는가.

전화가 걸려온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그 친구의 부고장이 날아오지 않는 것을 보니 그는 지금쯤 마음을 돌려 아파트 베란다의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호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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