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섬과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절경이 내 품에







푹푹 찌는 더위에 건물들은 냉기 가득한 냉장고가 되어 가고 거리는 그로 인해 더욱 찜통이 되어 간다. 여름은 이제 산과 바다로 그리고 자연으로 우리를 내 몰고 있다.



피톤치드 팍팍 뿜어내는 나무들과 소박한 들풀들이 정겨운 산, 새 하얀 모래사장과 손에 잡힐 듯 날아다니는 갈매기 그리고 부서지는 파도소리 낭만적인 바다가 우리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그 간 미루고 미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공과금 납부 마감일 마냥 금오도 비렁길로 가는 뱃길은 게으른 여행객의 걸음을 재촉한다.



멋스럽게 단장한 여객선터미널에는 비렁길을 만나러 가는 여행객들과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터를 잡고 있다. 얼마전만해도 이용객이 적어 노선 운영이 어려웠다는데 요즘은 비렁길의 유명세로 하루 두 번 운항하는 뱃길에 콧노래가 더해진단다.



여수에서 함구미로 가는 여객선!

철 계단을 올라 2층 방 입구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작은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여객선을 이용하는 섬 주민과 관광객들이 1시간이 넘는 뱃길에 지루하지 않도록 누군가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소박한 세상이야기가 재미를 더해 갈 즈음 어느덧 뱃머리는 금오도 비렁길의 초입 함구미에 도착했다.



매봉산 위로 걸쳐있는 구름도 넘쳐나는 여행객에 신이난 모양이다. 4시간이 넘는 산행에 작은 생수 한통과 화장실은 미리 들러 해결하고 가야한다.



금오도 비렁길은 함구미 마을 뒤편의 산길에서 해안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8.5km의 코스다. 선착장에서 내려 오른쪽 길로 돌아서면 페인트를 곱게 칠한 담벼락에 커다랗게 새겨진 ‘비렁길’이라는 글귀를 따라 시작된다.



산길로 들어서니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바짝 말라 땔감으로 쓸만한 나뭇짐을 잔뜩 짊어지고 내려오고 계셨다. 여든은 훌쩍 넘으셨다는데 젊은 장정만큼이나 기력이 좋으시다. 아마도 금오도의 맑은 공기와 평생을 친구 삼았을 이 산길 때문이리라!



함구미에서 두포까지 1코스 산행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비렁길의 숨은 매력을 쏙쏙 찾아내 챙겨갈 심산으로 열심히 산길을 따라 걸었다. 동무삼아 피어있는 조그만 들꽃들이 정겹다. 얼마 가지 않아 하늘로 솟은 가녀린 소사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동화같은 길이 나타났다.



쉬지 않고 부채질 해대는 나뭇잎들 덕에 여름산행에 미소가 번진다. 군데군데 나무틈새로 보이는 잔잔한 바다풍경에 감탄사가 절로난다. 몇 걸음을 더하자 나무데크로 멋을 낸 벼랑길이 나타나고 그 아래로 보이는 금오도의 푸른 바다가 아찔하게 눈부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멀리 보이는 작은 섬들은 “나 여기 있소”하고 까치발을 하고 서 있고, 목재데크를 따라 걷노라니 눈앞에 독특한 이름의 바위가 손짓하는 여인네의 손 모양처럼 곱고 아름다운 조각 작품을 등에 업고 서 있다. 그 옛날 미역을 널어 말렸다하여 ‘미역널바위’라 불리는 이 바위에는 작은 무덤 하나가 터를 잡고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자손의 번창을 위해 바둑혈인 이곳에 묘를 썼으나 바다 위로 퍼져 나오는 청량한 소리를 듣고자 바둑돌들을 모두 바다로 던져 버려 그 기운이 다하게 되었다 한다.



미역널바위를 뒤로 하고 굽이굽이 도는 벼랑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벼랑길과 숲길을 번갈아 걸으며 간간히 바위나 풀숲에 앉아 도시락과 간식을 먹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솔향이 녹아내리는 소나무 숲길을 지나 옛 송광사 절터에 이르렀다.



보조국사 지눌이 비둘기 세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날아 든 이 곳에 터를 잡고 절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안내판만 자리하고 있지만 그 옛날의 위엄이 아직 살아 있는 듯 하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아담한 어촌마을이 바다를 품고 앉아 있다. ‘시장이 반찬이다’고 했던가! 기대 없이 들어선 소박한 식당에서 눈과 입이 제대로 호강을 했다.



팔딱팔딱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싱싱한 회, 생전 처음 먹어보는 작은 전복 모양의 군부와 온갖 해산물 등의 오묘한 맛에 게 눈 감추듯 밥상을 깨끗하게 비웠다. 뱃시간을 핑계 삼아 늘어지는 몸을 추스르고 다시 길을 나섰다.



굴등전망대를 가기위해 가파른 목재데크를 따라 내려가려니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전망대를 돌아 빈집 사이로 난 골목으로 들어섰다. 길 아래로 보이는 빨간 지붕의 집 한 채가 구중궁궐마냥 신비롭다. 곧바로 가파른 돌길이 10여분 계속되었다. 다른 여느 산에 비하면 산보정도의 코스지만 사람마음이 참 간사하여 이 길이 힘에 부친다.



돌길이 끝나는 무렵 촛대마냥 솟아있는 바위가 금방이라도 불을 밝힐 기세다. 한쪽으로 설치된 전망대에는 탁자와 의자가 우아한 자태로 앉아 있다. 바다를 호령하듯 의자에 앉아 근엄한 자세로 포즈를 취하는 아저씨와 미스코리아 마냥 사진을 찍어 대는 무리의 아줌마들이 자연과 함께 눈에 박힌다.



멀리 또 다른 마을이 수줍게 숨어있다. 방파제가 길게 놓여 있고 바다에는 검푸른 미역들과 톳이 속살을 드러내듯 푸른 물결에 일렁인다. 마을로 들어서니 허리 굽은 소나무가 길가까지 내려와 인사한다. 여기가 직포마을이다. 몇 백 년의 세월을 홀로 보낸 것이 아쉬운지 커다란 소나무가 그늘을 내어 주며 친구를 부른다.



한참동안 땀을 식히고 1시간 정도 시멘트 길을 걸어 면 소재지에 도착하니 뱃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표를 끊고 근처 정자에 앉아 시원한 생수 한 병으로 비렁길의 여운을 달랜다.



머지않아 나는 비렁길에서 얻은 행복한 여운으로 여수의 또 다른 섬을 걷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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