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라는 도시이미지는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느낌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엑스포를 치르는 도시. 여수산단이 있는 산업도시. 오동도가 있는 도시. 그것도 아니면 남도 끝에 있는 작은 도시쯤으로 생각할까.

이것 외에 여수라는 도시는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우격다짐으로 말하라면 왜 못할까만은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만큼 우리도시가 스토리텔링을 만드는데 소홀한 것이 아닐까.

식객을 쓴 허영만 화백의 고향이고, 세계적 사진거장 배병우 작가의 고향이고, 전원일기의 김정수 작가의 고향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문화적 이야기와 전시장 몇 개는 나올 수 있는 도시가 아닐까.

임진왜란 때 여수가 없었으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다는 전라좌수영의 본영이 있었던 도시이니 역사적 이야기 몇 개는 비중 있게 나올 수 있는 그런 도시가 아닐까.

우리나라 전체 섬의 약 10%인 317개의 섬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도시이니 바다와 섬에 얽힌 전설과 설화 몇 개 정도는 비중 있게 회자되는 그런 도시여야 되지 않을까.

여기저기에 공룡들의 발자국이 선명한 도시이니 쥐라기 공원정도는 아닐지라도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이야기 몇 개는 있어야 되는 그런 도시가 아닐까.

다른 지자체는 없는 나비를 가지고도 먹고 사는데 우리는 있는 것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그런 도시가 아닐까. 그런 씁쓸한 생각이 든다.

만나는 사람 중에는 존경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존경을 거두고 싶은 사람이 있고, 자꾸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중에는 만나나 마나한 사람이 있고, 똑똑하기는 한 것 같은데 왠지 정이 안가는 사람도 있다.

도시도 이처럼 나름의 인상이 있다. 살고 싶은 도시가 있고, 살고 싶지 않은 도시가 있고, 도시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도시가 있고, 다시 찾고 싶은 도시가 있고, 두 번 다시 찾고 싶지 않은 도시가 있다.

여수는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 도시일까. 작지만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도시였으면 좋겠다.

또 누군가 ‘작지만 존경받는 도시’에서 ‘기역자’ 하나를 뺀 도시가 되면 안 된다고 농담을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도시가 내가 먼저 따뜻해지고,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그런 도시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따뜻한 도시는 사랑이 많은 도시다.

따뜻해지겠다는 것은 곧 사랑이다.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따뜻함이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힐난하는데 익숙한 도시가 아니라 누군가를 보듬어주고 아껴주는데 익숙한 도시가 따뜻한 도시다.

그래서 따뜻함이란 타인을 내 몸같이 여기는 것이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따뜻한 도시는 삶 속에서 절망을 찾는 도시가 아니라 삶 속에서 희망을 찾는 도시다. 그래서 따뜻함이란 희망이다.

어떤 일에서도 작은 희망을 발견해내고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따뜻함이다. 그래서 따뜻한 도시는 희망을 잃지 않는 도시다.

따뜻함이란 나눌수록 더 커지는 법이다. 따뜻한 사랑을 나눠주면 따뜻한 사랑이 더 커지는 것이고, 차가운 사람일수록 더 따뜻해지기 쉽기 때문에 따뜻함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도시가 온국민의 존경을 받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따뜻한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그랬다. “더 좋은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한 사람이 선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고, 강한 사람이 선해져야 한다. 그러면 이 세상에 평화는 저절로 올 것이다.”

우리 도시가 이러한 도시였으면 좋겠다. 독한 사람, 뻔뻔한 사람들의 주장만이 비중 있게 다뤄지는 그런 도시가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의 선한 사람의 생각이 오롯이 반영되는 그러한 도시였으면 좋겠다.

서로를 배려하는 그런 도시가 따뜻한 도시가 아닐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강한 사람이 먼저 선해져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속뜰이 먼저 따뜻해져야 한다.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 그래서 행복을 부르는 주문은 따뜻함이다. 그 따뜻함 속에 사랑도 존경도 희망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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