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이 좋아서 툇마루에 앉아 쉬고 있는데

호랑나비가 뜰에 핀 봉숭화꽃에서 놀고 있다

나도 놀고 싶어서 다가가니 저만치 멀어진다.

또 다가가면 일정한 간격을 두며 멀어졌다

다시 오는 까닭은 무슨 연유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혹시 그놈이 아닐까

봉숭아 새싹이 예뻐서 이리보고 저리 보는데

웬 괴상한 녀석이 있는 것이 아니가

하도 신기해서 건드려 보았더니

바싹 긴장하는 모습이 우스워

자꾸 자꾸 막대기로 콕콕 누르니 아이고 죽겄네하고

자빠지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하, 그녀석이 나를 기억하구나.

 웃음이 얼굴에 번졌다 너무 반가웠다

기특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장난이지만 그 녀석은 죽음이 달려있던

순간이었으리라

지금도 나도 모르게 죽음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지 않을까

말로서 행동으로서 여러 가지로 괴롭히고 있지나 않을까

외딴 산중에서 새어 나오는 빛줄기처럼

가물가물 하고

스트로보처럼 번개 같고 칠흑 같은

어둠속에 묻혀 있기도 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러고 보니 기억은 시간의 친구이지만 생성과

소멸이기도 한다.

아무 때고 불쑥 찾아와 향수에 젖기도 하고

잊히고 사라져 버린 사람들을 안타까이 부르게 하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주기도 하고

가까이 늘 가까이 두고 져 하는 사람들에겐

낯설게 한다.

생성은 날숨이고 소멸은 들숨이기도 한다.

그래서 기억은 날숨이고 들숨이다

생성은 축복 속에 이루어지고 소멸은

희망으로 이어진다.

그 또한 기억은 축복이며 희망이다

그래서 기억은 축복과 희망을 지녀야

아프다는 삶이 행복하다

호랑나비는 청명한 가을 하늘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한 오브제를 통해서 부끄러운 삶이 되지 않기를…….





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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