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김성곤 국회의원님이 주최하는 정책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수 교육을 말한다’는 주제로 30여분간 주제 발표를 했습니다.

이 주제는 제가 평상시에 학부모들이나 시민들을 상대로 2시간 정도 강의하던 내용입니다. 그것을 짧게 얘기하라 하니 쉽지는 않았습니다.

왜냐면 교육문제가 짧게 얘기해서 짧게 결론을 내릴 만큼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교육에 관한 한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육문제만큼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그 진단과 처방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토론회나 예산 지원이 고등학교 위주로 편성되면 “왜 초등학교나 중학교에는 관심을 갖지 않느냐?”고 말씀 하실 수 있습니다.

내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면 “지금 여수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말씀 하실 수 있습니다.

내 아이의 학교 성적이 중위권에 있으면 “왜 중하위권 아이들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느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내 아이 성적이 상위권에 있으면 “너희들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도 모르느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내 아이가 공고나 상고와 같이 특성화고에 다니고 있으면 “특성화고에 다니는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이 아니냐?”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얘기를 골고루 수용하게 되면 “특징이 뭐냐? 하고자 하는 것이 뭐냐?”며 따지고 드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래서 교육문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얘기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옳은 말씀을 한다는 것입니다. 틀린 얘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서로 놓인 입장이 다를 뿐입니다.

나라님도 해결 못하는 교육문제를 지역에서 해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토론을 통해서 문제점들이 하나씩 발견되고, 내 입장도 있지만 “상대편 입장도 있겠구나” 하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때,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균형 감각입니다. 귀를 열고 이 모든 사람의 입장을 듣고 이해는 하되, 한정된 예산으로 선택과 집중이라는 정책의 우선순위와 정책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나요? 더 많이 알게 되면 더 많이 사랑하던지, 더 많이 미워하던지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언론밥을 먹고 있는 저는 그동안 여수교육 정책에 대해 십자포화를 날렸던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준비하고 정신 차리고 노력했으면 여수교육이 시민들에게 이렇게 몰매(?)를 맞고 있겠냐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작년과 올해 여수교육이 바뀌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수시에서 교육정책을 만들고 있는 관계자들도 하나라도 더 좋은 정책들을 만들기 위해 밤 늦게까지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제가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일선 학교들도 “이제는 시민들에게 욕을 그만 먹겠다”며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시민들 보기에는 아직 미흡할지 모르지만 그 진정성만큼은 이해 해 주셔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교육에 관한한 비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교육에 관계된 발언을 많이 하게 되고,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 가운데 앉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수많은 교육전문가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그 분들에게 교육을 배웁니다.

참 교육자에게는 참교육을 배우고, 참 교육자가 아닌 분에게는 아닌 것을 배웁니다. 그것을 필터링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저는 선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진솔한 말씀들을 해 주십니다. 그러한 얘기들을 들으면서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리고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시민들은 교육 종사자들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고, 교육 종사자들은 시민들의 생각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존중이란 상대가 아닌 자신의 인격에서 출발한다고 믿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곧 아는 만큼 존중한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알지 못하면 오해가 생기고 미움이 생기는 법인가 봅니다.

그런데 상대를 알려고 하기 이전에 더 급한 것이 있습니다. 나를 먼저 아는 일입니다. 내가 내 자신도 잘 모르면서 어찌 남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만이 건너야 하는 사막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체득하면서 건너야 할 사막과도 같은 것입니다. 저는 50년 동안 그 사막을 건너 왔지만 아직도 제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나도 잘 모르는데 어찌 남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나도 잘 모르는데 어찌 세상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내가 내 자신을 아는 만큼 세상을 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저는 내 자신을 알기 위해 사막 위를 걷습니다.

테니슨이 세상을 향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풀 한 포기라도 뿌리 끝에서 잎사귀 끝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인생이 무엇인지도.. 가을 물소리의 뜻도.. 알 수 있으리라....

저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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