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은 21세기를 대표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현대사회는 디지털사회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각종 디지털영상매체 등 디지털의 총아들은 전 세계를 초단위로 묶어주고 있다. 과히 혁명적이다. 약간 과장된 말이기는 하지만 디지털을 떠나서 현대인의 삶을 생각할 수 없고 생활할 수도 없다.

온갖 디지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 생활을 통제한다. 만약 누군가가 디지털을 떠나서 살고 있다면 그는 시대에 아주 뒤떨어진 낙오자 이거나 완전한 자연주의자일 것이다.

반면, 육체를 움직여 밥을 먹고, 숨을 쉬고, 걷거나 뛰는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총제적인 행위는 아날로그적이다. 모든 생명행위는 0과1로 분할될 수 없다.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는 다 아날로그적인 것이다. 우리가 몸을 저으며 길을 걷는 행위는 아날로그의 백미다.

나는 최근 걸어서 출근하거나 시간이 조금 바쁘면 차를 몰고 오다가 집과 사무실의 중간쯤 되는 한적한 주택가에 주차해 놓고 15분 정도 걸어서 사무실로 온다. 집은 문수동이고 사무실은 학동 시청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걷는 행위를 이렇게 말한다. “내년 세계박람회 때, 차를 아예 가지고 다니지 않기 위해서 미리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가을이 나를 더욱 걷게 한다. 가을의 공기는 가볍고 청량하다. 숨을 몰아쉬며 걸어가는 나의 폐를 상쾌하게 한다. 여름의 덥고 무거운 공기처럼 폐를 짓누르는 느낌이 없어 좋다.

아침에 가방을 메고 집을 나와 고락산을 넘어 걸을 때 새들은 이곳저곳에서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합창한다. 이 이름 모를 새들의 찬란한 향연이 나의 행진을 즐겁게 해 준다. 문득 멈춘 새들의 합창 속에 가끔씩 찾아오는 적막도 좋다.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리며 밟히는 소리도 좋다.

머지않아 겨울이 오면 칼바람이 폐를 뚫고 들어오는 고통이 힘들어 걷기가 싫어질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이 가을을 즐기며 더 많이 걷고 싶다. 비가 많고 습기가 많았던 지난여름은 느렸고 지금 내 마음 속의 가을은 즐거움들로 조급하다.

가을이 나의 생각을 바쁘게 하고 행동을 바쁘게 한다. 나무들이 옷을 다 벗기 전에 그들의 마르고 향기로운 냄새를 조금이라도 더 맡고 싶다. 책장에 꽂혀있는 오래된 책들을 얼른 펼쳐서 한 장이라도 더 읽고 싶다.

빛의 속도로 정보를 실어 나르는 디지털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게 빨라서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빠른 삶 속에서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적한 산길이나 혹은 가로수 낙엽이 뒹구는 거리를 걸어보기를 권유한다.

오늘도 고락산을 걸으며 생각한다. 이 느슨한 아날로그적 행위가 얼마나 좋은가? 여러분도 가을 산길을 걸으며 아날로그의 부드럽고 편안함을 느껴보시기 바란다.


여수시 문수동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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