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잠시 지난 사진들을 뒤적이다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여수 신항의 옛날 사진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그 사진은 회색빛이었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여름은 오동도가 보이는 수정동 앞바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세계박람회 개최지로 일반인들 출입이 통제된 곳이지만, 초등학생이었고 중학생이었던 그 때의 신항은 내 여름의 대부분을 보냈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곳은 대형 화물선이 수시로 드나드는 항구여서 수심이 아주 깊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위험하다며 부모들이 기겁을 했겠지만, 먹고 살기에 바빴던 당시 우리의 부모들은 누구도 그곳에서 수영하는 우리들을 막아서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수영을 배웠고, 어린 청춘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수심이 깊다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소리치며 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수영복도 없었습니다. 아무 곳에나 옷을 벗어 놓고 한 손으로 고추를 잡고 바다에 몸을 던지면 그만이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검푸른 바다를 향해 다이빙을 하면 물속으로 한참 동안을 들어갔다가 밝은 빛이 보이는 수면 위로 올라오는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즐거움이었습니다.

우리가 수영했던 신항에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여수와 부산을 오가는 엔젤호가 지나다녀습니다.

당시로는 굉장히 빠른 쾌속선이었지요. 우리는 멀리서 엔젤호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면 엔젤호가 일으키는 높은 파도를 타기 위해 앞 다퉈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렇게 바다로 뛰어든 우리는 조금이라도 배 가까이 가려고 앞으로 헤엄쳐 나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파도가 높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친구들 간에 서로의 담력을 경쟁하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경쟁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달려오는 배를 향해 위험하게 헤엄쳐 오는 우리를 여행객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물속에서 여행객들에게 반갑다며 손을 흔들어 “어서 오세요...”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여행객들도 반갑다며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는 일제히 주먹감자를 날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반성할 짓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개구쟁이였고, 그렇게 철딱서니가 없었습니다.

혹시 이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 그 당시 어린 우리에게 어이없는 짓을 당한 분이 계시면 이 자리를 빌어 정중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게 수영을 하다가 지치면 우리는 물안경을 쓰고 신항 방파제의 바다 밑을 뒤졌습니다.

물속 5미터만 잠수해 들어가면 그곳에는 우리가 여름 내내 먹고도 남을 만큼의 홍합과 우렁쉥이가 널려있었기 때문입니다.

또래 중에 나이가 어린 아이나, 잠수에 자신이 없는 아이는 육지에서 나무 조각을 주웠고, 나이가 든 아이나 잠수에 자신이 있는 아이는 바다 밑을 잠수해 홍합과 우렁쉥이를 따서 일용할 양식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항상 찌그러진 양은 냄비 하나 정도는 바닷가에 숨겨 놓았습니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홍합을 삶아 먹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어린 시절의 여름 대부분을 지금의 신항에서 보냈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예전의 신항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화물선도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렇게 많던 화물을 나르는 수많은 노동자들도 간 곳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어 주던 홍합과 우렁쉥이는 바다 속에 잘 있을까요.

이제는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여객선도 사라지고 낭만도 사라지고, 이렇게 세월이 가면 아름다웠던 옛 추억도 마음 속 전설로 변하나 봅니다. 그 전설은 아직 제 가슴 속에 살아있는데 전설속의 배경인 신항은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지금 박람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신항을 가면 저는 꼭 이방인이 된 느낌입니다. 이 안에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혀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이곳에 서면 주먹 감자를 날리면서 깔깔대며 웃던 개구쟁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렇게 세월이 가니 누구라도 세월의 흐름 속에 하나 둘씩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옛 시절이 너무나 그리운 오늘입니다.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였던 신항이 이제는 자랑스러운 박람회장이 되어 또 누군가에게 소중한 추억을 안겨주게 될 것입니다. 박람회가 꼭 성공해야 제 추억이 조금은 덜 억울해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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