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더위가 한창이던 여름 날, 시골집 장독대와 울밑에 피어 서민들의 삶속에 기다림으로 남아, 애환을 달래주던 꽃.



우리가 흔히 봉숭아라고 부르는 이 꽃은 꽃모양이 마치 봉황새 같다하여 봉선화라고 합니다.

이 꽃은 붉은색, 흰색, 자주색, 분홍색 4종류로 피며, 잘 익은 씨를 건드리면 톡하고 터진 뒤, 씨의 껍질이 도르르 말리면서 씨가 멀리 퍼져 나갑니다.

그래서 봉숭아꽃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입니다, 하지만 봉숭아는 사람이나 동물이 잘 익은 열매를 건드려줘야 씨앗이 멀리 퍼져나가 넓은 터를 잡게 됩니다.



후손들이 오래까지 살 수 있도록 하는 자기들만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다림의 운명을 타고난 꽃에게 사랑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봉숭아는 예로부터 손톱에 붉은 물을 들이는 꽃으로 유명 합니다. 봉숭아물을 들이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손절구 통에 꽃과 잎을 적당량의 소금 또는 백반과 함께 넣고 적당한 물기가 생길 때까지 찧습니다.

그 다음에는 짓이겨진 잎과 꽃을 적당량 손톱위에 올리고 비닐로 손톱을 싸서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정성스레 무명실로 묶어 하룻밤을 자고 나면 손톱에 예쁜 봉숭아물이 듭니다.



흔히 봉숭아물을 들일 때, 주로 꽃을 이용하는데 실제로는 봉숭아물을 들이는 염료 성분은 잎에가 더 많이 있습니다.

냉장보관을 했다가 겨울에도 사용할 수가 있으니 요즘 좀 구해 두면 좋을 듯합니다.



오래전에는 할머니가 손녀들에게 또는 어머니가 딸에게 봉숭아물을 들여 주었죠. 물이 들어가는 손을 들고 다니며 일도 하지 않고, 동네 친구들과 누가 더 예쁘게 물이 드는지 내기도 하는 걸 본적도 있습니다.

누구나 봉숭아물에 대한 추억이 그리운 사람들은 요즘 한창 피고 있는 봉숭아를 따다가, 딸아이와 봉숭아물을 들이면서 기억 저편의 그리운 추억을 찾아 그때를 기억해 보기를 권합니다.



봉숭아물을 들이는 풍속은 12월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던 것처럼 붉은색이 나쁜 일과 귀신을 물리쳐 준다는 민간신앙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후에는 미를 추구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이 봉숭아물을 많이 들이는 걸 자주 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서양의 매니큐어가 들어오면서부터 봉숭아물 들이기가 사라져 가고 있으니 어린아이들 모아 봉숭아학당이라도 만들어 첫사랑 이루어지길 빌며 기다리는 꽃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매니큐어는 색은 예쁠지 모르나 산소가 손톱을 통과하지 못해 손톱색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처럼 하얗게 되거나 자주 사용할 경우 갈라지기도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편한 것 보다는 이왕이면 봉숭아물을 들여 손톱에도 숨을 쉬게 하고, 기다림도 느껴보면서 우리 조상들의 미를 추구하는 방법을 자연 속에서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쉽게 구할 수 있고 인체에 해롭지 않은 재료를 사용했다는 지혜도 배워봤으면 어떨는지요? 봉숭아물 들이고 손톱 끝을 쳐다보며 첫눈이 오길 기다리던 소녀시절의 추억이 그리우면 올해는 열손가락 손톱 끝에 붉어서 예쁜 봉숭아꽃을 피워봅시다.





여수숲해설가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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