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유가와 물가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입맛까지 잃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럴 때일수록 평소 욕심을 버리고 몸에 있는 열을 잘 다스리는 것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비결이다.



몸의 열을 식혀주고 화를 가라앉힐 수 있는 좋은 식재료로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언젠가 강원도 여행길에서 친구들과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 먹었던 메밀국수 한사발이 떠올랐다.



병충해가 적어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무공해 작물일 뿐만 아니라 성분이 차가워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에 좋은 식재료인 메밀은 잡곡류 중에서 옥수수 다음으로 재배면적이 가장 많다.



특히 강원도 산간지대에서 많이 재배가 되지만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다. 또 예부터 다섯 가지 방위를 나타내는 오방색의 대표적인 신령스런 곡식으로 알려져 있는 메밀은 꽃은 흰색, 잎은 푸른색, 열매는 검은 색, 줄기는 붉은 색, 뿌리는 황색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메밀꽃이 필 때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평창들판을 하얗게 물들였던 메밀꽃과 함께 우리 선조들이 즐겨 먹었던 메밀요리의 진수 속으로 풍덩! 한번 빠져보자.



메밀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재미있는 이야기로는, 나라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중국에 식량 원조를 청하니 영영 살아남지 못하게 하려고 메밀을 보냈다고 한다.

메밀은 성질이 차서 가뜩이나 굶주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생명을 부지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 집집마다 묵과 막국수 메밀전등을 만들었고 동치미와 돼지고기를 곁들여 겨울밤의 허기를 달래는 별미로 즐겼다.



조선시대에는 메밀가루와 녹말가루를 혼합한 재료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증보산림경제>에 있으며 1600년대 말 조선시대의 최고 요리서인 <음식디미방>과 <주방문>에 메밀은 으뜸가는 재료라고 설명되어 있기도 하다. 그럼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이 메밀국수를 즐겼을까.



우선 조선시대 인조임금시절 임진왜란이후 국토가 황폐해져 잇단 흉년이 들자 나라에서 메밀재배를 권장하며 호구지책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때는 메밀로 반죽을 만들어 구멍 뚫는 바가지에 넣고 눌러서 빠져나오는 국수발을 받아 이를 굳혀 먹었다고 한다.



또 산천 농민들이나 화전민들이 메밀을 반죽하여 먹던 메밀수제비가 발달되어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긴 겨울밤 야식으로 즐겨먹던 음식으로 메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반죽한 다음 손으로 비벼서 국수발을 뽑아 끓는 물에 잘라 넣어 익혀 먹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냉면 중 대표음식으로 꼽히는 평양냉면과 함흥식 냉면의 차이는 바로 이 메밀에 있다. 평양식 냉면은 메밀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함흥식 냉면은 감자전분이나 강냉이 고구마 전분의 함량이 많다.



면발이 질긴 함흥식 냉면에 비해 평양냉면은 면발이 거칠고 쉽게 끊기며 굵다. 메밀국수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는 메밀 면을 끓는 물에 삶아서 찬물에 헹구어 물기를 뺀 다음 뜨거운 국물에 말아먹거나, 차가운 김칫국물에 말아 김치와 오이 절인 것을 얹어먹기도 한다.



또 면을 따로 장국에 말아먹거나 일본식으로 가다랑어 육수에 찍어먹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정선지방엔 ‘콧등치기’라고 불리는 메밀국수가 있는데 국수를 후루룩 먹을 때 국수발이 억세서 콧등을 철썩 친다 해서 붙여진 재밌는 이름이다.



멸치와 된장으로 국물을 우려내고 호박, 우거지등을 넣고 함께 끓인 후 메밀로 만든 굵은 면을 넣어 만든다. 또 김칫국물에 말아먹는 메밀막국수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먹는 대표음식이다. 이 국수의 ‘막’은 ‘보편적인, 대중적인’이라는 뜻으로 그만큼 예로부터 편하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널리 즐겨먹는 국수였다는 뜻이다.



이밖에도 메밀 녹쌀을 이용하여 메밀밥을 지어먹거나 기름에 지지는 떡 메밀전병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메밀을 가장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론 메밀차를 마시는 것이다. 껍질을 벗긴 상태의 메밀녹쌀로 볶거나 쪄서 만들기도 하고 빻아서 우려내어 만들기도 한다. 구수한 메밀특유의 맛과 향이 담백하여 보리차처럼 즐겨 마시면 좋다.



우리의 전통복더위 음식으로는 삼계탕과 보양탕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식생활문화도 바뀌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 고기는 명절 때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으로, 더운 여름철에 땀 흘리고 일하는 농부들에게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운동량은 적고 육류섭취가 많아진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기름진 음식들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현대는 ‘부족함’보다 뭐든 차고 넘치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과잉생산, 과잉보호, 과잉소비, 과잉섭취는 물론이고 과잉난방과 과잉냉방이 지구를 뜨겁게 달군다. 실내온도를 2도만 조절해줘도 에너지 절약에 크게 기여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고 지구온난화의주범이 에너지 과잉소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아직도 은행이나 관공서에 일이 있어 가보면 오히려 추위를 느낄 정도로 에어컨바람이 빵빵하다. 그래서 요즘은 한여름에도 지나친 냉방으로 인한 감기환자가 꽤 많다고 한다. 오늘은 시원한 국물에다 야채 숭숭 썰어 넣고 메밀국수 한사발로 답답한 속을 풀어보자. 만약 배앓이가 걱정되어 찬 음식이 싫다면 이열치열, 다정한 사람들끼리 둘러 앉아 이마를 맞대고 후루룩 ‘콧등치기 메밀국수’는 어떨까.





숲 해설가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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