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선생과 긴 이야기 자리를 가진 곳은 사곡의 ‘티롤’ 야외 카페였다. 그와 마주앉아 마시는 찻잔 너머로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선생은 대학 재학시절부터 미술운동을 해왔다. 그래서 아직도 지역의 크고 작은 일이 터졌을 때, 어김없이 그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수염 난 얼굴, 조금은 퍼진듯 한 체구, 그와의 대화 중에 선생의 몸 안에는 작은 거인이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80학번으로 5.18민중항쟁을 겪은 세대답게,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얌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차이가 있다.



남들은 주먹을 쥐고 거리로 나섰지만 그는 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세상을 바꾼다기 보다는 세상을 바로 보자는 의미에서다. 기쁨보다는 그늘을 찾는 화가 그는 인간의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늘의 화가이다. 그래서 그늘이 있는 곳에 항상 자리를 함께한다.



소외된 사람의 그늘이 바로 나의 그늘이고, 어쩌면 앞으로 우리 모두의 그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늘도 선생은 고민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그늘은 언제나 울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그래서 그늘을 보면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그러면 기쁨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쁨은 슬픔의 길을 걸어가다 잠시 드러나는 물거품 같은 것“이라고 선문답처럼 답한다. 선생은 2남 3녀 중 셋째로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여수사람은 수평선을 보고 자랐지만, 자신은 문만 열면 펼쳐져 있는 지평선을 보고 자랐다고 한다.유년시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마치 짧은 시를 쓰듯 몇 장면을 이야기한다. 아버님이 목수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피를 자신이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 같다고도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짧게 눈을 감기도 했다. 어떤 장면은 흑백사진처럼 남아 있고, 어떤 장면은 동영상으로 남아 있는 듯 했다. 그러한 그가 여수에 내려온 지 올해로 20년이다. 이제는 어엿한 여수사람인 것이다.



여양고등학교 미술선생

김태완 선생은 현재 여양고등학교 미술선생이다. 낮에는 학교에서 열심히 아이들 가르치고, 밤에는 별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인지 선생의 그림은 어두움과 빛이 늘 함께 공존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그림은 재능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그리는 것이다”하고 늘 얘기한다. ’재능이란 다름 아닌 노력의 결과일 뿐‘이라는 그만의 철학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예술 활동이 좀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며 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아쉬움도 얘기한다. 그러면서 “올해가 여순사건이 발생한지 60주년 되는 해이다. 거창양민학살사건이나 제주 4.3사건은 어느 정도 피해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는데 여순사건은 아직도 모두의 관심 밖에 있다”고 지역민의 관심도 촉구한다.



지금 민예총 내에는 ‘여순사건 전담팀’이 있다. 당사자들 인터뷰와 그 생생한 기록들을 꼼꼼히 남기고 있는 것이다.민예총에서는 요즘 찾아가는 예술 활동에 많은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문화예술에 소외된 분들이 있는 섬으로, 시골로 직접 찾아 나선 것이다.



5월 17일에는 전체 회원들이 돌산 남면으로 봉사를 떠난다. 의료팀과 문화예술팀이 함께하는 봉사활동이다.주름진 노인들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환한 미소를 보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그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여야 한다

인터뷰 말미에 전라북도 고창 얘기를 한다. “고창에 가면 마을전체가 벽화로 가득한 벽화마을이 있다.지금 이 마을이 벽화 하나로 전국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고창의 벽화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바다를 끼고 있는 우리 지역의 수많은 옹벽과 벽을 방치하지 말고, 벽화를 그려 넣자고 수차에 걸쳐 시에 건의를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각 지역마다, 또 각 마을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 넣으면, 바다와 함께 여수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몇몇 사람만이 행복한 도시가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그는 우리 지역의 행동하는 양심가 중 한 사람이다. 박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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