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완규 동부매일신문 발행인
지난 14일, 대통령 직속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에서 '지방행정체제개편 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그 계획안에 따르면 여수, 순천, 광양 3개시의 통합은 주민 의사와 관계없이 국가의 필요에 따라 통합이 불가피한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번 통합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시의 명칭이 사라지는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통합 당사자인 주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꼭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것 같다. 큰일임에도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도 없이 그냥 밀어붙이는 그런 느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이번에 확정된 전국 16개 지역 36개 시·군·구의 통합 추진안에 대해 오는 7월 이후에 지방의회의 의견을 듣거나,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각 통합지역별로 통합추진공동위원회를 구성한 뒤에 2013년 12월까지 통합지방자치단체 설치를 위한 법률 제정을 마무리 한다는 계획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역통합을 지방의회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주민투표의 결과에 따르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적당히 눈치를 봐서 강제로 통합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행정구역 통합은 행정의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면 타당한 얘기다. 그러나 주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정부 주도로 강행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 우려가 깊다.

통합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통합 시청은 어디에 둘 것이냐의 문제다.

반대 성향이 강한 여수시의 경우도 “좋아! 통합하자! 대신 통합 청사는 여수시에 두자!"고 하면 어느 시가 찬성할까?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그 다음은 통합시의 명칭은 무엇으로 할 것이냐의 문제다. 실익도 없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도시 명칭까지 상실하면, 자칫 해당 도시의 단체장은 주민들에게 몰매를 맞을 것이다.

그 다음은 통합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이미 3개시 통합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광양시의 경우 시민단체 협의회까지 나서서 “지역민의 뜻을 무시한 행정체제 개편안에 반대한다”며 “광양만권 통합 시도를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갈등의 예고편 같다.

광양시의회도 14일 통합에 반대하는 긴급 의원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조직적 저항을 본격화하고 있다.

여수시의회도 별도 입장을 통해 “주민 의견 수렴 없는 통합 추진은 실효성이 없다”며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물론 행정체제개편이 필요한 지역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민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통합은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와 지역 간에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소지가 크다는 점을 정부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괜히 어설프게 시작해 지역 간에 원수 되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우선 통합하고 나서 문제점에 대해서는 통합 뒤에 수습하자는 생각은 행정의 효율성만 우선한 나머지, 자칫 지역 간의 갈등만 첨예하게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의 존립목적은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주민의 편익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때문에 행정구역이 서로 나뉘어져 있어 그것이 불편하다면 주민들이 먼저 행정개편을 호소하고, 정부나 정치인들이 이를 받아서 제도 개편에 나서야 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이번 논의는 주민들의 구체적인 의사도 들어보지도 않고, 정부에서 주장하고, 정부에서 밀어붙이는 형태다. 주객이 전도됐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모습이다.

더욱이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있다”면서 주민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왜곡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니, 이번 통합논의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태어난 정권마다 행정구역 개편은 단골 메뉴였다. 그렇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은 정치권의 생명줄인 선거구제와 맞물려 있고, 공무원들의 자리와도 연동된 탓이다.

그리고 통합 당사자인 지자체들의 주도권 다툼도 만만치 않았다. 큰 지자체는 작은 지자체를 흡수통합하려 하고, 작은 지자체는 이에 저항해온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역통합을 서두르기 전에 우선 여수, 순천, 광양 3개 자치단체가 긴밀한 업무협의체부터 만드는 것이 순서겠다.

서로의 자리를 지키면서, 그리고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당면 과제에 대해 마음을 열고 묶인 매듭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 순서겠다.

꼭 지역통합문제뿐만 아니라 여수세계박람회같이 지역 내에 현안이 있을 때,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고, 배려하고, 보완해 주는 마음들을 갖는다면 지역통합이 훨씬 더 가까워질 것이다.

주민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지역 통·폐합은 치밀하게 진행돼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서두르지 말고 합당한 절차를 밟아 추진할 것을 권한다.

주민 의사를 무시한 강제적 통합은 주민들 간의 갈등만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 MB는 임기가 끝나고 자리에서 내려가면 그만이지만, 우리지역 주민들은 오랫동안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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