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경 수필가

나는 혹한의 겨울에도 목도리를 안 합니다. 돌이켜보면 이는 중3 때의 사건이었으니 아득한 옛날 일이네요.

어렸을 때 몰래 어머니의 여우목도리를 두르고 동네 앞 논바닥에서 조그만 문패만한 판자에 철사를 대어 받친 외발 스케이트를 타는 동네 아이들 옆에서 한 시간이 넘게 서 있었지만, 누구 하나 내 여우목도리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장롱 속에 있어야 할 이 여우목도리가 어머니의 눈에 띄어 꾸지람을 들은 데다 아버지까지 알게 되는 날에는, 공부는 안 하고 언제나 엉뚱한 짓만 하고 다니는 내 종아리에 열 서너 대의 핏발이 서게 될 것은 너무나도 빤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피해 골방에 숨어 엎드린 채 졸다가 그만 저녁밥 때를 놓치는 바람에 동지섣달 긴긴 밤의 외롭고 괴로웠던 일과는 더더구나 거리가 먼 사건입니다.

나는 손발은 차면서도 몸은 별나게 따뜻한 이상체질입니다. 수학점수는 나보다 훨씬 앞서면서도 국어는 교과서에 나와 있는, 정비석의 기행수필 ‘산정무한’도 모르는 정서결핍의 하숙방 친구는 종일 수학문제만 풀다가 밤늦게 추운 잠자리에 들어오면서 곧장 빈대처럼 나에게로 달라붙는 그 징그러운 우정을 차마 거절하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나에게 더 괴로운 일은 남달리 높은 나의 체온 때문인지 잠시도 쉬지 않고 꼬물거리는 이들의 집단산책이었습니다.

방학 때 집에 가서 보니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검정색목도리가 이 방 저 방으로 굴러다니기에 얼른 집어 목에 감아 한겨울의 등하굣길을 따뜻이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와의 하굣길에서 내 목도리에 대한 한 번만의 소원을 말하기에 풀어서 줬습니다.

그 뒷날 내 하숙집으로 달려온 그 친구는 경악과 불쾌감이 반반으로 나뉘어 발린 얼굴로 감고 간 그 목도리를 방바닥에 내던지며 하는 말은 이랬습니다. 검정목도리의 털실고랑마다 엉덩이만 내놓고 숨어 있는 이를 찾아 그의 어머니와 함께 잡아내다 못해 나중에는 참빗으로 긁어내면서 손에 쥐가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쓰레기잡탕인 그의 입이긴 하지만, 예민한 감수성의 사춘기에 있는 나의 자존심으로서는 경술국치보다 더한, 놀랍고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말 많은 주변의 여학생들 귀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그 비운의 목도리와 미련 없이 작별을 했습니다. 중3 때의 목도리 사건이란 이것입니다. 기대와는 달리 긴장감도 흥미도 없는 이야기에 여러분은 실망했을 것입니다.

지난겨울 집안일로 상경하여 종로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에세이스트> 사무실에 들렀더니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수필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기다렸다가 마친 뒤 가까운 서너 사람과 함께 근처 음식점으로 저녁 먹으러 갔습니다. 그날도 서울 추위는 대단했지만 나는 참을 만했는데, 나의 웅크린 목이 춥고 불쌍하게 보였는지 일행 중 한 여성수필가가 불쑥 주변 가게에 들어가 따뜻한 감촉의 감색목도리를 하나 골랐습니다.

내 목을 두 번이나 돌려 감더니 턱 앞에 와서는 나비같이 예쁜 리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별안간 내 목을 안아준 사랑의 목도리에 감격한 나는 얼른 성경 한 구절을 떠올렸지만, 그때 그것이 마태복음인지 요한복음인지는 확인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서정과서사회’ 남녀회원 20여 명이 여수로 소풍 오는 날은 2월 중순이어서 남은 추위도 만만찮았습니다. 나는 저녁 일곱 시에 예약한 시간보다 30분을 앞서서 식당 문 앞에서 기다렸지만, 순천에 머물렀다 오는 일행의 차가 마침 퇴근시간이어서인지 길이 막혀 바로 앞이라는 전화만 반복할 뿐, 나는 밖에서 떨고 서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선물 받은 감색목도리는 물론 잊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춥기도 했지만, 나에게 목도리를 선물해준 그 여성수필가도 동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약시간보다 30분이 늦은 시간에 도착한 일행과 ‘유명식당’에서의 소주와 싱싱한 해산물의 만찬은 흥겨웠습니다. 잠시 후 예약한 숙소인 ‘향일암’ 아래의 ‘해맞이펜션’을 찾아 꼬불꼬불한 밤길을 달려가 안내한 뒤 집에 돌아와 보니 목도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3 이후 처음인 목도리이고 보니 내 목에는 익숙하지 않아 손에 쥐고 다니다가 그만 깜박해버린 것입니다. 식당이며 펜션 주인에게도 전화를 해봤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회신이었습니다.

지난 주 언젠가 재래시장 구경을 나갔습니다. 즐비한 생선가게 한쪽에는 야채며 산나물 등 풋것을 파는 시장이 따로 전을 벌이고 있기에 기웃거리고 있다가 동배추 바구니의 할머니 앞에서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목에 감겨 있는 감색목도리는 어디에선가 본 듯한 것이어서 한참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유심히 살폈습니다. 아무리 봐도 시골 할머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감색목도리였습니다.

“선부양반, 추워서 얼른 팔아불고 집에 들어갈라고 그라요. 싸게 드릴란께 이것 다 털어 가부리시요.”

나는 잃어버린 목도리를 눈앞에 두고서도 입 한 번 떼지 못하고 괜한 동배추만 한 아름 사서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감색목도리를 한 할머니는 앉아서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갯바람이 귓전을 스치는 여수의 겨울은 그날따라 따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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