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화가 이존립.
도시의 품격은 어디에서 가늠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도시의 지적 수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그 도시의 교육수준이라든지. 그 도시의 문화예술 수준이라든지. 뭐 그런 것.

도시라는 공간은 현대식 건물을 많이 짓는다고 해서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 그리고 문화와 예술이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도시의 지도자는 도시민이 예술을 사랑하고, 문화가 살아있는, 교양 있는 지역 환경을 만드는데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여 품위 있는 도시, 사람간의 다툼이 적은 도시, 온화한 도시, 나아가 시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도시를 만들어 가는데 주력해야 한다.

어제, 여수가 자랑하는 서양화가 이존립 선생님의 전시장을 찾았다. 서양화가이고 학교 선생님이기도 한 이존립 선생. 지금까지 개인전만 27회를 개최했고, 단체전까지 하면 수백회의 전시회를 가진 예술가이다.

그의 명성은 여수에서보다 중앙무대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올해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서울 인사이트센터에서도 초대전을 가졌다.

이밖에 홍콩호텔아트페어, 부산화랑미술제 등 국내외 유명갤러리에서 초대전과 개인전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반열에 올라선 사람이다. 그래서 여수의 자랑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정신의 가장 고귀한 영역인 미의 창작 부분을 다룬다.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의 영혼에 불을 지르고, 때로는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아담한 정원에 들어선 듯 편안한 느낌을 갖는다.

예술에 종사하는 일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 어떻게 영혼의 열린 몸짓을 일궈낼 수 있을까.

서양화가 이존립.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맑고 순수하다. 남에게 악 한 번 써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선한 눈빛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그의 인상과 딴판이다.
그는 강한 초록색으로 그의 영혼을 표현한다. 초록색. 화가가 가장 사용하기 어려워하는 색이다.

이 색을 혼합했을 때, 색이 아름답기보다는 오히려 천해질 수 있는 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록색은 화가들이 자신 있게 사용하기 대단히 어려운 색이라고 했다.

이존립. 그는 이 색으로 승부해 보자고 생각했다. 그 때가 2000년이다. 그 해는 21세기가 새로이 열리던 해다. 그 해는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이 가득했던 해다. 그는 생각했다.

21세기의 화두는 무엇일까? 그는 그 답을 ‘자연’에서 찾았다.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 바삐 사는 현대인, 지친 영혼. 그 영혼의 휴식. 뭐 이런 것.

그런데 자연은 누구나 다 다루는 소제다. 그것이 부담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이존립만의 조형법과 색채와 구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초록의 자연을 이존립화 해서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다른 화가들이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독특하다. 그의 작품이 여수에 있던지, 서울에 있던지, 미국에 있던지, 그의 작품을 보면 “아! 이것은 이존립 화가의 작품이구나?”하고 알 수가 있다.

“나이를 먹고 연륜이라는 것이 쌓이면서 사람도 작품도 단순화 되는 것 같아요.”
어제, 이존립 화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시장을 걷고 있는데 그가 툭 내뱉은 말이다.
“젊었을 때는 이것저것 욕심이 생기다 보니,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고,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작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젊었을 때는 작은 캔버스 안에 이것도 그려 넣고 싶고, 저것도 그려 넣고 싶고,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작품에 여백미가 없었어요. 편안함이 없었지요. 그런데 나이를 먹고 조금씩 연륜이라는 것이 쌓이니, 이제는 무엇을 그려 넣을까를 고민하기보다는 무엇을 뺄 것인가를 더 고민하게 되네요.”

“선생님의 작품 안에는 사람이 꼭 한두 사람 보이는데 무슨 연유라도 있는지요.”
“신윤복이나 김홍도의 산수화 안에는 늘 서민들의 일상적인 애환이 들어 있어요. 그들의 작품 안에는 결코 위압적인 산수풍경이 없어요. 그 안에는 평범한 서민들의 모습이 들어있지요.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잠시라도 위안을 받게 되지요. 제가 작품에서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저는 서양화를 그리지만 작품 안에 한국적인 정서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생각했어요. 작품 안에 한국적인 냄새를 풍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다름 아닌 ‘여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예울마루 이승필 관장님께서 한 마디 거들었다.
“그의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첫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마음속에 오랫동안 꼭꼭 담아둔 그리움 같은 것. 혼자 빙긋이 웃음 짓는 미소 같은 것. 그의 작품을 보면 그러한 가슴 속의 소중함 같은 것이 느껴져요.”

그의 작품을 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예울마루 7층에 가면 내가 글로 표현하지 못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지역 예술인. 우리 지역민이 키우지 않으면 누가 키울까. 우리는 그를 키우고, 그는 우리의 영혼을 키우고...

 

저작권자 © 뉴스탑전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