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기에 못을 박아 쥐고 논둑으로 달렸다. 학교 숙제인 생물채집을 해야 할 일도 아닌데, 볕살 뜨거운 여름 오후 나는 논둑을 향해 달렸다.
흔히들 ‘봄 탄다’는 말을 하는데, 내가 그날 못을 박은 막대기를 들고 정신없이 논둑으로 달려간 것은 ‘여름 타는’ 것이 아닌, 나도 알 수 없는 광기였다.
초등학교 3∙4학년 때로 기억된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무논에서 헤엄쳐 나와 논둑에 앉아 쉬고 있는 개구리들을 못이 박힌 막대기로 닥치는 대로 등을 찍었다.
개구리들에게는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못에 등을 찔린 이것들은 사지를 뻗은 채 떨고 있었다.
이렇게 내리친 개구리는 열 마리도 더 되었다. 그날 밤 나는 호롱불 밑에서 작문 숙제를 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그날의 작문 제목은 ‘개구리의 죽음’이었던 것 같은데, 이 글이 교실 뒷벽 게시판에 일주일 동안이나 붙어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광기와는 달리 ‘죽음’이란, 차분한 제목을 붙이고는 내용도 슬프게 썼던 기억이 나는데, 어린 시절 그때는 슬픈 내용일수록 좋은 활동사진이었듯이 글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낚시를 좋아해서 오전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한 숟갈의 보리밥으로 점심을 때우고는 물주전자와 낚싯대를 들고 마을 뒤 개울가로 갔다.
봄철에는 뒷산의 뻐꾸기나 벼논의 뜸부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혼자 쪼그려 앉아 붕어낚시 하기를 좋아했다.
문학적 정서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시골소년이 비비꼬는 지렁이 허리를 손톱으로 잘라 낚싯바늘에 꿰면서 그런 오후의 한적을 즐겼다. 해질 녘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물주전자 속에서는 붕어새끼들의 물장구가 즐거웠다.
이 철 없는 것들의 즐거운 장난도 잠시, 그날 저녁 어머니의 매운탕냄비 속에서 고춧가루를 흠뻑 둘러쓴 채 그것들은 소리 없이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나 붕어새끼들이나 점쟁이가 아닌 이상 한 치 앞의 운명을 어찌 알겠는가.
초등학교에는 ‘철학’ 과목이 없었기에 배를 깔고 방바닥에 엎드린 나는 번번이 답이 틀리게 나오는 산술 숙제에만 골몰했지 목숨을 가진 온갖 것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정년퇴직 후의 무료함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소리 자동차소리 그리고 중국집의 짜장면 배달하는 오토바이소리 때문에 세상이 귀찮은 서울을 떠나 남쪽 어촌에 보금자리를 틀고 보니 여기가 다름 아닌, 사람 사는 곳인가 싶었는데 이도 잠깐일 뿐, 이제는 무료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 무료함을 해결하기 위해 집어든 것이 골프채가 아닌 파리채였다.
내가 사는 이곳에는 맛좋은 생선도 많지만, 고소한 갖가지 건어물로도 유명하다. 생선을 사다가 직접 소금 간을 해 말리면 더욱 고소하고 맛이 있다.
집사람이 어시장에서 생선을 사가지고 와서 창자를 말끔히 들어내고 소금 간을 해서 바닷바람에 말리기 위해 베란다 창문 밖 화분받침대에 널어놨더니 크고 작은 파리들이 그 예민한 후각으로 십 리 밖에서 떼를 지어 몰려왔다. 포식을 한 다음에는 거실로 들어와 직선으로 혹은 곡선으로 온갖 곡예를 다 부리면서 노는 그들의 낭만에 나도 함께 어울리고 싶었다.
그로 인해 무료함에 지친 나에게 운동 겸 신나는 놀이가 생기게 된 것이다. 오른손 외손으로 바꾸어가며 내리친 잠깐 동안의 수확은 초여름 시골 뽕나무밭 아가씨들의 오디바구니처럼 소담스러웠다.
이것들의 사인은 대부분이 뇌진탕이었다. 이 작업을 며칠 동안 계속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파리목숨’의 의미를 나는 철학사전이 아닌, 아파트 거실에서의 체험을 통해 알았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나기 위해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신월동 우리 집에서 여천 신시가지로 가려면 ‘한국화약’ 앞의 해변도로를 타고 가다가 언덕진 웅천터널을 넘어야 하는데, 그 터널을 넘으면서 곧장 여천으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신호등이 걸려 있어서 그곳은 언제나 차가 밀렸다.
그래서 앞차를 따라 속도를 줄여 천천히 따라가는데, 건너편 차로에서 애완견 두 마리가 놀고 있다가 차를 피해 인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가 내 차로로 건너오면서 차 밑으로 재빨리 기어들었다.
개 몸에는 자석이 붙어 있는가. 집에 있다가도 찻소리만 나면 밖으로 뛰어나와 차 밑으로 기어든다. 길 건너동네의 강아지가 제 집으로 돌아가려는 바쁜 걸음이려니 하고 잠깐 멈추어서 빠져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움직였더니 차바퀴의 감촉이 이상했다.
얼른 백미러를 통해 뒤를 보니 그 강아지가 길에 드러누워 있었다. 건너편 차로에 있던 또 다른 한 마리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변고에 놀라 멍하게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뒤따라오는 차들 때문에 차를 세워 내릴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강아지가 마음에 걸려서 잠을 설친 뒷날 다시 그 자리를 찾아가봤더니 어제의 그 흔적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고, 차들은 여전히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많은 목숨들이 나 때문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논둑의 개구리들과 시냇가의 붕어새끼들 그리고 그 수많은 파리들과 귀여운 강아지, 그것들의 목숨을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다.
까맣게 잊고 있던 그것들의 환영이 요즘 들어 새삼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은 저물어가는 내 나이 탓인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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