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봅니다. 흰 머리카락이 난데없이 늘었습니다. 마음은 아직 청년인데, 몸은 어느새 쉰 줄에 들어섰습니다.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요. 오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기다리는 인연이 많지 않다고. 기다리는 인연이 많지 않으니, 지금 내게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럽게 다루라고.

11월이 가을과 겨울이 가만히 겹치는 달이라면, 쉰 줄에 들어선 나이는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동시에 가늠하게 되는 그런 나이입니다. 지금까지 18,560 여일을 살았네요. 적지 않은 날입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살아온 18,560일을 생각해 봅니다.

어렸을 때는 무엇을 했고, 커서는 뭘 했고, 결혼을 해서는 뭐했고, 이렇게 되짚어보니 18,560일의 기억이 1시간이라는 작은 생각 그릇에 오롯이 담기네요. 18,560일 동안 만났던 무수한 사람들. 누구는 아직도 기억 속에 고이 남아있고, 누구는 기억 속에서 이미 사라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지금도 교신하고 있는 사람이 있고, 이젠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서글픈 인연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쓸쓸해지는 오십대입니다.

어제는 누군가가 내년 다이어리 하나를 선물해 주네요. 이제는 연말이니 낡은 수첩에 담겨 있는 것을 새 수첩으로 옮기라는 신호입니다. 오늘 낡은 수첩에 적힌 이름을 새 수첩에 옮겨 적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에는 이제 세상 사람이 아닌 이름이 두 개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무슨 연유에선지 소식이 뜸해져서 새 수첩에 옮겨지지 않은 이름도 있네요. 희미해지는 그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그도 나를 잊었겠지요. 아니면 그도 나를 지웠겠지요.

엊그제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하데요. 살다보니 나에게 가장 좋은 사람은 밥을 사주는 사람도 아니고, 술을 사주는 사람도 아니고, 만나면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 말에 무릎을 쳤네요. 주변에 사람이 많다 보니 밥을 사겠다는 사람도 많고, 술을 사겠다는 사람도 많은데, 함께 웃어 주겠다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이제 18,560일을 살아온 제 앞에 남아 있는 날은 3,000일이 될까 6,000일이 될까. 이 남은 날들 중에 가는 인연은 누구이고, 오는 인연은 누구이겠습니까. 그가 누구라도 기왕지사 맺어진 인연이니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부지런히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고, ‘그대는 내 사람’이고, ‘나는 그대의 사람’ 임을 그가 믿게 해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대를 항시 기억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가끔은 사랑한다고 말해주면서, 험난한 세상 기꺼이 동반하자고 청해야 하겠습니다.

올해 초 저의 사주는 ‘재물 운은 약하고, 명예 운은 강하다’는 사주가 나왔습니다. 보고 싶어 보는 사주가 아니라 평소 아는 역술인이 보내주는 사주입니다. 지금까지 매년 보내준 사주는 계속해서 틀리더니만 올해 사주는 맞춘 것 같네요. 올해 내내 돈은 안 되고 명예만 늘었거든요. 그래도 헛된 과욕 부리지 않고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면 개인이나 사회나 과도한 욕심이 화나 불행을 부르는 사례가 적지 않았거든요. 문화인류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세상의 모든 존재는 최적의 단계를 넘어서면 늘 독성을 지닌다고 했는데,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동정심이 없는 솔직함은 잔인함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고, 유연성이 없는 강인함은 완고함으로 빠져들기 쉽다는 것. 겸손이 없는 자신은 자만에 불과한 것이고, 신중함이 없는 용기는 무모함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개념이 다른 하나를 완전히 압도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은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는 제가 맺은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급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은총이를 돕자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시작한지 5일 만에 3천만원의 성금과 헌혈증서 62장이 모였네요. 얼마나 기뻤던지요.

그런데 기쁨도 잠시 또 다시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은총이 말고도 우리 지역에 백혈병이나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이가 14명이나 더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제는 어느 쉼터의 두 분이 오셔서 두 생명을 구해야 하는데 도와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난한 저에게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데 전후 사정을 들어보니 너무나 딱한 처지입니다. 그들이 처한 형편을 들으면서 사람 목숨이 참으로 질기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사람 목숨부터 살리고 봐야지요.

시인 월도 에머슨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성공이란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라고. 그리고 당신이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사실 때문에 단 한 생명이라도 더 쉽게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라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몇 날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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