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31

문학 시간에, 시 하면 무슨 말이 떠오르느냐고 물으면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어떤 녀석은 공자의 말을 빌려 “사무사(思無邪, 생각에 거짓이 없다)”라고 대답했다가 우우 하는 친구들의 야유를 받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폼생폼사”라고 대답해 놓고 옛날 노래까지 곁들여서 박수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잊어지지 않는 대답이 있다. “시요? 내 인생의 발목을 잡는 것!” 수능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꼭 시에서 망친다는 푸념과 함께 불쑥 던진 그 말은 아이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가슴으로 느끼기보다 머리로 분석하도록 강요받다 보니, 시가 어렵고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말이지, 수능에서 시는 장난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시인 신경림도 자기가 쓴 시가 언어 영역 시험 문제로 나왔는데 정답을 제대로 고르지 못하겠더라고 했겠는가. 아무리 쉬운 시도 일단 교과서에 실리고 나면 어려운 시로 탈바꿈이 된다. 그렇게 출제하니,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칠 밖에.

시는 원래 교과서에 갇혀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시인은 원래 아이들을 문제집 속에 가두는 간수가 아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시는 암호가 되었고, 시인은 선다형 문제에 스스로도 갇혀 버렸다. 이제 시가, 시인이, 아이들과 이야기하면 좋겠고, 밀실에서 광장으로 걸어 나왔으면 좋겠다.

거칠고 난삽하게 보일지라도,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로 시를 읽는 것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거기에서 열쇠말을 찾아 이 세상을 파헤치고 뒤집고, 그러며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정답만을 강요하는 그런 학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벌인 일. 좋아하는 시 한 편씩 외우고, 그 시가 왜 좋은지 발표하도록 했다. 교과서에 있는 시인을 자신의 삶에 불러들이라는 의도를 알아챘을까. 아이들은 김춘수의 ‘꽃’을 통해 가버린 첫사랑을 떠올리기도 했고,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암송하며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는 단연 김소월의 ‘가는 길’, 이육사의 ‘교목’, 서정주의 ‘동천’, 그리고 정현종의 ‘들판이 적막하다’ 등이었다. 문학적 감수성이 다양하다고 하고 싶은가. 아니다. 짧아서, 그냥 짧아서 갑자기 좋아지게 된 시란다. 그러나 어떠랴. 짧아서라도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그게 어딘가.

그런데 항상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아이가,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를 외우고 나서 말했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는 부분이, 골수 이식 이후 힘겨웠던 자신의 투병 생활과 닮았다고. 뭉클해졌는지 아이들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

시를 암송하며 아이들은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뻔뻔하게
빗장으로 가두어 놓은 자신을 풀어 주었다.
그런 얼굴들이 꼭 시와 같아서
나는 아이들 얼굴에서 여러 편의 시를 읽었다.
- ‘아이들 얼굴에서 시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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