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35

수업하러 복도를 지나가는데 담배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우니까 꼬마 애연가들이 화장실에서 한 대씩 한 모양이다. 학교 건물이 금연 구역으로 지정된 마당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 해서 교실에 들어가서 “화장실에서 담배 피운 놈들 일어나 봐.”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참 쭈뼛거리더니 한 녀석이 일어났다. 그러자 아이 셋이서 엉거주춤 따라 일어났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일어나 주다니 내심 고마웠다. 해서 쓰다듬어 주었다. “담배 피우는 게 잘한 일은 아니지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건 당당한 일이다. 그런 용기에 우선 박수를 보낸다.”

허나 교내 흡연은 엄연한 잘못. 그렇다고 자수했는데 벌주기도 좀 그래서, 다짐을 받고 넘어가기로 했다. “자기 집 화장실에서도 담배 피우는 사람 있나?” 피우다간 맞아 죽게요. 한 녀석의 말에 다른 녀석들이 와아 웃었다. “그러면 앞으로는 학교 화장실에서도 담배 피우지 마라. 알겠나?” 옛!

“그런데 말이다, 내일부터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 나면 너희가 책임진다. 너희가 피우지 않아도 말이다. 그러니 딴 놈들이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지 않도록 계도해야겠지. 방법은 알아서 하고. 이것도 다짐할 수 있겠나?” 그러자 아이들은 의외로 선선하게 대답해 주었다. 해서 내친 김에 더 나갔다.

“시각 장애인이 담배 피우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다들 말이 없었다. “그래, 아마 없을 것이다. 눈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기에, 담배가 주는 시각적 멋도 느낄 수 없고, 그러니 애초부터 피우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흡연자들을 눈멀게 할 수는 없는 노릇. 해서, 너희가 끊거나 숨어 피운다. 알겠나?” 옛!

신기하게도 다음날부터는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는 아이들이 싹 사라졌다.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놈들이 일거에 담배를 끊은 것은 아닐 테고. 궁금해서 한 녀석에게 물었다. “어디 가서 피우나?” 비밀인데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꽁꽁 숨어서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며칠 뒤 한 선생님이 담배 피우는 녀석들을 여럿 끌고 왔다. 3학년들이 수능이 끝나 일찍 하교하는 바람에 별관이 흡연 소굴이 된 듯했다. 잡혀 온 놈들 중에 우리 반이 세 명이나 되었다. 화장실에서 피우다가는 죽는다는 말씀을 듣고 숨어 피웠다는데, 할 말이 없었다. 이놈들을 어떡하지?

금연에 대한 교과서적 훈계는 효과 별로다. 건강에 얼마나 나쁜가, 스무 살 이전에 얼마나 유해한가를 말하는 건 입만 아프다. …내 고등학교 때다. 그때 은사님들은 흡연 장소를 정해 놓고 그곳을 벗어나는 녀석들만 엄하게 단속했다. 악동들에게 최소한의 도피성을 마련해 주었던 셈. 그 여유가 그립다.

화장실 개축 공사를 하며
파리 모양이 새겨진 소변기가 새로 들어온 뒤
그 파리 잡느라 오줌 흘리는 경우가 확 줄었다.
우리 아이들이 그놈의 담배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에도
이런 부드러운 여유가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 ‘때로는 부드러운 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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