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37

날마다 전쟁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지각한 녀석들이 셋이다. 너 해라, 나 들으마. 학기말이면 느슨해진 분위기에서 담임 말이 도무지 먹혀들지 않는다. 젊은 선생들이야 아이들을 제압할 수 있는 완력이라도 있지만, 나야 어디 그런가. 입이 닳도록 달래고 또 달래야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

하지만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다. 해 보았자 잔소리가 되기 일쑤. 아이들 표정을 보면 말이 먹히는지 금방 안다. 그러면 쓸쓸하지만 입을 다물어야 한다. 해서 아이들이 귀를 기울일 만한 솔깃한 이야깃거리를 찾다 문득, 한 아이가 떠올랐다. 아, 그래.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 되겠구나. 모두들 주목!

학교에 있다 보면 정말 괜찮은 아이가 있다. 품행이 단정하고 공부도 제법 하며 기품까지 있는 아이. 그러면 우리끼리 하는 말로 그 녀석 며느리 삼으면 좋겠다, 그 녀석 사위 삼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아이 중의 하나다. 그는 졸업하고 나서도 가끔 안부를 물어오곤 했는데.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한다던 그에게 어느 날 연락이 왔다. 다음 달이면 복무 기간이 끝나서 서울로 가게 되었다고. 그래 반가워서 이번 학기에 복학해도 되겠구나 하고 말을 되받았다. 그랬더니 복학은 다음 학기에 하겠다는 것이었다. 공익이 3월말에 끝난다면서 왜?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는.

잠깐 망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인사청문회에 섰을 때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공개하는 꿈입니다. 군대 생활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것은, 그래서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수화기 너머에 있는 그를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 스물 몇 살밖에 안 되었는데, 10년도 20년도 아니고, 30년, 아니 한 세대를 내다보며 자신의 삶을 단정하게 설계하는 모습에 할 말이 없었다. 그에게 미래는 먼 훗날이 아니라 현재라는 구조에 이미 내장되어 있었다.

로마 제국의 2,000년 역사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찾기도 한다. 일개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세계에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때, 로마의 귀족들은 먼저 전쟁세를 내었고 앞장서서 전쟁터에 나갔다. 이를 본 평민들도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며 전선에 나갔다. 로마를 제국으로 만든 힘은 여기에 있다.

설사 행정고시에 합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노블레스’를 꿈꾸면서 ‘오블리주’를 단단하게 다져가는 그의 모습에서 미래를 보았다고.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그냥저냥 살자는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그렇게 ‘장현중’을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여느 꽃은 머금을 때와 필 때, 두 번 아름답지만
동백은 머금을 때와 필 때, 그리고 질 때까지 세 번 아름답다.
처음부터 나중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사람 사이에서 가끔 피어나기도 한다.
- ‘동백은 세 번 아름답다’

 

저작권자 © 뉴스탑전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