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38

동화가 찾아왔다. 샘, 아무래도 희망진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학교생활기록부에 장래 희망을 기재하는 난이 있는데, 지난번에 적어낸 것을 고치고 싶은가 보다. 이유가 뭔데? 주변에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해서요. 주변? 주변 누구? 아이는 멈칫거리더니, 교회 사모님요,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왜 그리 중심이 없느냐며 바로 한소리 했을 텐데, 교회 사모님이라는 대답에 잠시 말을 내려놓았다.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신 말씀이었을 터. …그래 알았다. 생각해 보마. 너도 깊이 생각해 보도록. 그런데 예 하고 돌아나가는 아이 뒷모습이 몹시 쓸쓸해 보였다.

우리 반에서 학원 다니지 못하는 아이가 몇 명 있는데, 동화도 그 중 하나다. 형편이 어렵다. 하지만 공부도 꽤 하고 푸짐한 몸매만큼 성격까지 좋다. 오죽했으면 교장 선생님조차 그 아이 품성이 참 곱데요 하고 칭찬을 하셨을까. 덕분에 담임이 아니라 학생부장 추천으로 모범상을 받았을 정도다.

그런 아이가 흔들리고 있다. 멋진 기자가 되겠다면서 1년 동안 이것저것 취재도 하고 기사도 쓰며 꿈을 키웠는데, 그렇게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는데, 그게 정말 한바탕 꿈이 되어 버릴 상황이다. 그런데, 그때, 문득! 이 세상에서 가장 싸게 다닐 수 있는 대학만을 찾던 ‘옛날의 내’가 떠올랐다.

산다는 것은 자기 운명의 발견이자 선택이다. 선택이야 자신의 몫이겠지만 자기 운명을 발견하는 데 혹 참고가 될까 싶어, 반에 있는 여러 명의 ‘동화’에게 입을 열었다. 아니 ‘옛날의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질문에는 이미 절반의 답변이 들어 있다지만. 그걸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도 그랬으면서도.

목표를 세워라, 목표가 너를 이끌 것이다. 이 말은 차마 못 하겠구나. 누구 말마따나 그것은 희망고문이기 십상이니. 허나 희망이라도 없다면 어떻게 팍팍한 세상을 헤쳐 나가겠느냐. 그게 더 큰 고문이 될 텐데. 그렇다고, 괜찮아, 잘 될 거야, 이러기도 싫다. 긍정의 과잉은 더 큰 자기 수탈로 이어지니.

바로 그 지점에 ‘너’는 서 있다. 아니 ‘나’는 서 있었다. 흔히들 그런다. ‘잘하는 일’은 직업으로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두라고. 그럼 이렇게 되묻고 싶겠지. 좋아하는 일을 잘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래, 그런 멋진 사람 참 많다.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 그런 대답이 나오면 그리 가거라.

하지만 교회 사모님은 이러실 거야. 잘하는 일을 좋아하게 되면 안 되겠느냐고? 눈빛으로 그리 말씀하실 거야. 그때 나에게는, 교회 사모님이 아니라 가난이 그렇게 말해 주었거든. 너를 가장 잘 아는 건 너일 터. 그러니 너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주인의 결정에 따르라. 마지막 걸음은 혼자 떼는 법.

어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꽃이야 일 년 준비하여 피워낸 아름다움이지만
사람은 십 년, 이십 년, 때로 평생을 준비하여 피워낸다.
그러니 꽃을 어찌 그런 아름다움에 견줄 수 있겠느냐, 동화야.
- ‘어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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