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고산에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30여개의 높고 낮은 돌탑--

지역의 작지만 소박한 것들을 찾아 나선 길. 오늘은 종고산이다.

종고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한 개의 봉우리지만 올라가면 두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20년 전에는 거의 매일 올라왔던 산을 20년 만에 처음 올라가 보는 산이다.

“휴일이면 종고산에서 항상 돌탑을 쌓는 선생님이 계신데 한번 취재해 보시지요?” 지인의 제보였다.

정상에 가면 만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가지런한 숲으로 조성된 오솔길을 따라서 정상으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오솔길을 내려오는 한 중년 남성이 초면인 기자를 보고 인사를 건네 온다.



얼떨결에 대답을 한다. 오솔길에서는 생면부지의 사람끼리도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이러한 마음이 왜 도심으로 돌아가면 잊혀지는 걸까.

오솔길은 자연이 딱 한 사람의 무게만큼만 길을 내주고, 사람의 발걸음을 그 품에 품어준 길이다.



그래서 그 길에 들어서면 두 사람도 옆으로 나란히 서는 동행의 걸음을 버리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길을 가게 된다. 앞사람이 뒷사람의 길을 밝혀주고, 뒷사람이 앞사람이 낸 길을 다져준 좁다란 오솔길을 숨을 참아가며 20분정도 오르니 백련사라는 암자가 나온다.



그 앞에 높이 10m는 족히 될 것 같은 돌탑 2개가 보인다. 마이산 탑사의 돌탑에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빼어난 수준이다. 돌탑 주위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백발이 성성한 정현관선생이다.





돌이 아니라 정성을 쌓는다.

“언제부터 돌탑을 쌓기 시작했나”하는 질문에 “한 십몇년 될껄” 하면서 지나온 세월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15년 가까이 3m 내외인 것에서 10m가 넘는 거대한 돌탑에 이르기까지 그가 종고산에 쌓아놓은 돌탑수만 30여개이다.

그의 직업은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여수공고에서 학생들에게 전기를 가르치고 있다. 15년 가까운 세월동안 선생은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종고산에 올라 돌탑을 쌓는다.



“돌탑을 왜쌓으시냐?”는 기자의 당돌한 질문에 “처음부터 돌탑을 쌓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고 답한다. 어느 날 산에 오르니 돌담길이 무너져 있어 그 돌담길을 보수하다가 주위의 돌들을 주워 하나하나 쌓다보니 그 것이 돌탑이 되었다고 한다.



선생이 돌탑을 쌓을 때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돌탑을 쌓기 위해서 주위의 나무 한그루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돌을 정으로 깎거나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돌로 탑을 쌓는다는 원칙이다.



탑하나 쌓는데 3년 작은 돌탑 하나 완성하는데 3개월여만에 마무리되는 것도 있지만, 3년이 넘는 세월을 돌탑 하나에 쏟아놓은 것도 있다. 돌탑을 쌓는 것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피라미드 형식과 일자형 탑이다. 피라미드 형식의 탑은 바닥에서부터 돌아서 올라가며 밖으로 큰 돌을 쌓고, 그 안을 작은 자갈로 채워 쌓아가는 방식이다.



선생이 쌓아가는 방식은 피라미드 방식이다. 일단 하단부에 큰 돌로 기초를 잡는다. 적당한 돌을 찾기 위해 1km가 넘는 거리에서 돌탑까지 돌을 운반할 때도 있다.

돌이 워낙 무거워 들 수가 없으니,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굴려서 가져온다고 한다. 보통의 정성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정현관 선생은 15년 동안 눈이오나 비가 오나 해온 것이다.



이제는 그만 쌓을 예정...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물로 목을 축인 우리는 종고산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30여개의 돌탑들을 찾아 나섰다.

어떤 것은 등산객들의 휴식공간 주변에 망부석처럼 쌓여있는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잡목숲 속에서 덩쿨과 이끼로 뒤덮힌 채 세월의 성상을 이겨내고 있는 돌탑들도 있었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진 모습은 없다.“시멘트로 만든 건축물보다 돌로 쌓은 돌탑이 훨씬 더 오래간다”고 말하는 선생은 “그것이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라고 설명한다. 30여개 돌탑 중에 한 개만 외로이 서있는 돌탑은 없다.



한 개의 돌탑은 외롭기 때문에 항상 2개 이상의 돌탑을 쌓는다고 한다. 선생의 마음에서 진한 인간애가 느껴진다.“언제까지 돌탑을 쌓을 것이냐”고 물었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해서 지금 쌓고있는 돌탑만 완성되면 그만 쌓을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 선생이 마지막 작품으로 생각하고 쌓고 있는 돌탑은 높이 10m정도 되는 쌍둥이 돌탑으로 1개는 이미 완성했고, 다른 1개는 2/3정도의 공정을 보이고 있었다.



여수시민 누구나 가보기를 권하고 싶은 산

선생과 대화를 나누면서 느린 발걸음으로 종고산을 한 바퀴를 돌았다. 10분 단위로 경치가 바뀐다. 오동도가 한눈에 들어 왔다가, 광무동이 한눈에 들어 왔다가, 돌산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가, 중앙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종고산에 오르면 두개 봉우리를 한 바퀴 돌 수 있게끔 산책로가 말끔히 정비되어 있다. 시설들이 깨끗하고 정갈하다. 이런 길은 혼자 걸어도 제 맛일 것 같다.

혼자 걸어도 혼자 같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햇볕이 옆으로 길게 몸을 눕히는 오후의 늦은 시간을 잘 고르면 이 길들은 이제 완연한 빛의 수로가 된다.



잘 가꾸어진 숲길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작별인사를 하는 기자에게 “절대 내 사진은 올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한다. 아들 대학 졸업식장에도 사진 찍기 싫어서 가지 않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산을 내려오는 길. 그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언젠가 사라져도 돌탑은 영원히 후세에 남을 것이다...”

종고산, 간단한 복장으로 꼭 가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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