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40

몇 년 전이다. 일요일인데 몸이 좋지 않았다. 당직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으러 막 문을 들어서려는데 전화가 왔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운 녀석이다. 왜? 하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뭐? 푹 쉬라는 의사의 권고도 무시하고 바로 광주로 달려갔다.

이른 시간이라 문상객이 별로 없었다. 어머니께 큰절을 드리고 나서, 가만히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열몇 살 때 뵙던 단아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험한 세월이 영정 위에 더께처럼 앉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웃고 계셨지만 많이 고단해 보였다. “어머니, 힘드셨지요. 이제 다 내려놓고 편히 쉬십시오.”

그런 말씀을 올리고 나니, 괜히 울컥해졌다. 그래 화장실 가는 척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서늘했다. 바람 때문일까, 저 멀리 흰 구름이 아주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머무신 연꽃 자리 같았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옛날 아주 옛날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늘 고운 한복을 입고 계셨다. (어찌 항상 한복만 입고 계셨겠는가. 하지만 나의 기억 속에 다른 모습은 다 지워져 있다.) 언제나 환하게 웃으셨고, 우아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몸뻬만 입고 거칠게 세상을 살아내시던 우리 어머니와는 사뭇 다른 세계에 사시는 분 같았다. 서럽게 부러웠다.

친구 집에 가면 언제나 어머니께서는 직접 다과상을 들고 나오셨다. 그 시절에도 보기 힘든 양과자하고 밀크(그때는 우유를 왜 밀크라고 했는지 모르겠다)가 놓여 있었다. 양과자는 달콤했고 우유는 부드러웠다. 그러고서는 잠시 앉아 계시다가, “우리 아들 친구님들 잘 놀다 가세요.” 하고 나가셨다.

그래서 어느 날 여쭈어 보았다. “일하는 누나도 있는데 왜 어머니께서 직접 상을 들고 나오십니까?” 어머니가 웃으면서 하신 말씀이 이러셨다. “우리 아들 귀한 친구님들이신데, 이 어미가 해야지 누구한테 시켜.” 마음에 쿵 무엇인가 내려앉는 기분, 그러면서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교회에 가서 여쭈었다. 유한귀 목사님이셨을 거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사람만은 왜 손으로 직접 빚으셨나요? 말씀 한 마디면 다 지으실 수 있으시다면서요.” 이내 돌아온 말씀. “당신의 귀한 아들딸이라 그러셨겠지. 왜 우리 어머니들도, 군대 갔다 온 아들에게는 손수 밥상을 차려주시잖아?”

…… “어머니, 저는 그때 양과자하고 우유만 먹은 게 아닙니다. 늘 허기져 있었는데, 뵙고 나면 허기가 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 말은 친구라면서 아들한테도 꺼낸 적이 없습니다. 자존심이라기보다는 아팠기 때문입니다.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지상에서 마지막 인사를 어머니께 올렸다.

우리 반 서른두 분의 어머니들,
어머니께서 이 세상을 아주 떠나실 때
마지막 길을 지켜 줄 이들이 누구일까요.
조의금만 내고 떠나는 이들과는 달리
진심으로 어머니를 배웅해 드릴 이들이 누구일까요.
아들 친구들한테 잘 해 주십시오.
- ‘아들 친구들한테 잘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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