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광주전남 중소기업청의 이의준 청장님과 공직자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분은 공직자의 친절도가 백화점이나 항공사와 경쟁을 해서, 당당하게 이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똑같이 돈을 버는 직업인데 왜 공직자는 목에 힘을 줘야하고, 백화점이나 항공사의 서비스같이 고객인 시민들에게 친절하게 못하냐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공직자들이 그렇게 하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세상이 바뀌려면 공직자와 정치인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직자가 빨리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그 까닭은 공무원들의 역동성과 상상력이 만들어낼 변화의 기대효과가 다른 그 어느 집단보다도 크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도 하시네요. 사무관 공무원 한명이 마음먹고 일을 하면 웬만한 시민단체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사무관이라고 하면 시청의 과장직급을 말하는데 내용을 보면 크게 과장된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리의 조명하나 바꾸는 것에 따라 거리 모습이 달라지고, 관공서 건물 하나가 들어설 때도 공무원의 예술적 감성에 따라 교도소 같은 건물이 들어설 수도 있고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멋스러운 건물이 들어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여수의 공무원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불친절하다는 얘기도 자주 들립니다.

이 말에 대해 맞는 얘기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잘못 알고 있다며 억울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식당에서 손님들은 음식 맛이 짜다고 하는데 주인이 짜지 않다고 우기면서 음식 맛을 바꾸지 않으면, 결국 그 식당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직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카브리엘은 “국민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진정한 행정의 본령”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좀 나빠도 조금만 더 진도를 나가 보겠습니다. 공무원들에게는 삼대 병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공무원 사회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조직이 상하좌우로 경직되어 있어 현재 하고 있는 것에서의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으려 합니다. 지금 이대로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전문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에 반발하는 공무원들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저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전문지식이 부족한 공무원이 너무 많다는 사실도 우리는 함께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하는 일과 투입한 예산에 비해서 생산성이 낮다는 사실입니다. 일반 기업에서 이 정도 일을 하면 과연 그 자리를 보존할 수 있을까하고 염려되는 공무원도 적지 않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공무원스럽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무원들께 당부 드립니다. 상명하복이라는 봉건적 타성에 너무 굴복하지 마시라고.

그렇게 되면 법이 보장한 정년은 영혼 없이 채워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퇴직 때까지 그저 그런 공무원으로 머물다 마는 공직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공직자의 승진이 그 사람의 실무적 자질과 성실한 사명감보다는 정치적 교섭능력과 사교성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불만을 가진 공직자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열심히 일하지도 않은 사람이 윗사람에게 ‘사바사바’해서 승진하면 기분이 ‘엿’ 같지요.

그렇지만 그 자리를 돈을 주고 산 경우가 아니라면, 윗사람에게는 아부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거만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고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 너무 부족한 경우가 아니라면, 교섭능력과 사교성도 실력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도 갖습니다.

무능한 간부가 아니면 기본적으로 사람 보는 눈은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무능한 간부라면 문제는 전혀 달라지겠지요.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여수의 공무원이 바뀌면 여수가 바뀔 것이라고.

지금 공직사회 밖의 세상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극단적인 경쟁과 실업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수백만이고 청년실업은 끝도 없습니다.

이런 시대에 국가가 정년을 보장하면서 공무원들에게 공무노동을 맡긴 까닭은 외압이나 정치적 외풍에 휩싸이지 말고, 세상의 불합리를 공정하게 바꿔가면서, 공적 책무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요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공직자나 정치인들은 측은지심을 가져야 합니다. 측은지심이란 무엇입니까?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착한 마음입니다. 그러면 ‘남’이란 누구입니까? 바로 공무원들이 섬겨야 할 시민들이 아니겠습니까?

잘 먹고 잘 사는 시민들은 누가 보살펴주지 않아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살 것입니다.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은 늘 춥고, 늘 허기지고, 늘 힘들어서, 이 따뜻한 봄날에도 사랑이 고픈 사람들에게만은 측은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입니다.

정치인들이 나서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먼저 변해 주시면 우리 여수가 다시 힘차게 일어서서 새봄에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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