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사람 1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큰집에 달려갔을 때, 할머니는 흰 천에 덮여 있었다. 기차로 가며 내내 울었는데 막상 가보니 아무도 울지 않았다. 아흔 넘어 가셨으니 호상이라면서 되레 웃음소리가 들리곤 했다. 울어서는 안 되는가 보다 하고 얼른 눈물을 감추었다. 나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다.

할머니는 가시면서도 할머니답게 가셨다. 곡기를 넘기지 못한다는 전갈을 받고 아버지가 달려갔을 때,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할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작은아들 보는 앞에서 밥 한 그릇을 비우셨다. 그걸 보고 안심하고 아버지가 내려온 그날 밤, 할머니는 아무도 부르지 않은 채 혼자 가셨다.

젊어서 혼자되시고 험한 세월을 꼬장꼬장하게 견디신 할머니답게, 마지막 삶도 조용히 거두어 혼자 가셨다. 할머니를 관에 모시는 순간, 아버지 형제들이 새털처럼 가벼워진 몸을 들어올렸다. 이제는 마지막! 그만 울음이 터져 버렸다. 그런데 그때, 꾸루룩 하는 소리가 할머니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 소리는 온몸을 쭈뼛하게 만들었다. 휘청했다. 넘어질 뻔했다. 금방까지는 서럽다고 울던 놈이 갑자기 무섭다고 하얗게 질리니, 모양새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 나를 뒤꼍으로 데려간 이는 겸백 당숙모였다. “할머니가 정 떼고 가시는 거다. 이게 할머니 마지막 선물이야.” 그렇게 날 토닥여 주었다.

내게 할머니는 언제나 할머니셨다. 어린 시절, 앞 터진 바지를 입던 시절, 할머니 잡수시던 밥에 실례를 한 모양이다. 갑자기 벌어진 일. 기겁을 한 어머니를 향해, 우리 손주 쉬 끊기면 안 된다며 내버려두라고 하셨다. 그러고서 그 밥을 물 한 번 휘 저어 헹군 다음 당신이 맛나게 잡수셨다. 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 집에서는 전설이다. 할머니는 늘 내게 그러셨다. 그런 전설을 언제나 서슴없이 쓰셨다. 딸 넷 사이에 아들 하나였으니, 오죽하셨을까. 호호 불고 닦으셨다. 그런 분이셨다. 그런데 그분이 손주 몸 상할까 봐 정 떼고 가셨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목이 메었다. 태어나서 가장 오래 울었다.

잊고 지내다가, 사는 게 팍팍해지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그때가 봄이었을까. 다니던 대학에서 쫓겨나 성치 않은 몸으로 할머니를 찾았을 때,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내게 자리를 내어 주시고, 당신은 봉분으로 손주 곁에 오래도록 앉아 계셨다. 서러움은 걷히고 괴로움은 이내 다스려졌다.

그렇게 할머니를 몇 번이나 찾았을까. 그렇게 나의 청춘은 갔다. 이제 이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나는 죽음이 낯설다. 하지만 문득, 저 너머의 세계에 그분이 계신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삶의 짐도 가볍게 덜어 주시더니, 할머니는 죽음까지도 가볍게 해 주시는 걸까. 아, 할머니.

풍경이 있는 사람이 있다.
살아서 풍경으로 서 있더니
죽어서도 말없이 풍경으로 서 있으며
삶의 배경이 되어 주시는 그런 분이 있다.
- ‘풍경이 있는 사람이 있다’

저작권자 © 뉴스탑전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