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사람 2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렇게 견고하던 집안 서열 1위는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의 출현으로 흔들렸다. 아무도 나를 먼저 찾지 않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엄마의 가슴도 더 이상 내 차지가 아니었다. 울기만 하면 다들 아이에게 달려가 온갖 시중을 다 들었다. 눈꼴이 시었다.

세력이 더 견고해지기 전에 남몰래 제거해야겠다는 결심은 그래서 자연스러웠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때렸다. 자지러지게 울었다. 고소했다. 이제는 승부가 끝났나 싶었다. 그런데 홀연히 나타난 엄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날 때렸다, 그것도 노려보면서. 그 눈빛, 맞는 것보다 더 아팠다.

전술을 유연하게 바꾸기로 했다. 아이가 그토록 사랑받는 까닭을 찾아내기로 했다. 관찰 결과, 걔는 밥이 아니라 젖을 먹고 있었다. 저것이다. 느닷없이 잘 먹던 밥을 먹지 않았다.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 돌아온 건 배고픔뿐. 그래서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다. 다가온 건 날 밀치는 차가운 손길뿐이었다.

쇠약해진 몸으로 다시 관찰을 시작하였다. 아이는 오줌똥을 누워서 해결했다. 그러면 엄마는 “내 새끼, 예쁘기도 해라.” 하며 그 냄새나는 것을 치우셨다. 그렇다! 큰 것부터 하기는 좀 뭐해서 옷에 쉬를 했다. 그런데 돌아온 건 치욕. 키를 쓰고 밖으로 내쫓겼다. 거기서 이웃집 소녀를 만났다.

이미, 더 이상 집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어느 날 소녀가 말했다. 내가 엄마 할게, 네가 아빠 해. 밥상은 아기자기했다. 고운 흙으로 밥을 짓고, 풀을 따 반찬을 만들었다. 작은 사금파리에 담긴 것은 모두 반짝거렸다. 그런데 행복도 순간. 누구야, 밥 먹어라 하면 우리는 각자 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다 간 곳이 학교. 엄마의 목소리가 미치지 않는 공간이었다. 이웃 마을에 사는 단발머리 소녀가 거기 있었다. 예뻤다. 설렜다. 하지만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알나리깔나리 하는 개구쟁이들의 놀림이 두려웠다. 지금처럼 그 시절도 따돌림은 죽음이었다. 사람을 마음으로 품는 법을 그때 배웠다.

내 나이 어느덧 아홉, 클 만큼 컸다. 겨울방학은 지루했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계집애들을 공격하기로 했다. 급습의 효과는 만점. 고무줄을 찾느라 몸을 뒤지는데, 그 소녀가 서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내게 몸을 맡긴 채. 빛바랜 분홍색 코르덴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헉! 거기 고무줄이 잡혔다.

우정이냐 사랑이냐. 번민은 길지 않았다. 시치미 딱 떼고, 보내 주었다. 나는 다음해 전학을 가야 했다. 그러고서 사십여 년이 흘렀다. 어찌어찌 연락이 되어 동창들을 만났다. 술기운으로 그 말을 농담처럼 꺼냈더니, 그런 일이 있었어 하며 늙은 소녀가 깔깔 웃었다. 늙은 소년도 따라 웃었다.

우리는 한때
분홍빛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꽃처럼 앉아 있던 파란 나뭇가지였다.
비록 지금은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하지만
그러면서도 꽃나무라고 아득바득 우기는 건
그런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런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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