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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섬정호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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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14  09: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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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언제나 말없이 돌아앉아 있다. 그들은 제 자리를 가늠하지 못하고 파도에 밀려 떠돌고 있다. 거센 바닷바람에 부대낀 소나무들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바스러졌거나 허리가 굽었다. 옆을 지나는 호화로운 여객선의 뱃고동 소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빈집들뿐이다. 돈을 벌기 위해 대처로 떠나버린 자식들을 기다리며 밭머리에 앉아 있는 노파는 귀가 먹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끝자락인 듯이 아득히 가물거리고 있는 수평선이 있지만, 귀먹고 눈먼 이들 노파는 시인이 아니라서 그런 풍경이 가슴 저리게 하는 낭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저 칡뿌리처럼 질긴 목숨에 의지하여 출렁거리는 파도에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지금 시골 바닷가에 살고 있지만, 서울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자녀들이 모두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종 문학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힘겨운 나들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은 지난 40년 동안 내 삶의 터전이었기에 고향 못지않은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40년 전과 지금의 서울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60년대만 하더라도 변두리의 외곽지대에는 아직 포장도 되지 않은 길에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버스 여차장은 승객이 다 오르기도 전에 ‘오라잇’을 외쳐대며 만원버스의 출입문에 매달려 있는 나를 향해 자신 없으면 빨리 내리라는, 그 어기찬 호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매달려 있었던 슬픈 인내심 덕택으로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당당한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 버텨올 수 있었다. 전국의 혹은 세계의 단거리 선수들만이 모인 이 약삭빠른 경기장에서 서커스단 소녀의 누워 통 돌리기나 공중그네 건너뛰기 같은 재주와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아슬아슬했던 서울의 추억을 나는 지금 반추하고 있다. 남보다 언제나 한 걸음 뒤처지게 마련인 나는 결국 서울의 약삭빠른 서울의 재주꾼들에게 모든 것을 다 털려 허탈감에 빠지기도 했다. 이는 적자생존의 당연한 이치이기에 나의 무능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시골 갯가의 장바닥은 언제나 떠들썩하고 정겹다. 푸성귀를 집어주는 할머니의 시루떡 같은 손등에는 오랜 세월의 모진 삶의 흔적이 닥지닥지 붙어 있지만, 이곳의 바다와 하늘의 색깔이 너무 고와서 오히려 자랑스럽다. 이들이 주고받는 구수한 사투리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 열리고 있다. 그리하여 해질 무렵 섬으로 뭍으로 제각기의 보금자리를 찾아 흩어져 가는 뒷모습들은 슬프도록 행복해 보인다. 이들에게는 무엇 하나 부러운 것도 미운 것도 없다. 그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족하다. 이웃끼리 혹은 사돈끼리 만나면 손잡고 반가울 뿐이다. 다만 이들의 소망은 대처로 돈 벌러 떠난 자식들 몸성히 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지금 시골의 갯가에서 따뜻한 인간의 삶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인근 신흥도시들은 고층건물의 숲속에서 하늘의 색깔을 알지 못한다. 하늘을 가려버렸으니 밤에는 별이 뜨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뜰 필요가 없다. 별들을 대신하여 길가의 가로등들이 어두운 밤하늘을 밝혀주고 있다. 어린 시절 숲속의 어둠을 밝혀주던 반딧불이와 시냇가의 물매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들이 모두 뭍으로 기어 올라가 이렇게 떼를 지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문명의 홍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욕망의 무리들이 찾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짓궂은 물음을 하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태반이 ‘과대망상증’이거나 ‘우울증’ 환자들이다. 과대망상증은 이곳의 휘황찬란한 대도시의 궁전에서 볼 수 있는 외적 시각적 현실에서, 우울증은 즐비한 고층아파트의 유리창을 차단하고 있는 우중층한 커튼에서 볼 수 있는 내적 심리적 현상에서라고 할까. 경비원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출입이 기계화되어 있는 주상복합아파트들의 자물쇠 비밀번호가 인간의 목을 죄어온다. 일반아파트들도 뒤질세라 바쁜 걸음이다. 기억력이 흐린 노인네들이 갈 곳은 어딘가. 동공의 초점을 잃은 거리의 행인들, 그들은 이미 삶의 방향감각이 마비되어 버렸다.

나는 지금 시골의 산등성이 아파트 창가에 서서 파도에 밀려 흔들리고 있는 섬을 내려다보고 있다. 대처로 돈을 벌러 떠난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는, 귀먹고 허리 굽은 노파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휘황찬란한 물질문명에 매혹되어 흔들리고 있는 병든 대도시의 섬들이 갈 곳이 어딘가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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