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6월 중순이다. 살다보면 지금 내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혼자서 가늠해 볼 때가 있다. 지금 내가 세상을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내 자신을 되돌아 볼 때다.

그러다가 가끔은 누군가로부터 찬물 한 바가지를 얼굴에 확 맞을 때가 있다. 정말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정신이 확 돌아오는 날이다.

어느 날이었다. 아주 돈이 많은 사람과 권력이 제법 높은 사람과 나, 이렇게 셋이서 만난 적이 있다. 특별히 할 얘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찌 하다 보니 셋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돈 많은 사람이 권력이 높은 사람에게 이러는 것이었다.

“자네, 잠깐만 나가 있게나. 내가 박 대표와 둘이서 긴히 할 얘기가 있네.”

그 말을 듣고 나는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이 그런 말을 들어야 할 만큼 그리 만만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순순히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이었다. 나 같으면 그 말에 자존심이 몹시도 상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날 생각했다. 내가 세상을 참 잘 살아야 하는구나, 내가 세상을 어영부영 살면 나도 언젠가는 저런 사람들에게 “박 대표, 잠시 자리 좀 비켜주게나, 내가 이 사람과 할 얘기가 있네.”하는 말을 듣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가고 나서 ‘긴히 할 말’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말도 아니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그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나는 밖에 있는 사람이 몹시도 마음에 걸렸다.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을까, 혼자 주변을 걷고 있을까, 아니면 그냥 집에 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분이 몹시도 씁쓸했다. 대충 얘기를 마무리하고 그 사람을 부르니 그 사람은 가지도 못하고 홀에 있었다.

그날 그 말을 듣고 자리를 비켜준 그 사람은 “자네, 조금 나가 있게나.”하는 말을 듣게 되기까지, 술 사주면 술 얻어먹고 용돈 주면 용돈 얻어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적 권력이나 사회적 재량권을 가진 사람들은 특히 조심할 일이다.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는 법이다.

내가 하는 이 말의 의미를 “아, 그렇구나.”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몸가짐을 조금이라도 조심하는 분이 계셨으면 좋겠다.

그 일을 목격한 뒤로 정신이 확 깼다. 그 사람을 보면서 그가 가진 권력마저 떨어지고 나면 저 사람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라고 다를까. 누구라고 다를까.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직위를 떠나서 싸게 놀면 싼 사람이 되고, 비싸게 놀면 비싼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가격은 모두 다르다. 사람의 가격은 사회적 가격과 정신적 가격, 이렇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누군가 ‘사람에게 무슨 가격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교통사고를 당해보면 사람마다 가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받는 가격이 그 사람의 사회적 가격이다.

그러나 사람의 진정한 가격은 사회적 가격이 아닌 정신적 가격으로 따져야 옳다. 그런데 사회가 어디 그런가.

우리 사회는 그가 어떤 집에 사는가, 어떤 차를 타는가, 어떤 옷을 입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작은 이익 앞에서도 금세 얼굴을 바꾸는 사람이 있고 말을 바꾸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당연하듯 이득을 챙기는 사회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독하게 살아야 살아남는 사회라고. 그 사람이 착해도 힘이 없거나 가난하면 무시받기 일쑤이고, 자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면서도 누군가 땀 흘린 대가로 얻은 성취에 대해서는 승복하지 못하고 질시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서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은전 몇 푼에 고귀한 우리의 영혼을 팔지 말자는 얘기다. 악마는 그것을 사려고 늘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이익과 헛된 명예와 뜬구름 같은 허세를 얻으려고 우리 가슴 깊은 곳에 오랫동안 키워온 온 의로운 마음을 악마에게 내주지 말자는 얘기다. 악마는 누군가와 거래를 하면서 절대 손해를 보는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아름답게 살아야 하겠다. 오늘도 영혼이 사무치도록 살아야 하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물 한 모금 앞에서도 당당해해야 하겠고, 햇볕 한 줌 앞에서도 떳떳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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