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위험하지는 않으셨어요?”

물이 하늘에 올라가면 구름이 되고, 땅에 내려오면 시내가 되고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된다. 아니,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물고기가 되고, 그리하여 우리 밥상에 밥이 되고 반찬이 되고, 내가 되고 우리가 된다. 아니 모든 생명의 젖줄이 된다. 그러니 어찌 물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주 오래 전에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아름다운 물’이라며 여수(麗水)로 이름지어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분들 덕분에 2012년에는 여수에서 세계 최초의 해양박람회가 열려 “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라는 주제를 세계인의 가슴에 새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어찌 바다뿐이랴. 도시를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계시는 사람들이 있어 여수는 더욱 아름답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아름답게 여수를 가꾸어 가는 분들을 찾아보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여수성폭력상담소 강정희 소장을 뵈러 갔다.

▲ 강정희 소장, 성에 관련된 인터뷰조차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분이다. 상담도 이렇게 진행하는구나 싶었다. ⓒ 선준상

▲ 아동성폭력예방 포스터
“성폭력이 뭐예요?”

- 성 폭력 피해자는 주로 여성이잖아요. 여성이 피해자가 되고, 남성이 가해자가 되는 데는 어떤 원인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 가해자의 대부분이 남성이지.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꼭 가해자가 남성이고 피해자가 여성이지만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가해자가 남성이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야. 왜 그럴까? 우리 사회가 아직도 남성 우월적이면서, 성차별적인 사회라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이제는 야한 동영상(야동)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개방되었는데요. 이런 현상이 성폭력과 상관관계는 없을까요?
“성에 대한 개방적 분위기는 매우 좋은 현상이야. 그렇지만 개방이 편협하고 왜곡된 정보에 의해 진행될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지지. 음란물을 통해서 성을 알게 되면 성폭력 등 일탈 행위로 이어지기 쉽다는 말이야. 그래서인데,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엄마 아빠로부터 성교육을 받는 개방적인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러면서 우리는 성적인 존재로서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 참 좋겠어.”

- 학교에서 성교육을 안 받은 건 아니에요. 그리고 성은 아름답다는 말도 많이 들어왔고요. 하지만 성이라고 하면 아직 부끄럽다는 느낌이 들어요.
“성 하면 생각나는 게 단지 성기라든가, 섹스(sex)라든가 하는 일차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거야. 그게 성의 전부는 아니거든. 따뜻한 마음, 배려 등등 참으로 아름다운 게 성이야. 바로 이런 이야기를 공론의 장에서 서로 나눈다면, 그렇게 부끄러울 것도 없어. 어찌 보면 올바르게 성을 교육하는 것이 인성교육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어.”

“성폭력도 상담의 대상인가요?”
- 성폭력 상담 중 인상 깊은 사례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가슴 아픈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지적장애를 가진 청소년 지원 사례야. 이 친구는 고등학생인데 경도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어.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성폭력과 친밀감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거야. 가해자가 나를 성폭력하기 위해서 꼬드기는지 정말로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지 구별을 못 해. 이 친구도 그랬어. 그래서 또래 학생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는데, 덜컥 임신을 해 버렸어.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어. 본인이 하겠다는데도, 우리 지역 산부인과에서 낙태를 못 하겠다고 그러는 거야.”

- 낙태를 쉽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조차 낙태하기 어렵다는 건 더 큰 문제인 것 같아요. 피해자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해 주어야지 않을까요?
“그래. 겨우겨우 설득해서 낙태를 하긴 했어. 그러고 나서 이 친구와 지금까지 상담을 해오고 있어. 처음 얼마 동안은 이 친구가 상담소 문을 들어올 때 고개를 들고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만큼 자존감이 무너졌던 거지. 그랬는데 2년 동안 심리치료와 놀이치료, 그리고 개별 면접을 통해서 이 친구가 달라졌어. 지금은 어느 정도냐면 굉장히 자신감도 붙고 자존감도 향상되어서, 다른 또래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상담을 하기까지 해. 정말 보람된 일이지.”

- 여럿이 성폭력을 했다면 윤간인데, 가해자들은 어떻게 되었어요? 당연히 법의 처벌을 받았겠지만요.
“가해자들은 굉장히 죄질이 나빴어. 공중화장실에 데리고 가서도 그랬고, 빈집에 데리고 가서도 그랬고. 그렇다고 이 녀석들을 그냥 처벌만 하고 끝내면 안 돼. 어차피 우리와 다시 살아갈 아이들이거든. 그래서 소년원에서라도 우리 상담소의 교정치료를 받게 해 달라는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어. 그래서 이들에게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하고 사회봉사 명령도 수행하도록 도왔지. 지금은 이들은 출소하여 학교도 다니고 있고 얼굴도 밝아졌어. 2년 전에 그 못된 모습이 아니야. 이게 상담소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상담소에서는 주로 무슨 일을 하나요?”

-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주로 무슨 일을 하시나요? 피해자를 지원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은데요.
“가장 중요한 업무는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일이야. 성폭력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 이들을 즉각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도 하고 의료비도 지원하기도 하지. 그리고 법률적인 지원도 하고 있어. 성폭력 범죄를 당했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럽기 때문에 고소장 작성부터 다 도와주고, 특히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을 지원하기도 하지.”

- 대단하신데요. 아까 말씀하신, 심리 치료도 중요한 지원 활동의 하나이겠는데요?
“그래. 의료 지원이나 법률 지원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일은 피해자로 하여금 정말로 피해를 극복하게 하는 치유 프로그램이야. 개별적인 상담을 통해서 피해자에 맞는, 자존감 향상을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 그림을 통한 미술 치료나, 모래를 통한 놀이 치료나, 독서 치료 등을 통해 피해자가 그 고통스러운 상처를 이겨내도록 도와주고 있어. 또 우리는 NGO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안, 특히 인권에 관계되는 문제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 연대하기도 하고.”

- 만약 저라면 아내가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남편께서 반대하지는 않나요?
“남편? (웃음) 흔히들 그러지. 밤길을 여자가 다니다가 성폭력 피해를 입으면 그 여자 문제 있구만 하는 잘못된 생각, 여자가 야한 옷을 입고 있으면 성폭력을 부른다는 그런 왜곡된 생각. 그런데 남편은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아. 한마디로 깨어있는 사람이지.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남편의 도움이 컸어. 반대하기는커녕, 예나 지금이나 동지적인 입장에서 남편은 나에게 힘을 많이 주고 있지.”

▲ 여수를 아름답게 만드는 분을 만나서, 우리도 어서 자라 여수를 아름답게 만들겠다고 약속드렸다. ⓒ 선준상

2011년 현황을 토대로 대검찰청에서 만들어진 범죄분석 통계자료(대검찰청 사이트 알림마당)를 보면 인구수 당 성폭력 발생 비율이 전국적으로 43.4%인데 여수는 21.5%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지역 1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리고 인구수 당 아동 성폭력 발생 비율도 전국평균 2.1%인데 여수는 이에 비해 0.7%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지역 2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이렇게 된 데는 여수경찰서나 학교 등 정부 기관의 노력도 컸겠지만, 이름도 없이 성폭력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쓴 성폭력상담소 등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들이 찾아와 욕설과 협박을 하는 와중에도 피해자들을 돌보는 것을 그만두지 않은 소장님을 보면서, 여수가 어떻게 제 이름값을 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김동화, 오세은, 김보선, 차민진, 선준상, 윤다현 기자. 지도 교사 : 박용성)

♣ 덧붙이는 글 : <사랑해여수>는 “아름다운 여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우리 고장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알리고 있는 여수지역 고등학생들의 연합동아리입니다. 우리 동아리에는 여수(YEOSU)의 글자 하나씩을 따서 만든 ‘Y-fine’, ‘Energy’, ‘Oasis’, ‘Superstar’, ‘U&I’ 총 다섯 팀이 있지요. 이 기사는 U팀에서 작성하였습니다.

♣ 취재 후기 : 기사를 쓰기 위해 3월 4일, 4월 13일과 20일, 세 차례에 걸쳐 여수성폭력상담소를 찾았습니다. 이 기사를 쓰면서 저희를 이끌어 주신 박용성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팀장 : 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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