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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경 수필]나와 같은 이름의 사람들정호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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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17  13:4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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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면 반갑다”는 속담에 대한 풀이는 무엇이나 고향의 것이라면 다 좋고, 객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는 것은 더욱 반갑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위에 든 속담과 얼마만큼의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성명이 같고 보면 전혀 무관한 사람보다는 관심이 더 가고, 정이 끌린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이름이나 얼굴 생김이 닮아서 오히려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한 사람도 있으니 도대체 사람의 심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호랑이가 저를 닮은 고양이를 보면 종이쪽지처럼 찢어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것도 자존심에 관계되는 일인지 참 우스운 일도 많다.

옛날 언젠가 6∙25 이후 행방을 알 수 없는 중학교 동창 친구의 소식이 궁금해서 혹시나 하고 그의 주소를 알아보기 위해 두툼한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다 문득 내 전화번호와 주소에 호기심이 생겨 내 이름을 찾은 순간 나의 눈은 불시에 난시현상을 일으켜 어지러웠다.
서울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전국이 아닌 서울만으로도 수십 명이나 되는 동명이인에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한자 성명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우선 여기 올라 있는 한글 성명의 ‘정호경’들이 짚으로 엮어 놓은 굴비묶음처럼 즐비하고 보니 하는 말이다.

요즘은 모든 원고나 서류를 컴퓨터 파일로 주고받는 시대이어서 나도 이런 시대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볼펜으로 쓰는 원고지보다 컴퓨터 앞에 자주 앉는다. 언젠가는 원고를 쓰다가 지쳐서 중단하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인터넷에서 흥밋거리를 뒤적이다가 이곳의 내 이름에는 또한 어떤 정보가 올라 있나 싶어 검색을 해보니 이곳에도 역시 여러 명의 ‘정호경’이 인물사진과 함께 최근 소식이며 직업까지 올라 있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의 근황과 글을 골라 여기 소개한다. 여기 올린 남녀 ‘정호경’님들의 양해를 바란다.

정호경① 19회 정호경입니다. 덕유산 눈꽃산행, 아름다운 추억이 될 듯합니다. 자상하신 선생님들의 보살핌과 동기들의 따뜻한 마음을 한껏 받고만 왔습니다. 시작부터 어려울 뻔했던 산행, 당일 언니가 아파 응급실에 새벽 한시부터 함께 있다가…
정호경② 생일을 축하합니다. 흰 눈이 쌓여 설경이 아름다운 계절에 태어난 친구와의 만남이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정호경③ 인생은 버찌 한 알, 죽음은 씨앗 한 톨, 사람은 벚나무 한 그루…
정호경④ 故 정호경(루도비꼬) 신부님. ‘농민들의 사제’ 안동교구 정호경 신부 선종(善終). 정호경 신부(원로 사목자)가 4월 27일 오후 7시 46분 병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71세. 고인의 장례미사는 4월30일 오전 11시 목성동 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정 신부가 새긴 ‘전각성경 말씀을 새긴다’ 본문의 내용에 대해 소개하면서 “정호경 신부님은 이 땅의 농민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농민들을 위해 투신하여 싸우시다가 스스로 농민이 되신, 특별한 분”이라며 “1970 ~80년대 어려운 시기에 농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큰 버팀목 역할을 하였다.”고 전했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각막기증을 하였으며, 유해는 교구 농은수련원의 성직자묘원에 안장했다.


이 외에도 얼굴이 다른 ‘정호경’의 이런저런 정보가 올라 있었지만, 하나같이 아름답고 정겨운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네 번째 ‘정호경’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름 앞에 나와 있는 ‘故’자를 보는 순간 얼굴에 핏기가 가시면서 나는 불쑥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 이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내가 언제 죽었나?” 눈을 부릅뜨고 허벅지를 꼬집어서 살아 있는 나를 분명히 확인했으면서도 머리가 멍했다.

돌아가신 그 분이 신부이건 신랑이건 성도 이름도 꼭 같은 동일감에서 받은 순간적인 착각과 충격 때문이었을까. 눈만 뜨면 컴퓨터 앞에 쪼그려 앉아 인생을 논하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칡뿌리처럼 되씹으며 목에 힘을 주던 나의 문학과 철학에 대한 허탈감으로 펄썩 주저앉고 말았다. 내 일상의 건강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故’자 앞에서 나는 왜 이토록 촌스럽게 떨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나는 내 이름 앞에 낯선 ‘故’ 자가 붙어도 좋고, 이름 뒤에 ‘他界하다’가 아니라 막말로 ‘죽었다’라는 서술어가 붙어도 좋으니 포근한 봄날의 밭두렁에서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엄마소를 닮은 얼룩송아지이거나 혹은 정호경(루도비꼬) 신부같이 착하고 고운 사람이었다는, 단 한 마디만이라도 남아 있는 세상 사람들이 덧붙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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