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다문화복지원

“아저씨, 외국인 바보 아니에요. 따졌어요.”

여수시가 발표한 ‘2012년 여수시 다문화가족 실태조사’(2012. 11. 2)에 따르면 여수지역에 거주하는 여성결혼이민자는 731명으로, 중국 225명, 베트남 186명, 필리핀 104명 순이었다. 그런데 이주여성 중 64.2%가 한국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언어, 문화적 차이’를 들었다. 다문화 복지정책에서 언어 문화체험 프로그램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해 준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지역에는 전국 최초로 민간이 설립한 다문화 복지시설이 있다는 소식을 여수시 관계자에게 들었다.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산업용 대체연료를 생산하는 (주)재원산업의 심장섭 대표이사가 지난 2009년 설립 운영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여수다문화복지원을 소개받은 것이다.

▲ 제니퍼 가족 : 곁에 다가와 어느새 우리 이웃이 된 다문화가정, 여수만 해도 700세대가 넘는다 ⓒ 방현유

“다문화복지원, 그분들에게 친청집이고 싶은 곳이에요.”

여수시 관문동의 주택가 사이로 난 골목을 가다 보면 따뜻한 인상을 주는 빨간 벽돌의 5층 건물이 나타난다. 여수다문화복지원이다. 1층에는 이주여성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방과 이주여성의 자녀를 위한 다문화 어린이집이 있고, 2층에는 한글 교육, 예절 교육 등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3층에서는 요리 강습 등 다양한 현지 적응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친근하게 우리를 맞아주는 박향덕 사회복지사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녔는데, 지난번과는 달리 다소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안부를 물었더니 “다문화가정 합동결혼식이 있어서 그래요. 베트남, 필리핀, 중국에서 결혼 이주한 다문화가정 3쌍 결혼식이 있었거든요.”라며 밝게 웃었다.

- 다문화복지원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시나요?
“다문화복지원은 한국에 와서 적응하기 힘든 이주여성들에게 ‘친정집’처럼 편안한 공간을 마련해 주고자 설립한 민간 복지시설이에요.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공방도 운영하고, 필요하다면 사업 신청도 해 주기도 하죠. 그리고 자기계발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기업이나 외국의 지원사업이나 행사진행도 돕고……. 주어진 일은 닥치는 대로 해요. (웃음)”

- 이주여성들은 어떤 프로그램을 좋아하나요?
“그분들이 항상 새로운 것을 좋아해서. (웃음) 그중 으뜸이 한국요리 프로그램이지요. 한국에 살다보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 경우가 많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밑반찬 요리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아주 호응이 좋아요. 그리고 한지공예나 칼레클레이와 같은 아기자기한 프로그램도 반응이 뜨겁고요.”

- 다문화가정을 위한 사회복지사, 어려운 일도 많이 겪을 것 같은데요?
“장애인이라든지 도와 줄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왜 다문화가정이냐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요즘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로 그분들을 곱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제일 힘든 건, 오해받는 경우예요. 그분들은 도움 받을 곳도 없고 말도 안 통해서 저희가 돕는 건데, 상대방은 이주여성 편만 든다고 따져요. 그분들이 소통을 제대로 못하니까 대변해 주는 것뿐인데.”

▲ 웃고 떠들다 : 박향덕 사회복지사와 이주여성 제니퍼, 만나 보니 우리는 모두 이웃이었다 ⓒ 방현유

“다문화복지원? 문제만 있으면 달려오는 곳이에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안녕하세요 해야지.” 하며 아이를 데리고 제니퍼가 나타났다. 이주여성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던 터라,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어가 서툴지만 궁금한 것은 모두 물어보라며 그는 밝게 웃었다.

- 한국말 잘 하시는데요?
“한국 온 지 5년 되었어요. (웃음) 하지만 혜인이가 더 잘해요. ‘혜인아, 신발 입어 봐.’ 하면 혜인이가 그래요. ‘엄마, 신발 입어 아니야. 신어야.’ (웃음) 필리핀 말로 ‘입어’는 all ‘put’인데 한국말은 ‘입어’, ‘써’, ‘신어’ 참 많아요.”

- 한국에 와서 제일 힘든 게 무엇이었어요?
“처음에는 한국말 전혀 몰랐어요. 신랑도 영어 못 했고요. 몸짓으로 했지요. (먹는 시늉하며) 먹을 거, (손으로 집 모양을 그리며) 집에 언제 들어오나요? 하지만 지금은 한국말 잘 배워 통역 준비하고 있어요.” (박향덕 복지사의 설명에 따르면, 제니퍼는 복지원에서 운영하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졸업하고 한국어자격증 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 복지원은 제니퍼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복지센터는 부모, 제니퍼 부모예요. 왜냐하면 문제만 있으면 달려와요. 문제 있으면 같이 고민하고 해치울 수 있어요. 만약에 신랑한테 무슨 문제 있으면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면 돼요. 다 고쳤어요.”

- 다문화복지원이 친정집 같다고 정말 느낄 때가 언제였어요?
“복지센터에서 ‘Love in Asia’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연락했어요. 남편과 아이들과 필리핀에 갔어요. 2011년 7월 19일. (웃음) 그때 어머니와 가족들 보았어요. 비행기 타면 돈 많이 들어요. 많이 고마워요.”

- 밖에서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힘든 점도 있었을 텐데요?
“바보 취급하는 거, 제일 싫어요. 한 번은 택시 탔어요. 그때 우리 집이 미평동 주택이었어요. 제일병원 가자고 했어요. 그런데 택시드라이버 문수동 갔어, 여서동 갔어, 저기 갔다가 제일병원 갔어요. 화가 났어요. 택시드라이버한테 말했어요. 아저씨, 외국인 바보 아니에요. 따졌어요. 그러니까 ‘아, 죄송합니다. 그냥 2300원 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어우 진짜. (웃음)”

▲ 조중훈 경사 : 취재 과정에서 우리는 제니퍼에게 손길을 내미는 여러 명의 ‘조중훈’을 여기저기에서 만났다 ⓒ 김채연

“외국인 바보 아니에요. 따졌어요.”

우리가 만난 ‘제니퍼’는 한국 생활에 잘 정착하는 듯싶었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러지 못하는 ‘제니퍼’도 많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찾아간 곳이 여수경찰서 여성청소년과이다. 이주여성들의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곳이라는 안내를 받고 실무자인 조중훈 경사를 만났다. 경찰관이라는 직업과 어울리지 않게 선한 얼굴에 해맑은 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 이 부서는 언제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하시는 일은?
“작년 하반기에 만들어졌어요. 가정폭력을 주로 담당하지요. 사건 처리도 하지만 폭력 예방을 위한 홍보도 해요. 이 팸플릿 좀 보세요. 가정폭력이 일어났을 경우 대응 절차가 담겨 있어요. 요즘은 다문화가정이 많아지다 보니까 영어, 일본어, 중국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로도 번역되어 있지요.”

- 다문화가정에서 가정폭력이 많이 일어나는 편인가요?
“여수는 그래도 다른 도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요. 하루에 두세 건 정도 신고가 들어오는데, 한 달에 한두 건 정도가 이주여성의 피해사건이에요. 신고를 받으면 사건 내용을 확인한 뒤, 심하면 쉼터로 가서 안정을 취하게 하지요. 전화번호나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안전한 곳에 있어요. 그곳에서 보호받으며 심신을 안정시키면서 이혼소송을 준비하기도 하지요.”

- 다문화가정 폭력사건을 처리하면서 느낀 점도 많으실 텐데요.
“가해자가 벌을 받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은 경우도 있지만, 외국인이니까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점이 참 안타까워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정폭력이 일어나도 정 때문에 이혼하지 않고 그냥 사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인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농담으로, 외국인들은 한 대만 맞아도 신고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거든요. 그만큼 자신을 보호하려는 성향이 더 강한 것 같아요. 그 부분은 우리가 배울 점이라고 생각해요.”

▲ 여수다문화복지원 : 결혼이민여성에게 따뜻한 ‘친정집’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고운 뜻이 모인 곳이다 ⓒ 방현유

2012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중 1명은 외국인 배우자를 맞이하고, 그중에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이 결혼한 경우가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다문화가정을 놓고 두 달 동안 공부하고 취재하면서, 결혼이민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결혼이민자를 ‘우리’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들’로 배제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변화는 작지만 아름답게 진행되고 있음도 확인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10억이 넘는 재산을 복지원 건립에 쓰고 수년 동안 한 달에 수백만원이나 되는 운영비를 감당하는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다문화가정 여성들도 이제 여수시민이란 자부심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여수다문화복지원 심장섭 이사장의 말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지렁이가 단단한 땅 속을 부지런히 다니며 땅을 살리듯, 우리 사회를 발로 뛰며 ‘소수자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취재를 다니며 만난 ‘박향덕 사회복지사’에게서 그것을 보았고, ‘조중훈 경사’에게서도 그것을 보았다. ‘제니퍼’의 웃음은 바로 그들이 지켜주고 있었다.

▲ 사랑해여수 S팀 : 결혼이민여성을 만나며 부쩍 자란 우리 ⓒ 강세인

(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4기> 정화영, 강세인, 김채연, 김혜민, 방현유 기자. 지도 교사 : 박용성)

♣ 취재 후기 : <사랑해여수 4기>는 “아름다운 여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우리 고장을 널리 알리고 있는 여수지역 고등학생들의 연합동아리입니다. 우리 동아리에는 여수(YEOSU)의 글자 하나씩을 따서 만든 ‘Y-fine’, ‘Energy’, ‘Oasis’, ‘Superstar’, ‘U&I’ 총 다섯 팀이 있는데, 이 기사는 S팀에서 작성하였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6월 6일, 9일, 15일, 7월 12일, 네 차례에 걸쳐 (사)여수다문화복지원과 여수경찰서를 찾았습니다. 바쁜 시간을 내 주신 복지원의 박향덕 사회복지사님과 여수경찰서 조중훈 경사님, 그리고 저희를 이끌어 주신 박용성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팀장 : 정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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