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경 수필가

봄이 되면 영취산의 진달래만이 자랑이겠는가. 봉화산이 그렇고 안심산이 또한 그러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 폭의 그림 같다.’라는 말은 여행길을 통해 멀리서 바라보는 하나의 풍경일 뿐, 산에 올라 진달래 숲에 묻히고 보면, 그 붉은 색깔과 꽃향기에 취해 우리는 문득 진달래술이 되고 만다.

충무공의 진남관이며 오동도, 향일암 그리고 2010년 여수세계박람회를 통한, 세계4대미항 중의 한 고장이라는 깃발을 소리소리 지르며 내세우지 않더라도 이 고장은 이미 산과 들의 온갖 꽃과 푸른 바다, 이것만으로도 삶에 지친 우리 고장 사람들의 얼굴 화색(和色)은 환하게 밝아온다.

“환한 꽃밭 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 핀 것가 꽃 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저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다캐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가.“
(후략)

박재삼은 <봄바다에서>라는 시에서 꽃밭 같은 봄바다를 예찬하면서 그저 아름다운 것만이 아닌 바닷사람들의 삶의 애환(哀歡)을 이렇게 사무친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午後)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은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럼히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후략)

서정주는 <無等을 보며>라는 시에서 또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고달픈 삶 속에서도 세속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 새끼들을 맑고 곱게 키워야 한다고 노래했다.

큰 땅장사나 혹은 그물 가득 고기를 잡아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대수인가. 이곳도 다름 아닌 사람이 사는 고장이다. 우리 자식들은 해맑은 눈동자로 어른들의 말과 몸짓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 곱고 착한 얼굴로 사람답게 살자는 것이 어찌 헛된 말일 수 있겠는가.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진달래 그리고 동백꽃이 우리의 고운 마음과 함께 내 고장의 영원한 자랑이 되었으면 좋겠다.


*無等(無等山)-전남 광주에 있는 산 이름

*박재삼(朴在森)(1933~1997) 일본 도쿄 출생, 경남 삼천포에서 성장.
시인. 고려대학교 국문과 졸업 / 1955년 <現代文學>지에 <靜寂>으로 등단 / 시집. <춘향이 마음> <햇빛 속에서> <천년의 바람> 외

*서정주(徐廷柱)(1915~2000) 전북 고창 출생
시인. 아호. 미당(未堂). 중앙불교전문 수학 /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壁)>이 당선되어 등단 / 시집. <화사집(花蛇集)> <귀촉도(歸蜀途)> <신라초(新羅抄)> <동천(冬天)>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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