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여수고등학교 교사

금지된 것이 아름답다는데, 아니다. 사무치게 아름다워서 금지된 것이다. 꿈꾸는 것 자체를 불온하게 여기는 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금지된 책을 읽고, 금지된 노래를 듣고, 금지된 생각을 하며, 금지된 미래를 앞당겨 살았다. 아니,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아내야 했다.

그런다들. 금지된 것에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고. 맞다. 문제가 있다. 문제의식이 있다. 보라. 그래서 성경도 금서였고, 논어도 금서였고, 에밀도 금서였고, 종의 기원도 금서였다. 안데르센의 동화마저 한때는 금서였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아름답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죄했겠는가.

1979년, 유신이 끝판으로 치달을 무렵. 어둠이 깊어 아무도 새벽을 예감하지 못할 때, 그때 나는 그 노래를 처음 들었다. 불법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그 노래를 숨죽이며 들었다.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함께 시대를 증언하는 몇 안 되는 작품이라는 바로 그것.

그것은 노래였지만 극이었고, 극이었지만 굿이었고, 굿이었지만 통곡이었다. 하루는 야학에서 형제들에게 들려주었더니, 몇은 코를 훌쩍거리고 몇은 눈물을 훔쳤다. 동일방직 사건이 남 일 같지 않던 차에 그 비극적인 사건이 미학의 옷을 입고 나타나자 크게 공감했던 것 같다. 그러다 일이 커졌다.

무대에 올리자는 것. 아련한 기억으로는 무등양말에 근무하던 우리 명숙이가 말을 꺼낸 것 같은데, 아무튼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그러자는 합의에 이르렀다. 다른 형들은 모르겠는데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자칫 잘못하면 호되게 당할 판. 모든 걸 뒤집어엎을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뻔해 보였다.

그런데 어쩌랴. 할 수 있어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하던 시절이었으니, 할 수밖에. 악보를 좀 아는 손남승과 박현희가 음악을 맡고, 표정이 풍부한 김홍곤과 최문수가 연기를 맡고, 막둥이 정권율이 분위기를 잡았다. 나는 뭐 했느냐고? 연출이 뭐 하는 것 봤나. 폼만 잡았지.

드디어 그날. 테이프 뒷면에 담긴 반주에 맞춰, 지하 무대에 거칠게 올려졌다. 그런데 마지막 노래 ‘이 세상 어딘가에’가 나오자 어깨를 겯고 곳곳에서 흐느꼈다. 김지하와 함께 온 황석영도 눈이 벌게졌다. 그런데 더욱 감동적인 건, 모두가 동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 그 뒤에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이 세상 아무데도 없어요 정말 없어요/ 살며시 두 눈 떠 봐요/ 밤하늘 바라봐요/ 어두운 넓은 세상/ 반짝이는 작은 별/ 이 밤을 지키는 우리/ 힘겨운 공장의 밤”. 욕망이 사랑으로 정화되듯, 기억은 희망으로 역사가 된다. 아직도 그 노래를 못 잊는 까닭이다. 그해 가을은 그렇게 황홀하게 저물어 갔다.

무엇이 이렇게 깊이 찬란할 수 있을까.
빗방울이 부드럽게 바다에 섞이듯
오만가지 빛깔로 소리를 내며
아주 깊이 스며들어 이제는
추억조차 일렁이게 하는
공장의 불빛.
- 그해 가을은 황홀하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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