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도시경쟁력의 중심에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도시들은 도시경쟁력의 맨 앞자리에 문화도시의 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문화도시 전략은 궁극적으로 시민들의 삶을 더 즐겁고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하게 만들어 가겠다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여수를 생각합니다. 예울마루가 들어선 이후 과거보다 여건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시설이 들어왔다고 성큼 문화도시로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정서가 그러한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화도시의 출발은 교육도시와 마찬가지로 물질적 풍요보다 시민들의 삶의 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겠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시민들의 삶에 문화적 향수와 품위와 여유가 넘쳐나게 하고 문화가 우리 도시의 자랑거리가 되게 하겠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렇게 하겠다는 결의는 1980년대 유럽의 도시들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은 장기 불황과 높은 실업률, 그리고 이민증가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침체의 늪에 허덕이던 도시들은 도시경제를 살리려고 온갖 꾀를 짜내다가 ‘문화도시 만들기’라는 사상 초유의 발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문화가 산업을 대체할 수 있다’는 발상이었습니다.

그것은 사고의 일대 전환이었고 산업자본주의에서 문화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버밍엄은 세계의 금속공장이라는 지위가 쇠퇴하자 버밍엄을 인간중심의 도시로 만들자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중심 시가지를 보행자 우선 거리와 문화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사용하지 않는 생산 공장은 예술 창조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사업들을 꾸준히 전개해서 예술과 미디어 구역이 탄생하는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프랑스 아비뇽, 이탈리아 볼로냐, 체코 프라하,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는 20년에 걸친 시정부의 꾸준한 도시계획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유럽의 대표적인 문화도시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그래스고는 70년대까지만 해도 매우 침체된 산업도시였습니다. 그러나 76년에 시 당국이 뉴타운건설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도시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잘 짜인 도시계획 아래 극장과 미술관과 박물관과 도서관과 학교와 상점들이 계획성 있게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오케스트라단, 발레단, 오페라단 등 전문예술 단체들이 속속 설립되어서 일 년 내내 그래스고 어디서나 다양한 공연활동을 펼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매년 5월에 열리는 그래스고의 문화축제는 지금 유럽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습니다.

퇴색해 가던 산업도시가 역동적인 문화도시로 탈바꿈한 것입니다.유럽의 성공 사례를 우리지역에 수평적으로 도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서로의 문화가 다르고, 전통이 다르고, 제반 여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도시가 현재의 산업도시에서 인간중심의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문화’라는 거대 아이콘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도시의 문화는 곧 도시의 품격과 직결되는 말일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 도시에 예술 행사가 많다 해서, 문화 행사가 많다 해서 문화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질시하는 사람보다 칭찬하는 사람이 많은 도시, 술 마시는 사람보다 책 읽는 사람이 많은 도시, 네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내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도시가 곧 문화도시가 아니겠습니까.

지금처럼 말이나 행동이 거친 도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도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려는 도시, 내 행복이 중요하듯 남의 행복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 이러한 도시가 문화도시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도시의 문화정책은 단체장의 문화에 대한 인식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것입니다. 단체장이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정책의 방향과 전략과 범위와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살고 있는 여수는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 우선주의 정책과 개발 우선주의 정책이 이 땅을 지배해 왔다 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정신문화의 부재가 드러났고, 소통의 부재가 드러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도 부족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도시 문화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음악회 몇 번 더하고, 전시회 몇 번 더한다고 해서 우리 도시가 문화도시로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민들이 왜 자꾸만 이 도시를 떠나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원하는 도시를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과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닌지, 우리 스스로의 성찰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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