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연말이 짜박짜박 다가오고 있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날입니다.

이렇게 연말은 다가오는데 아직까지 저는 획기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들 앞에 뭔가 내놓을 수 있는 어떤 결과물들 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획기적인 결과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작은 변화들을 꾸준히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물로 획기적인 결과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며칠 전에 우리 여수지역에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서 ‘드림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주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 어른들이 조금씩만 모아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렇게 이메일을 통해 제안을 했는데 그 제안을 하고 이제 보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약 9천만 원에 이르는 성금이 모아졌습니다.

저는 그 통장 내역서를 날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오픈해 주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날마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후배가 저에게 이러는 것입니다.

“형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호응할 수가 있죠?”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많이 놀라고 있는데 그 모습을 처음 보는 후배는 더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후배는 “형님께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하고 말합니다. 궁금하겠지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세상을 참 잘 살아야 되거든요.

그 후배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모든 큰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근간에 신뢰라는 것이 쌓여있어야 하는데, 그 신뢰라는 것은 작고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지요. 다른 사람을 많이 칭찬 하는 것, 남이 보지 않더라도 남을 속이지 않는 것,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

욕심 앞에서 내가 양보하는 것, 그러한 용기를 내가 갖는 것, 겸손을 몸에 달고 사는 것, 잘 웃는 것, 내 자랑 하지 않는 것.

내가 먼저 인사하는 것,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주는 것, 나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것,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것,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해주는 것… 뭐 이런 것들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행하기 쉬운 것들인데 실제 행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것들 말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말투와 그 사람의 사소한 행동을 보면, 대개 그 사람의 모습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겸손한 사람인지, 오만한 사람인지, 배려심이 많은 사람인지, 욕심이 많은 사람인지, 세상을 입으로 사는 사람인지, 세상을 가슴으로 사는 사람인지, 대개 보이는 법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보고 그를 신뢰할 것인지 말 것인지, 가까이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욕심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욕심을 앞에 놓고 누군가와 마주 앉게 되면 그 사람의 진심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상대가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슬쩍 자기 주머니에 넣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욕심을 참으며 슬그머니 내 앞으로 밀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달리 보이기까지 합니다. 사람인데 욕심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를 “참 괜찮은 사람이다.”하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한 이미지들이 조금씩 쌓이면 우리는 그 사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려운 아이들 좀 도와주세요.”하고 다소 무리한 부탁을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호응하는 까닭은 그러한 신뢰가 쌓여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세상은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신뢰 받고 싶다면,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그 모습, 그 방법으로 내가 살면 되는 것이라고. 이를테면 이런 것들.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내가 먼저 배려하고, 내가 먼저 존경하고,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웃어주고, 욕심나는 것이 있어도 내 입에 넣기 전에 상대방에게 밀어주는 마음을 가지라고. 그러면 그 사람은 나를 달리 보게 되는 것이라고.

내가 날마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 것, 내가 그렇게 사람을 대하고 만나는 것, 그것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당장은 손해일 것 같지만 양보하는 삶과 배려하는 삶이 결국은 잘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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