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노인복지관 신미경 관장과 어르신들

“할머니 할아버지 드실 것이니까, 꾹꾹 눌러 담아 주세요.” 카리스마 넘치시는 신미경 관장님의 말씀에 여수노인복지관(여수시 학동 65번지)은 활기가 넘쳤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점심시간까지 어르신들에게 따끈따끈한 도시락을 가져다 드리기 위해서 모두 열심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담고, 세 가지 반찬을 담고, 따뜻한 국까지 담으면 도시락이 완성된다. 이제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팀별로 어르신 댁으로 배달만 하면 된다. 우리는 차를 얻어 타고 호명동과 화양면 방면 도시락 배달에 참여하였다. 우리가 맡은 것은 도시락 13개였는데, 전달에 2시간 가까이 걸렸다.

도시락을 전해 드리면서 우리는 어르신들께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따뜻한 밥을 제때에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같이 간 자원봉사자들도 정신없이 바빴다. 할머니 손이라도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그럴 겨를이 없었다. 눈이나 한 번 마주치고 급하게 돌아서야 했다.

▲ 도시락 배달 준비 어르신들께 따끈따끈한 도시락을 배달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분들의 손길은 쉴 틈이 없다. ⓒ 여수노인복지관

“복지원 활동에서 자원 봉사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00%.”
며칠 후 복지관을 다시 찾았다. 도시락 배달을 하실 때 힘이 넘치게 일을 챙기던 신미경 관장님의 모습과는 달리 편안하게 웃으며 반겨 주셨다. 미리 준비해 둔 차를 따르며 “어때? 직접 해보니깐 무슨 느낌이 들어?”라고 물으셨다.

- 젊은 저희가 가서 그랬겠지만, 다들 좋아하시던데요.(웃음) 바쁘지만 않다면 적어도 밥 먹는 시간만큼은 곁에 있어 드리고 싶었어요.
“나이가 들면 애가 된다는 말, 들어봤어? 엄마가 아이 보살피는 것처럼 어르신들도 돌봐드려야 한다는 말이지. 우리가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도 그런 엄마 일을 하는 거야. 그런 걸 알면서도 왜 도시락만 전해 드리고 휙 나오느냐? 엄마가 모자라서야. 복지관 운영 초기에는, 그렇게 했었어. 그런데 배달할 곳은 늘었는데, 봉사 활동을 하는 분들은 그만큼 늘지 않아서 그럴 수 없게 된 거지.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다들 그런 말씀을 하셔.”

- 도시락 배달이 정말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는 절실한 도움의 손길이던데요, 어떻게 그 많은 도시락을 싸서 전달할 수 있나요?
“생각보다 어르신들의 영양 상태는 상당히 열악해. 우리가 돌보는 어르신이 1,275명인데, 우리 직원들이 그분들 밥상을 찍어 온 걸 보면 가슴이 아파. 반찬이 정말로 된장 하나, 간장 하나, 풋고추 하나야. 이걸 해결해 보자고 매 주 화요일 금요일마다 복지관에서 도시락을 만들고, 화요일은 부영여고 모자 봉사단에서, 금요일은 연꽃 1기 봉사단에서 도시락 배달을 도와주시는 거야. 정말 고마운 분들이지.”

- 복지관은 도시락 배달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복지관 운영에서 자원 봉사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되나요?
“100%. 여기서는 35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되는데 요즘에는 한글배우기부터 시작해서 영어배우기까지, 붓글씨에서 크레이아트까지, 건강체조에서 라인댄스까지 굉장히 폭이 다양해. 그러다 보니 복지관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만 해도 4,700명 정도 돼. 단돈 1원도 받지 않고, 오히려 시간 내고 돈 내고 자동차까지 내면서 봉사하는 분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 신미경 관장님 봉사를 할 때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그 일에 책임과 사명을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김혜원

“어떻게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실까?”
인터뷰를 하다가 관장님은 소개해 주고 싶은 봉사자가 있다고 하셨다. NCC 한사랑회 김영곤 회장님인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분이라고 하셨다. 당장에 연락을 드리고 약속을 잡았다.

-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적극적으로 해 오신 분이라고 들었는데요.
“여천NCC에 근무하면서 한사랑회라는 봉사단체 회장직을 3년째 맡고 있어. 우리는 장학사업이랑 소년소녀가장 생활비지원사업, 목욕봉사, 그리고 주거환경을 개선해 주는 일을 하고 있지. 이 활동에 뛰어든 것은 1995년도에 목욕봉사를 하면서부터야. 그러다 손재주가 좋다며 집수리 쪽으로 가라고 해서 지금은 그 일을 하고 있어. 우리 한사랑회는 집수리를 할 때 전문인력을 쓰지 않고 직접 하지. 380명 회원들의 다양한 주특기를 살려서.”

- 봉사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동시장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계셔. 그래서 겨울마다 연탄을 300장씩 넣어 드리지. 그날도 연탄을 쌓아놓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따라 나오더니 호주머니에 뭘 넣어주시는 거야. 천원 지폐가 세 장 들어 있었어. 쳐다보니, ‘그거 가지고 막걸리나 사묵어.’ 그러시는 거야. 그래서 ‘할머니, 나 이거 받으면 경찰서 잡혀가.’ 하니깐, 그분이 뭐라고 하신지 알아. ‘내가 경찰서 가서 말해 주면 안 될까?’ 바라보시는 그 눈빛에 가슴이 콱 막혔어. 2년 전 일인데도 금방 들은 말 같아.

- 저희도 봉사활동을 하긴 하는데요, 진정한 봉사활동이란 무엇일까요?
“학생이기 때문에 호주머니 털어서 봉사한다는 생각은 하지 마. 학생으로 할 수 있는 다른 봉사도 많거든. 우선 복지관에 들어가서 정보 공유를 해. ‘내가 자주는 못 가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할머니 한 분을 안마해 드리고 싶다.’ 이렇게 시작하는 게 봉사야. 그리고 처음부터 봉사를 크게 보지 마. 학교에서 종이컵 쓰잖아. 그 컵을 모아서 농사하는 분들 모종하는 데 쓰라고 갖다드려 봐. 그분들 엄청 좋아하셔. 봉사는 그런 자세로 하는 거야.”

▲ 김영곤 회장님 한사랑회 김영곤 회장님은 손재주가 좋다. 집수리로 봉사활동을 할 정도로. ⓒ한사랑회

“아이고, 이삔 청년들이 왔구만.”
마음이 켕겨서 우리는 지난번에 뵌 김옥이 할머니댁을 김혜원 복지사님과 함께 다시 찾았다. 풀 냄새가 나고 호박 넝쿨들이 가득한 돌담길을 걸어가다 보니 초록 대문의 할머니 집이 보였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고 외치며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고, 이삔 청년들이 왔구만.” 하며 반겨주셨다.

-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마당에 채소도 키우고, 테레비 보면서 다리도 100번씩 주무르고, 그렇게 지내. 죽을 때까지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인디 무릎이 여기도 똑똑 저기도 똑똑거린께 교회도 못 가. 노인당에도 한 번 못 가고 이러고 있어. 그렁께 따돌림을 받는 것 같애, 기분이. 일어나서 움직이는 걸 못 한께.”

- 도시락은 맛있게 드셨어요?
“이번에 멸치 잘 볶았구만. 저번 가져온 김치도 삼삼하니 맛났어. 나는 도시락을 이틀 동안 먹어. 보리밥을 많이 해서 도시락밥이랑 섞어서 먹어. 밥할라면 땀이 줄줄 나고, 반찬 하나 할라면 여기저기서 무릎이 난리여. 근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밥 오지 국 오지 반찬이 세 가지나 오지. 요새 더울 때 반찬 준비할라면 얼마나 땀을 줄줄 흘리겠어. 젊은이들, 복 받을 거여.”

- 할머니, 오래오래 사셔요.
“나 나이 시방 여든이여. 이제 설 쇠면 남의 나이를 빌려묵게 된께,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그리 살아. 그런데 나가 복지관 신세를 너무 많이 졌어. 밥도 간 맞춰서 맛있게 해 주지, 며칠 전에는 추석이라고 선물도 주지. 세상에서 돈빚도 중요하지만 밥빚이 제일 크다는디 어찌끄나 싶어. 신세도 못 갚고 죽을 건디.”

▲ 우리 할머니 우리는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드렸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할머니께서 너무 고마워하셔서 괜히 미안했다. ⓒ김혜원

며칠 동안 봉사와 함께 복지관 취재를 하며, 우리는 부쩍 자란 것 같다. 관장님이 들려주신 마지막 말씀을 떠올리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내가 정말 본받고 싶은 분이 계셔. 진옥스님이야. 오래 전에 ‘사건’이 하나 있었지. 내가 문수복지관에서 일할 때인데 수정아파트 뒤에 경사진 곳이 있었어. 그곳에 장애인 한 분이 살고 있어 방문을 했는데 목 아래를 쓸 수 없는 분이야. 장애인인 엄마랑 단칸방에서 살더라고. 스님이랑 찾아가서 그분한테 무엇이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니까, 목욕이 가장 하고 싶다고 그래.

그러자 진옥스님은 정말 밤낮으로 연구를 하시더라고. ‘어떻게 목욕을 시켜줄까, 움직이는 목욕차를 구할 수 없을까’ 매일 이 얘기만 하시는 거야. 당연히 우리는 반대를 했지. 당치도 않다고.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차가 서울에 한 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 서울복지관에서 일본에서 차를 들여왔더라고.

당장 스님이 나서서 당시 돈으로 3,000만원을 주고 목욕차를 샀어. 그러고 바로 그 집을 찾아갔지. 그런데 일주일 전에 그분이 돌아가셨더라고. 얼마나 그게 가슴에 맺혔던지. 아쉬움과 미안함이 깊이 응어리지더라고. 지금까지 내가 꾸준히 이 일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된 ‘사건’이야.”

▲ 못난이들 이렇게 생겼어도 할머니에겐 ‘이삔 청년들’이다. ⓒ 박용성

(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4기> 박태신, 이대현, 허정혁, 송광민, 정찬 기자. 지도 교사 : 박용성)

♣ 취재 후기 : <사랑해여수 4기>는 “아름다운 여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우리 고장을 널리 알리고 있는 여수지역 고등학생들의 연합동아리입니다. 우리 동아리에는 여수(YEOSU)의 글자 하나씩을 따서 만든 ‘Y-fine’, ‘Energy’, ‘Oasis’, ‘Superstar’, ‘U&I’ 총 다섯 팀이 있는데, 이 기사는 Y팀에서 작성하였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네 차례에 걸쳐 여수노인복지관을 찾았습니다. 바쁜 시간을 내 주신 신미경 관장님께 감사드리고, 저희를 이끌어 주신 박용성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팀장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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