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을 그리는 작업은 내 자신을 그리는 것”

“동백은 서민들의 애달픔이 있다. 동백꽃이 톡톡 떨어지는 그 모습이 깨끗하게 물러설 줄 아는 인간의 뒷모습을 닮았다고나 할까.”

▲ 작업실에서 동백을 그리고 있는 강종열 화백.

그림을 향한 열정을 온 몸으로 ‘동백’과 ‘바다’에 쏟아붓는 강종열(62) 화백.

강 화백은 2012년 2월과 3월 두 달간 전국의 동백나무 군락지를 돌았다. 지난해에도 이들 동백 군락지를 다녀왔다. 동백 화가로서 우리나라의 동백 군락지가 어떻게 형성됐으며, 어떤 형태로 형성되어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백 군락지의 북방한계선 위치인 충남 보령 동백정,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신안 애기동백축제, 완도 보길도, 홍도, 제주도, 통영 사랑도, 울릉도, 대마도, 광양 옥룡사, 여수 금오도 등 동백 군락지를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스케치와 글로 남겼다. 강 화백은 내달에 다시 다녀올 계획이다. 그리고 이런 기록들을 머지않아 책으로도 펴낼 예정이다.

국내에서 동백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작가는 강 화백이 최초다.

“동백을 그리는 작업은 곧 내 자신을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고향 여수를 그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꽃을 피우는 동백은 한국인의 굳은 의지를 나타낸다.”며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동백꽃은 아름다움이 최정상에 있을 때 자기 몸을 던진다. 붉은 색의 강렬함이 타오르는 인생의 열정 같은 그 무엇이 나를 사로잡았다.”고 동백에 심취하게 된 처음의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누구일까. 작품이 자신을 대변하고 있는가.’ 그리고 여수답고 지역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겨울 작업실 앞에 떨어져 있던 붉은 동백꽃을 보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그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그렸다. 그런데 느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바다와 어부들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직접 만져보고, 관찰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리기를 반복할수록 동백꽃이 단순한 꽃이 아닌 우리 민족성과 여수 지역 정서를 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강 화백은 “그래야 그림이 호소력이 있고 진정한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다. 작품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 동백꽃 사랑 72.7×72.7cm Oil on Canvas 2013

전업작가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26~27세 쯤이었다. 당시는 사회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정말로 목숨을 걸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전업작가의 길을 결정한 후부터는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보다 그림을 많이 그리자고 다짐했다. 30~40대를 치열하게 살았고, 좋은 생각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젊었을 때는 밤을 새워가며 며칠 동안 그림만 그리기도 했다. 강 화백은 “30·40대는 인생에 있어 허리 같은 중요할 때다. 사업가든 예술가든 그때를 얼마나 치열하게 사느냐에 따라 그 힘이 50·60대를 받친다. 허리가 약하면 결코 좋은 생각과 강한 힘이 나오지 않는다. 좋은 생각을 지속적으로 이끌고 나가야 새로운 작품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여유가 생기면 해야지, 시간 남을 때 하자고 게으름을 피웠으면 오늘날의 자신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힘들 때 어려울 때 더 열심히 하자고 채찍질했기 때문에 지금의 지금의 단계까지라도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화백은 “고뇌를 거듭하며 몰두하다보면 자연스레 깊이가 느껴진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운 작품이 나온다. 그런 고뇌들이 작품에 담겨 예술의 힘으로 승화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 화백은 “그림에 있어 붓터치나 물감을 만져서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내야 하는 테크닉은 기본이다. 사실 이 테크닉을 연마하는데만 많게는 수십년이 걸린다. 테크닉이 갖춰지면 작품에 자신만의 철학을 어떻게 넣을 것인지, 그리고 예술에 대한 본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도 했다.

더불어 강 화백은 현역 작가로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있는 일이 뭔지도 고민한다.

그 일환으로 2009년 10월 동티모르를 돕기 위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필리핀 정부 초청 전시회와 동티모르의 경험이 작품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강 화백은 그들의 모습에서 비슷한 고통을 경험한 우리들의 과거, 우리들의 상처가 겹쳐졌다고 회상했다.

강 화백은 2012년부터 중국 상해와 싱가포르 등지에서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해왔다. 이는 전 세계에 자신의내 작품 세계를 알리는 동시에 여수, 더 나아가 우리나라 동백꽃을 알리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7일부터는 제주도 ‘카멜리아 힐’에서 개인 초대전을 열고 있다. 오는 2월 통영 장사도에서 개인 초대전과 6월경 이탈리아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초대전이 예정돼 있다.

강 화백은 지난해 12월 5일 ‘대한민국미술인상 장리석 미술상’을 받았다. 장리석(97) 화백은 국내 후배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작가로 존경받고 있다. 강 화백은 “그 분의 뜻을 기리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창작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후배 작가들에게 주는 상”이라며 “그 어떤 상보다 의미가 깊은 상이다”고 말했다.

▲ 작업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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