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역의 한 중소기업 사장님이 신문사로 찾아왔습니다. 2~3년 전만 해도 나름 탄탄한 기업을 일구고 있다는 평을 듣던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기업이 어렵다는 얘기로 어제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하긴, 요즘 중소기업인 치고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요.

이러한 어려움은 몇몇 중소기업인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소규모 자영업을 하는 많은 분들도 그에 못지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업인은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도 힘든 어려움이지만, 그보다도 이 위기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한다고 했습니다.

멀리라도 어둠의 끝이 보이면 그래도 오늘을 참고 견디겠는데 이 어둠이 언제쯤 끝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워서 더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술 한 잔을 마시고 밤하늘을 볼 때면 습관처럼 제발, 바늘구멍만 한 빛이라도 보여 달라고 중얼거린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이리도 답답하고 막막한데 아무리 선거철이라고 하지만 누가 시장이 되고,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이분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아픔이 이 분의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보면 종업원 몇 명 데리고 일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꽤 많습니다. 우리 집을 오다보면 1년에 두세 번씩 간판이 바뀌는 상가 하나가 있습니다. 자장면집이 들어왔다가, 치킨집이 들어왔다가, 호프집이 들어왔다가 하는 집입니다.

우리야 “가게가 또 바뀌네?”하고 지나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것이 아닐 것입니다. 망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전 재산을 날린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달리는 중소기업인이나 자영업자들이 우리 주변에 참 많습니다. 지금의 현상은 어찌 보면 물속에 들어가서 누가 숨을 쉬지 않고 오래 참느냐는 게임에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여천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자란 곳은 여수 신항 부근입니다. 여름이면 신항의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수영을 하며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바닷물 속에 들어가 누가 오래 참나 내기를 하곤 했습니다.

오래 참지 못하고 가장 일찍 물 밖으로 나온 친구는 그 벌로 나무를 주워 와야 하고, 그 다음에 나온 친구는 친구가 주워온 나무로 밥을 해야 하고, 그 다음에 나온 친구는 설거지를 해야 했습니다.

굳이 나무를 주워오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내기이기 때문에 물속에 들어가면 죽기 살기로 이겨야 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물속에 들어가 바위덩어리를 안고 버티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위덩어리를 안고 물속에 앉아 있으면 친구들의 동태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영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 모두가 영리했습니다. 곧 숨이 넘어가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면서 끝까지 버티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합은 급기야 친구 한 명이 병원으로 실려 가고서야 그만 두었습니다. 요즘 중소기업들의 현실이 그런 것 같습니다. 물속에서 참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 나오는 기업은 곧바로 도산행 열차에 올라타야 하는 위기를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 지역의 중소기업인들은 일감도 확연하게 줄었습니다. 수주를 했더라도 턱없는 저가 수주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직원들 봉급날만 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기업인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식물의 3분의1은 곤충의 수분(受粉)활동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 가운데 80%는 꿀벌을 통해 수분활동이 이뤄집니다. 특히 사과·딸기·호박·오이·땅콩 등 사람이 먹는 작물의 90%는 꿀벌을 통해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지구상에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4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을 했을 정도입니다. 꿀벌처럼 크기는 작지만 그 역할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를 우리 주위에서 찾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연 수많은 중소기업이 될 것입니다.

‘중소기업 9988’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수의 99%에 이르고, 전체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은 온통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기업은 막대한 자본과 연줄을 이용해서 할 말을 다하고 삽니다. 정부도 움직이고, 국회의원도 움직이고, 법관도 움직이고, 검사도 움직입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인들은 어디에 하소연 할 곳이 없습니다.

울어도 소리 없이 우는 울음이,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우는 울음이 더 서러운 법인데 지금 중소기업이 딱 그 짝입니다. 우리가 중소기업의 어려움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하는 까닭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중소기업 중에서 대기업에 의존하는 기업의 비중이 65%를 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소기업의 사정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저가 입찰에, 잦은 설계변경으로 인한 원가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중소 기업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보라고 하면 아마도 엄청난 말들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중소 기업인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기업에 한 번 밉보이면 그나마 남아있는 숨도 연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어려움을 지역의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 대신 풀어주는 것도 나름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라면 이러한 중소기업인들의 어려움을 대기업에 잘 전달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힘과 권력으로 도와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이 어렵다거나 실현 불가능한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애국자는 누가 뭐라 해도 많은 직원을 고용해서 그들에게 돈을 벌게 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인들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애국자인 것입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부터 더 나은 세상 만들기에 앞장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이 백 번을 얘기해도 꿈쩍도 하지 않은 것도, 힘 있는 사람이 나서면 한 방에 해결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우리 주변에서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불량한 생각과 불량한 권력으로가 아니라, 건강한 생각과 건강한 권력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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