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여양고 교사

▲ 김광호 여양고 교사.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글귀를 들어보셨는지요. 오직 한 사람 한 사람은 고귀한 존재이므로 반드시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그 귀한 사람과 그 빛나는 명문(名門)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자못 궁금합니다.
 
우선 명문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명문은 [명사]<이름 있는 문벌> 또는 <훌륭한 집안>이라는 문벌가, 명문가, 명문세족 등 다소 폐쇄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근대학교가 생기면서 명문은 <이름난 좋은 학교>의 의미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명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탐색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이름난 좋은 학교>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옛날에는 부유한 집안 자제만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으며 고등교육(물론 예외는 있지만요)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을 살펴보면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예체능, 기술 등등의 실용적인 지식과 관념적인 이론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육방식이 어디에서 출발한지 아시는지요. 일본을 패망시킨 미국은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배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적합한 교육 방식입니다.

명문을 명명(命名)하는 것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단순히 암기를 잘하고 이해력이 높아 문제를 잘 해결하면 머리가 좋은 사람이고 혹여 그렇지 않으면 머리가 나쁜 사람으로 명명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어찌 교육을 그리 편협하게 정의한단 말입니까?

더 웃기는 것은 S·K·Y 대학에 몇 명 입학했느냐의 의해 학교를 서열화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S·K·Y 대학에 몇 명 합격했는가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정말 여러분은 이곳에 많이 입학해야만 명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명문이라는 프레임에 대하여 진정으로 깊게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명문이라는 단어는 그냥 이름(名)이 있는 문(門)이라는 의미입니다. 설령 아이들의 국·영·수 지수가 높을지라도 그 학교는 그냥 평범한 학교일 뿐 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명문이라는 단어가 학연과 지연이라는 그림자를 동행하면서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아이들은 자존(自尊)으로 미래를 설계하기보다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격화된 틀에서만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밤새 안녕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은 학교에 들어가 나름대로 교육을 받고 졸업합니다. 인문고, 전문고, 과학고, 외고, 요리고, 철학고, 미용고, 골프고, 바둑고, 정보고, 공업고 등등 명문 아닌 명문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젠 과거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젠 사람의 권리를 확장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황금빛 단어인 명문(?)만을 좇게 할 것입니까?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무늬만 황금 빛 명문(?)만을 숭배하게 할 것입니까?
이젠 명문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젠 명문이라는 이름으로 인연을 이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같은 학교에서 수학(修學)한 정도의 인연으로, 그냥 운명의 길에서 만난 선후배의 추억으로 살아가면 어떨까요. 지금처럼 보이지 않게 인센티브를 주고, 보이게 낙하산 인사를 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공고히 하는 명문(학연, 지연)은 하루 빨리 사라지길 소망합니다.

기성세대에게 고(告)합니다. 우리의 후손을 진정 생각하신다면 이젠 명문이라는 단어를 당신까지만 사용하고 아이들에게는 강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명문이라는 단어를 하루 빨리 하얀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버리시기 바랍니다.

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명문이라는 이름 뒤에는 학연이라는 괴물이 잠자고 있다고요. 나는 커밍아웃 할 수 있습니다. 명문이라는 학교 뒤에는 폐쇄적인 의식이 꿈틀거리고 있다고요. 그래도 기성세대여 명문이라는 단어를 신처럼 받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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